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일 금요일

자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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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Hugo, Photo by Félix Nadar (Gaspard-Félix Tournac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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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media.

 

 

그 이야기는 소설 '레미제라블'의 프로타고니스트인 '장발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안타고니스트인 '자베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2009년 7월 1일 저녁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연대) 1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여 행한 격려사의 내용을 전하는 여러 언론사의 기사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독립신문, 폴리뉴스 등이 모두 핵심어를 '파시즘' 혹은 'MB파시즘'으로 뽑아서 제목을 달았습니다. "지금은 인권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 "이명박 정부, 파시즘 시대 초기 들어서" "1년 반만에 파시즘 초기 진입" 등등.

 

리영희 선생의 격려사이자 특강의 내용 전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물론 여러 언론에서 이 '발언'을 전하면서 핵심어로 뽑아낸 '파시즘'도 중요하고 우리나라 인권의 시기를 4단계로 나누어,  이승만 정권 시기를 1단계, 박정희·전두환 등 군사정권이 2단계, 노무현·김대중 정권을 3단계로 규정하고 이명박 정권을 4단계라고 지칭하면서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인권이 존재했던 시기는 노무현·김대중 정권의 10년밖에 없다”며  “그후 1년 반 만에 사회가 또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만큼이나(아니 그것보다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이야기가 훨씬 더 제 기억에 오래 남을 듯싶습니다.

 

전문은 경향신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강조는 인용자).

 

아래 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7020130142&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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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소개해준 분이 주최측과 나와의 약속이나 협약에 대해 오해를 했는지 강연이라고 했는데, 사실 강연이 아니고 오늘 인권연대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에 나오신 많은 인권운동가들을 위해서 격려의 한 마디를 해 주면 좋겠다고 하기에 나도 짧게 격려의 말을 할 생각으로 나온 것이다.
지난 10년 가까이에 내 신병으로 말미암아 일체 집필이나 이런 장소에서의 발언을 중단하고 신병 치료와 요양에만 전념하면서 그 전과 같이 국가와 사회의 현실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밀접하게, 치열하게, 정열적으로 갖질 않고 일부러 오로지 살아가는 병을 고치는 일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온몸을 던져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인간의 인격적 기본 권리인 인권과 현대 사회, 조직사회에 있어서 민권과 공민권에 관련되는 그러한 권리의 범주에 있어서 그런 차원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소상히 현실감을 가지고 알지는 못한다. 다만 한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관심에서 보면 여기 오신 연령대 분들의 치열한 지난날의 싸움과 정열적인 의지를 저는 몸으로 뜨겁게 느끼고 있다. 참 용감했고 감사하다.

대체로 지금 여기에 오신 분들이 연령대가 평균적으로 30~40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인권의 사회사적 견지에서 말한다면 여러분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사회의 인권사적 측면에서 제4대에 속해 있는 분들이고, 제3대까지 투쟁해 온 분들이라고 나는 규정하고 있다. 무엇이냐 하면 우리처럼 이승만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그 시기의 인권운동, 인권문제라는 것은 제1세대적인 적대관계였다. 그 이승만 12년 통치하에서 우리는 나름으로 인간다운 권리와 생존을 위한 노력을 했고, 그것이 1세대적인 투쟁이다. 다음은 28년간의 군인독재, 폭력의 시대에서 많은 목숨을 잃어버렸고 인권과 시민으로서의 공민권을 찾기 위해 싸워온 투쟁이 제2기가 될 것이다. 인권을 억압한 그 지배자의 폭력의 내용에도 차이가 있었고 그 폭력적인 권력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자로서의 국민과 우리 시민들과 이 땅의 인간들의 생존양식이나 의식에 있어서도 일정한 발전이 있으면서 차이가 있었다. 다행히도 그러한 긴 역사의 인권투쟁을 보면 적지 않은 기간에 이루어진 우리들의 희생과 눈물과 슬픔과 그것을 견뎌온 노력으로 해서 이른바 제3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일정한 열매를 거두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합친 10년 동안이 충분하지는 않고 완전하다기에는 아직도 먼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그 전 30여년 동안의 상태에 비한다면 놀랄 만큼 향상되고 발전하고 훌륭한 열매로서 성숙한 인권의 시기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 지난 1년 반 동안 변화에 의해서 이명박 대통령 통치 시대, 그리고 지배집단의 성격적, 성향적, 정책적, 철학적 차원에서 말한다면 비인간적이고 오로지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인권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 그런 파시즘 시대의 초기에 들어서 있다. 제4기가 되겠다. 제1세대로 말하면 이승만 시대에는, 대부분이 모르겠지만, 이 땅에 사는 개개인 개체의 지식과 의식과 감각 속에 인권이라는 범주의 사상이 있지 않았다. 흔히 인권이라는 것을 양도할 수 없는 침해당할 수 없는 최고의 권리라고 공식적으로 교과서적으로 미화하고 그렇게 믿기를 원해서 운동하는 것이지만 소위 그 인권이라는 권리는 역사적인·사회적인 부분이 본래적인 천부의 양도할 수 없는 부분보다 훨씬 많다.

