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6일 화요일

쟁기로 밭을 갈고 쇠뿔로 정의를 세워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함세웅 신부님(이사장)의 신년인사 '쟁기로 밭을 갈고 쇠뿔로 정의를 세워야'와 고등학교 때의 은사님이신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님께서 강원일보에 쓴 새해 덕담 '소, 느리지만 튼실한 삶의 표상'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이중섭. 흰소. 1953~4년 무렵.
종이에 유채. 30×41.7cm. 서울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

'쟁기로 밭을 갈고 쇠뿔로 정의를 세워야'

출처: http://www.kdemocracy.or.kr/sub_01/sub_12_view.asp?ho=200901&idx=646

 

기축년(己丑年)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선조들의 전통적 옛 인사를 반복해 올리며 지난해 되새겼던 복(福)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술잔을 가득 채워 신(神)께 정성을 다하여 바치듯 우리도 서로 그렇게 충만한 복을 기원합니다.

 

소의 해입니다. 소는 농촌에서 큰 보물입니다. 농사짓고 짐을 나르는 힘 있는 일꾼이며 또 우리에게 일등고기 먹이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와 관련한 많은 교훈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유다문화권에서도 소는 부와 힘의 상징이며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봉헌된 가장 아름답고 큰 제물감 이었습니다. 사실 소는 값진 제물로 하느님께 가장 의합하고 또한 사람을 살찌우게 하는 푸짐한 음식이기도 합니다.

 

특히 소는 몸집이 크지만 비교적 순한 동물이기에 온화함의 상징으로도 묘사됩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소는 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구약의 모든 역사적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하고 그 상징적 의미와 예표적 의미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과거의 모든 역사와 사건을 예수그리스도라는 관점에서 숙고하고 종합한 새로운 방법입니다.

 

저는 이러한 신학적 해석에서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하나의 암시를 얻곤 합니다. 일제 강점 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치며 싸우셨던 순국선열의 시각에서 그리고 불의한 정권, 곧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진 독재정권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몸 바쳤던 학생, 시민 등 뜻있는 모든 분들의 희생적 관점에서 과거 역사를 종합하고 해석하고 미래를 위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현 정부에 대해 비판하고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입니다. 현 정부의 많은 정책이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 희생자들의 삶과는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역사와 현실을 어떠한 시각과 관점에서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중·고교 교과서 사건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역사를 왜곡하면서 어떻게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거짓 기술을 우리가 꾸짖고 항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7~80년대 유신군부독재 등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하필이면 침략국 일본이 1860년대 제창했던 그 유신이란 말마디를 차용하였을까 하며 늘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단어를 차용한 자의 독재체제에 맞서 싸울 때 우리 민주동지들을 도와준 일본의 많은 양심적 지성인들, 특히 개신교와 가톨릭 등 많은 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양심적 일본인들 덕분에 저는 개인적으로 폐쇄적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패쇄적이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양심과 지성입니다. 침략국 일본 안에 우리보다 더 한국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진실한 분들을 통해 저는 큰 감동을 받았으며, 반대로 우리 한국인 안에서도 바로 침략국 일본인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 침략적이며 불의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너무나 부끄럽고 황당했습니다.

 

1965년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정을 무리하게 추진한 그 무리들, 지금도 일제의 강점이 한국 근대화의 계기가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치는 궤변론자들, 더구나 친일파의 선택이 오히려 조국 독립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는 등 어이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넋 빠진 자들, 한국인이면서도 실제로는 침략국 일본을 더 그리워하는 친일 매국노들이 여전히 우리 안에 엄존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노라면 선열들과 후손들 앞에 머리를 들 수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뉴라이트'라는 미국식 표현으로 이름을 고치고 옷을 바꾸어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침략자들과 친일 매국노들의 주장과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2009년 새해는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는 뜻있는 해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소의 해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교부들은 소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소의 뿔은 불의한 세력을 타파하는 정의의 상징으로, 쟁기를 메고 밭을 갈아엎는 소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상징으로 설명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바로 밭입니다. 오만과 독선, 배신과 굳은 마음을 십자가의 쟁기로 갈아엎어 겸허와 낮춤, 신뢰와 포용이라는 아름다운 밭을 일구어 좋은 씨앗을 우리 마음 안에 새로 심어야 합니다.

 

새해에 우리는 소의 뿔과 쟁기의 힘을 통해 선열들의 고귀한 삶과 민주주의 제단에 몸 바친 희생자들의 열정의 씨앗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새로 심어야 합니다.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

소, 느리지만 튼실한 삶의 표상

출처: http://www.kwnews.co.kr/view.asp?aid=208123100085&s=601

 

전통적으로 소는 우리에게 가축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송아지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쳤고, 동제 지낼 때에는 소를 위해서도 별도의 소지를 올려주었다.

