2008년 8월 25일 월요일

돌아다보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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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63)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발행)을 출간했다. <시를 찾아서> 이후 7년 만의 시집이다.

1970년 등단 후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를 상재하며 절제ㆍ긴장의 언어와 올곧은 현실 인식의 조화로움을 보여준 시인은 이후 과작하며 각각 13년, 10년 걸려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을 냈다. 그는 자기 문학 인생을 '말 줄이기 훈련'으로 요약한 적이 있다.

"읽히는 즉시 독자들의 것이 된다"는 평론가 박수연씨의 해설처럼 이번에도 시인은 평이한 시어와 구체적 이미지로 시를 빚었다. "몇 방울의 수액을 남기고 금방 연해져 버린다"는 후배 시인 김경주씨의 발문대로 63편의 수록시는 순하디순하게 읽힌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시가 한층 생활 세계와 밀착된 자리에서 싹트고 있음도 주목된다. 2006~2007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일, 지난해 35년 봉직한 교사직을 정년 퇴임한 일 등 시인 신변을 알면 시 읽는 데 도움이 된다.

'허구한 날 방구들만 지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아내가 불쑥 내민 호미 한 자루/ 하느님, 나는 손톱 밑에 흙을 묻혀본 적 없고/ 상추 한잎 이웃과 나눈 일이 없습니다/ 아내가 얻어놓은 작은 밭이랑에/ 어떻게 아이들을 심을까요'('작은 밭')

이런 일상시들엔 요란하지 않은 해학이 깃들어 있곤 하다. 일테면 성당 신도들의 새우젓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신부(神父)와 시인의 문답.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노년에 접어든 시인의 회한이 짙다. '무슨 야망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 이렇게 무거운 것이냐/ 벗은 나더러 이념을 그만 내려놓으라 한다/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도 하나하나/ 버려야 할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야망') 그럼에도 변치 않는 지사(志士)의 풍모가 시집을 푸르게 한다.

'그런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기에// ... /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더 외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8/h20080822023610842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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