정권에 따라서 지배집단의 성격과 철학과 행동, 이해관계에 따라서 지배받는 개체들, 인간들의 권리의 내용도 차이가 생긴다. 이승만 때 우리는 권리라는 것을 한 가지밖에 규정 못했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그런 의무의 정부였다. 병역, 납세의 의무 등 헌법적인 의무이지만 상하의 관계에서 명령과 요구에 복종하는 그것이 사회를 체계적으로 존재하고 운영케하는 그럼으로서 지배체제하에 있는 개개인이 따라야 할 의무로서의 자기 존재, 그것이 정부였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 범주에서의 권리의식은 거의 없었다. 일제하에서 긴 식민지 생활에서 길들여진 박탈된 인간성 탓이기도 하고 정치적 탄압의 결과이기도 하다. 권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어서 28년간의 군인들의 폭력하에서 보다 더 노골적이고 보다 더 악질적인 일체의 인간적인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오로지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밑에서 그들의 지배집단의 요구와 계획과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체제의 명령에 따르는 그런 집단주의적인 토탈리안리즘이 있었다. 인디비주얼 즉, 한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일체 인정하지 않는 그런 사회였다. 역시 또 이승만 사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의 대상으로서의 개인밖에 아니었다. 이승만 때는 그래도 민간통치의 체제였기 때문에 때로 군인 폭력 통치에 비한다면 약간의 느슨한 데도 있었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약간의 여유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에 들어와서는 그것조차 완전히 말살되어 버렸다.

여러분들은 그 시대를 제1, 2세대적 무인권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분들로서 간접적으로 들은 바 많을 것이고 읽기도 했을 것이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몸으로 견뎌나가고 그것을 그 폭력을 그 무서운 반인간적인 폭력 밑에서 자기를 인간으로서 꾸준히 보전해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고난에 찬 것인가 하는 것을 그 동안 많은 인권 자의식이 있었던 많은 민주화 운동 선배들이 죽어갔고 병신이 되고 한 사실을 생각하면 간접적으로 이해가 갈 것이다. 사실 그 때만 해도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에는 나 개인의 경험으로 말한다면 하도 인간성을 박탈당하는 모욕과 치욕과 서러움과 자기환멸과 이런 것들 때문에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인간을 부정당하는, 너는 인간이 아니다 하는 식의, 인권을 박탈당하기 이전에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그런 상태가 지속될 때 비로소 자살한 사람들의 심정을 나의 심정으로 이입해서 생각할 수가 있었다. 아, 이렇게 해서 자살하는구나 하고. 본래 자살하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고..(죽었으면) 전두환이나 박정희를 권총으로 쏴서.. 일대일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집단적인 힘으로 자신이 비인간화되면, 인간의 근원적 존재의 본질 자체가 부정을 당할 때는 아 이제 나는 죽어야겠구나 하는 자살의 동기와 자살의 목적과 이런 것들을 나의 것으로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여기서는 인권이라는 것은 2차적인 문제가 된다.

그 후 10년 동안 그런 결과로 이루어진 상당히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인권이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가치와 중요성과 그 인권이 있어야 할 마땅한 모습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가 하는 집단적인 개개인의 의욕도 운동도 생겨났다. 비로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인간이 된 것은 지난 10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승만, 박정희, 노태우 시대에는 이땅의 생을 받아서 생존했던 생명체·개체는 현대적인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이 아니었다. 동물이었다. 다행히도 그 속에서 투쟁한 많은 선구자, 선배들의 목숨의 대가로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부족하나마 인간다운 개체로서 되살아났고 생존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더욱 충실하게 복된 인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개인과 우리 사회 전체의 집단적인 사회적인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가운데에 선 사람들이 여러분 중에 상당히 계실 것이다.