 

정초의 첫 소날에 사람들은 쇠죽을 쑬 때 콩, 싸라기, 고사리, 콩나물 등을 많이 넣어주었고, 도마질을 하지 않았고, 연자방아도 돌리지 않았고, 곡식을 집 밖으로 퍼내지 않았다.

 

곡식을 퍼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소가 일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고, 연자방아를 돌리지 않는 것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기 위해서이고, 도마질을 하지 않는 것은 쇠고기를 먹지 않기 위함이다. 강원도 산간지역에서는 섣달 그믐날 저녁에 만두를 빚어 소와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소와 인간의 친연성은 강원도 민요 ‘소모는 소리’에 특히 잘 나타나 있다.농부가 소를 앞세워 비탈밭을 갈 때 소는 농부의 작업 지시의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뿐 아니라 소는 농부의 신세타령도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 석양이 드리운 고즈넉한 저녁때 산기슭에서 마을에까지 들려오는, 맑으면서도 처량한 ‘소모는 소리’는 마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자연의 품속에서 인간과 소가 정서를 교류하고 있는 그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고, 그 소리는 한 가락의 음악이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예술이다. 그 예술적 경지는 경운기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기능면에서 보아도 경운기는 비탈밭을 갈지 못한다.

 

농부와 소는 죽음을 초월하여 의리를 지키기도 한다. 1630년(조선 인조 8년)에 선산부 문수점(지금의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농부 김기년은 산기슭에서 소를 데리고 밭을 갈고 있었다. 이때 산 속에서 호랑이가 뛰어나와 소에게 덤벼들었다. 농부는 쟁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를 치려 하였다. 그러자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농부에게 덤벼들었다. 이에 소는 자기 주인을 막아서며 호랑이의 허리를 뿔로 마구 받았다. 호랑이는 피를 흘리며 쫓겨가다가 거꾸러졌다. 농부는 기운을 차리고 다리를 절며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누워 고생하다가 2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유언을 하였다.

 

“내 죽은 후에 소를 팔지 말라. 소가 늙어 죽더라도 그 고기를 먹지 말고 내 무덤 곁에 묻어 다오.”

 

농부 김기년이 세상을 떠나자 소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여물도 먹지 않았다.사흘 후에 소도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김기년의 유언대로 소를 그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다.그 무덤이 의우총(義牛塚)인데 지금까지 남아 있다.

 

소는 천성이 텁텁하여 우리가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소는 성질이 까다롭지 않고 무던하다.소는 길을 갈 때 땅을 골라 딛지 않는다. 그곳이 진창이면 진창을 그대로 밟고 가고, 그곳이 돌밭이면 돌밭을 그대로 밟고 간다. 소는 꾀부릴 줄 모른다.

 

‘힘 많은 소가 왕 노릇 하나’라는 속담이 있듯이 소는 지략이 없다.

 

소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 준다. 마음이 피곤한 사람도 소 앞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소의 무엇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는가. 순박하고 착해 보이는 그 커다란 눈망울, 듬직해 보이는 그 큰 몸집, 느긋하게 앉아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그 넉넉한 모습(니체는 우리가 암소에게 배워야 할 것은 되새김질이라고 했다.), 주위의 상황 변화에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그 태평스러움, 귀에 대고 경을 읽어주어도 아무 반응이 없는 그 둔함, 그리고 그 느릿느릿한 동작. 아마도 소의 이러한 특성들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리라.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소 앞에서 우리가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코뚜레를 할 때 인간은 소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던가.

 

소에게 멍에를 지우면서 인간은 소에게 어떠한 마음을 가졌던가. 멍에를 지고 묵묵히 걷는 소의 모습은 종교적 심상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태곳적부터 소는 인간을 위한 희생이었다. 희생(犧牲)이라는 단어에 소 우(牛) 자가 들어 있다. 지금도 소는 살아서도 모든 것을 인간에게 바치고, 죽어서도 모든 것을 인간에게 바친다. 우리 민속에 쇠뼈와 코뚜레는 악귀를 물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쇠뼈와 코뚜레를 벽에 매달아 놓았다. 소의 희생에 감응한 주술이다. 소의 희생은 우리에게 겸손한 태도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가르친다.

 

소는 또한 우리에게 느리게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고 했다.느리게, 그러나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라고 소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말을 타고 달리며 산천을 구경하는 식으로 세상을 살지 말고, 소를 타고 가며 길가 풍경을 구경하는 식으로 세상을 살라고, 속도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의 깊이를 되찾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소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기축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소처럼 느리게 움직이면서 삶의 깊이를 체득하고 알찬 보람을 거두기를, 그래서 개천에 든 소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전신재 한림대 명예교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