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9일 화요일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

어제의 노비와 오늘의 비정규직

흔히 옛날 문헌을 읽고 인용하지만 그 진위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 같은 관찬 문헌은 어떤 정파, 혹은 당파가 실록을 편찬하느냐에 따라 기록의 출입이 적지 않고, 사건에 대한 평가도 사뭇 다르다. 문헌에 남은 것이라 해서 모두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옛 문헌 중에서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고문서를 들 수 있다. 이것도 조작이 가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래도 고문서는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친다.

예전에 고문서를 연구한 책이나, 고문서를 모은 책을 훑어보곤 했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그중 내 눈길을 가장 끈 문서는 ‘자매문기’(自賣文記)란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남에게 파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문서’라는 뜻이다. 한두 가지 실례를 보자. 1862년 1월 서른한 살 된 사내 심성옥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 복례,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자식들을 50냥을 받고 원진사 집에 팔고, 자매문기를 작성한다. 문서 끝에는 차후에 만약 자신의 친척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이 문서를 증거로 내세우라는 말도 붙어 있다.

이 문서는 최승희 교수의 <한국고문서연구>에 나오는 것이다. 같은 책에는 자매문서 몇 장이 더 실려 있다. 1869년에 작성된 문서를 보면, 이미봉이란 사내가 흉년에 먹고살 방도가 없어서 자신과 자신의 딸을 돈 15냥에 아산군수를 지낸 김씨 양반에게 팔고 있다. 인신매매는 어떤 사회나 중죄인데, 이 경우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내와 자식, 여기에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까지 모두 노비로 팔아먹고 있으니, 중죄 중의 중죄라 할 것이다.

이런 중죄를 저지른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빈곤 때문이었다. 이런 부류의 자매문기가 적잖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가난에 시달리다가 자신과 가족을 부유한 사람에게 노비로 파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더 들어보자. 1731년에 작성된 자매문기에, 한영이란 사람은 굶주리고 얼어 죽을 지경이 되자 자신의 11살 된 딸 분절이를 아무 대가 없이 김귀일이란 사람에게 노비로 넘겨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1832년의 정정옥은 어머니의 장례 비용을 마련한다며 자기 아내와 자식을 돈 8냥과 쌀 한 섬을 받고 팔아넘기고 있다.

자신과 가족을 노비로 파는 사람은 당연히 양민이다. 이들이 만약 경작할 토지가 있다면, 당연히 자신과 가족을 팔지 않을 것이다. 농민이 토지를 잃고 쫓겨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소수 양반지주의 토지 집적이었다. 박지원이 ‘한민명전의’에서 역설하고 있듯,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바닥나면, 나라에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라의 기민(飢民) 구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신이 경작하던 땅문서를 부잣집에 넘기고 곡식을 받아 연명한다. 이 기회에 부자들은 얼마 안 되는 곡식으로 안방에다 토지 문서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흉년이 들면 팔 것도 없고, 빚은 쌓이고 해서 땅을 떠나고, 마침내 자신과 가족을 파는 처참한 지경으로 전락하는 것이 농민의 운명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이 문제를 사회개혁의 핵심으로 생각했다. 경작하는 농민이 토지를 보유하는 것, 농민이 토지를 떠나지 않음으로 해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실학자들 최대의 관심이었다. 이익이나 박지원이 농민에게 일정한 토지를 분배해 주고 강력한 법을 제정해 그 토지는 절대 매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견해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왜냐?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흡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바로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개혁이 될 리 만무했던 것이다.

토지를 헐값에 양반에게 건네준 양민은 마침내 자신의 신체와 영혼까지 양반 지주들에게 넘긴다. 그들은 자신의 몰락이 모순된 양반 지배체제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도 그들은 당장 자신과 가족을 사들인 양반지주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이들의 은혜가 아니라면, 굶주려 산골짜기나 들판에 뒹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사회에는 노비제도 같은 후진적 제도는 없다. 자신과 가족을 파는 사람도 없다. 대신 노동력 외에 다른 수단이 없어 오직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자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문제는 그 노동력을 구매하겠다는 쪽이다. 옛날 양반들이 굶주린 백성을 노비로 사들이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였듯, 이제 자본은 노동력을 사들이거나 말거나 자유다. 노동력을 팔지 못하는 젊은이가 도서관마다 넘치고, 자기 노동력을 제값에 팔지 못하고 궁핍에 전전긍긍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수백만 명이다. 그들의 모습에 살기 위해 스스로를 팔아야 했던 조선시대 농민의 모습이 겹친다.

정치가 소수층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술책이 아니라면, 국민들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먼 산에 난 불을 바라보듯 왜 딴청으로 일관하시는가. 비정규직의 애절한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없으니, 날마다 신문이며 방송에 이 문제의 해결에 골몰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보여야 하겠지만, 그런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정치가 무엇인지를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는 분들은 모쪼록 답을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강명관/ 부산대 교수 한문학)

08.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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