그러던 것이 1년 반만에 사회가 또 하나의 역사적 역전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파시즘의 시대에 들어갔다. 그러길래 역사는 반드시 이루어진 열매 위에 또 하나의 큰 열매가 열리고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우리가 정신만 늦추면 언제든지 역전하는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면서 진행해 나가는 것이 우리 인류사의 역사이다. 이 이명박 현재 이 정권의 오로지 물질밖에 모르는, 모든 인간을 생존을 지향하고 목적하고 숭배하여야 할 가치는 돈밖에 모르는 그것을 신격화하는 그리고 인간이라는 것의 존재가치가 말살되어 가는, 이러한 체제를 정권을 우리 그 많은 40년의 고생끝에 받아들인 것도 우리 자신들의 책임이다. 우리 자신들이 한 일이다. 우리의 실수이고 개개인의 판단착오이고 역사의식의 잘못이다. 이런 것이 현실화 된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정말로 한심한 일이지만 앞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 체제, 이 정권, 이 국가적 이념 그 지배자들의 철학, 이해관계를 우리 개개인의 인권과 한때 10년이지만 짧은 10년이지만 이룩했던 공민으로서의 권리, 인권과 결부해서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그리고 슬기로운, 불퇴전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일은 아니지만, 그 전의 일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리고 사회는 인권이라는 인간 존재의 기본적, 인격적 가치라는 점에서 160년의 낙후된 원시사회로 늘 생각해 왔다. 남한, 우리 한국사회를 160년 전과 같은 민권, 공권, 마땅히 인간답게 누려야 하고 허용되어야 하는 상황이 갖춰져야 할 정부라고 볼 때 160년 전의 낙후된 원시사회라고 본다. 나는 우리 사회를 문화적 사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난 지금도 대한민국 사회가 문화, 민주, 인권이니 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가치를 지닌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심각한 것이 아니다. 아무 재미난 에피소드 때문에 그렇다. 몇 차례 형무소를 들어가면서 나는 젊었을 때부터 1950년대 말부터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나아서 불어소설 읽는 것으로 소일했다. 레미제라블 같은 것들. 그전에도 읽었고 다음에 들어갔을 때도 차입을 해서 읽었는데 두 번째인가 세번째 읽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다. 장발장이 코제트라는 소녀와 함께 자베르의 추격에 쫓기고 있었다. 장발장을 체포하려고 한 자베르는 그 오랜기간 동안에서 철저하게 체제적, 우익적인 인간이었다. 나름으로 우익적 인텔리전트가 있는 사람이다. 부패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엄격한 법률숭배자. 인간의 눈물이라는 것은 일체 용납할 수 없는, 자기도 자신과 절대 타협하지 않는 우익적인 인간이다. 사실 우익은 비인간적인 철학이고 사상이다. 이 자를 체포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고 숨어다니고 어느날 포위망이 좁혀오니까 수녀원에서 코제트의 손을 잡고 수녀원의 높은 담을 넘어서 도망하려고 했다. 도망치다가 파리의 어느 다리 한 중간쯤 오니까 벌써 자베르가 미리 알고서 부하들을 다리 저쪽 끝과 이쪽 끝 양쪽 끝에 배치해놓고 있었다. 장발장과 코제트는 다리에서 갈 곳이 없었다. 강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상태에서 그대로 끌려가게 된 상태다. 진퇴양난인데. 결국은 눈 앞에서 닥친 것이다. 그리고 심문이 시작됐다. 너 장발장이지. 그러자 장발장은 묵비권 행사하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부하들은 시간 끌 거 있냐며 체포합시다 라고 자베르에게 말했다. 끌고 가면 우리는 1계급 승진하고 공 세우고 얼마나 좋습니까. 끌고 가려고 하니까 한참 자베르가 생각하더니 가만있으라고 했다. 부하들이 “10여년 온갖 고생을 해서 추격하고 겨우 주머니 속의 쥐 마냥 덜미를 잡았는데 왜 손을 놓으라고 하느냐”고 했다. 자베르를 원망했다. 이제 놓치면 또 얼마나 쫓아다녀야 하나. 자베르는 현대적으로 보면 우익적 철학, 사상, 사회관을 가진 국가에 충실한 인물인데, 인간적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사실 좌익도 극단으로 가면 같아지는 것이지만... 그 엄격한 자베르가 쥐를 발톱에 물고 있는 형국인데 놔 주라고 했다. 자베르가 하는 말이.. 거기서 놀랐다. 한국이란 나라. 그 장면이 1830년대 프랑스 현실을 쓴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180년 전이 되는 것인데, 내가 그때 읽을 때는 한 160년 전이었다. 자베르가 부하들에게 손을 놓으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실수했다며 체포영장을 떼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체포영장을 받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에 체포영장 없이 장발장을 체포해 가면 반드시 파리의 신문들이 굉장히 장발장의 사건 컸으니까 국가범이었으니까 자베르 경시가 10년만에 체포했다고 대서특필할 것이다. 그러면 동시에 영장없이 끌고 왔다, 폭력으로 끌고 왔다고 하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신문기자들이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내가 합법적인 범죄인 체포의 법적 필요수단인 체포영장을 끊지 않고 폭력으로 끌고왔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무장관이 의회에서 그 문제가 되어 불신임안을 당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내무장관직을 관둬야 할 것이다. 내각이 붕괴할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 그러면서 돌아가자고. 오늘은 돌아가고 내일 영장을 청구해서 받아서 다시 나오자고 했다. 물론 다시 나오면 장발장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런 대목이 12줄에 걸쳐 나왔다. 그때 내가 느낀 감동, 쇼크가 말할 수 없었다.

1830년에 불란서에서는 그 국가범, 국가사범과 같은 대사건의 범인 장발장을 10여년 추격끝에 잡았는데 그것을 연행 안 하고 영장 안 가져왔다고 가슴이 터질듯한 생각에도 방면하고 돌아가서 영장을 다시 가져오려고 했다. 그걸 했다면 신문기자가 쓰고 내무장관이 모가지 날아가고, 그럼 의회가 해산할 것이다. 그런,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제반절차, 중요한 한 사람의 범인을 체포하는 일, 사실 영장 없이 잡아도 장발장 정도면 눈 감을 수 있을 텐데도 법 절차를 고려해 놓아준 그 대목을 읽으면서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거친 프랑스의 법률이고 경찰이고 사회이고 인간존중이고 이 모든 가치관이 거기에 포함되어서 표시되더라 이거다. 그래서 정말 나는 그때 계산하니까 광주형무소에 들어간 것이 영장 없이 끌려간 것이었다. 2년 동안을 형무소 살이를 했다.

2000년도에 가까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헌법에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완벽하게 되어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180년 전 프랑스, 우리가 보기엔 당나라 때의 옛날 얘기 같은데 벌써 프랑스에서는 그러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인권에 관해서 공민권에 대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한국에 있는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의 동물의 법적 대우를 받고 있는가. 완전히 인간성을, 자존심을, 자주성을 민주적 독립성을 몽땅 부정 당하고 있는데... 1980년의 대한민국에서... 그러나 180년 전 프랑스에서는 그랬다는 것을 알고 그때 민권, 민주주의의 중요성, 법적질서, 준법정신 등 모든 분야의 인간생존, 인간이 인간다워야 할 민주사회의 공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어떡해야 하는 것을 생각했다.

두 가지 인권이 있다. 하나는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양도할 수 없는 침범당할 수 없는 권리, 천부의 권리로서 인간으로서 본래는 그렇다는 것. 하지만 역사적, 사회적 권리로서, 집단 체제에서 부여되는, 권리는 천부의 양도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는 아니다. 그 양면에 있어서 인간 존재적 인격의 근원적 권리로서의 인간의 권리는 일차적으로 물론 당연히 주장해야 하고 보호해야 하고 획득해야 하고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집단적으로 생존하는 과정에서 합의에 의해서, 계약에 의해서 법률에 의해서 주어지는 권리... 사회적, 정치적, 공민적 권리는 반드시 정부에 양도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는 아니다. 제도에 의해, 역사발전의 단계에 의해서 우리가 쟁취하는 권리다. 그 성격은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그 둘을 다 그 성격을 인식하면서 확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 갖추어진 인간으로서 민주 시민으로서 생존과 존재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태까지 그렇게 노력해 온, 투쟁해 온 데에 대해서 깊이깊이 감사드리고 험악해진 이 새로운 우리의 현실적 상황 변화 속에서 불굴의 인권정신을 가지고 싸워 줄 것으로 믿는 여러분들의 성공이 있기를 간절히 빌면서 오늘 격려의 인사를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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