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3일 화요일

맹랑한 풍자와 사망선고

              *경향신문 2009년 10월 30일자 스포츠면.

 

'헌재놀이'의 패러디를 기사 제목으로 사용하다니! 경향신문 편집부의 센스가 놀랍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만사 이런 식으로 한낱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래는 2009년 11월 3일자 한겨레신문의 칼럼이다. 한국헌법학회 회장인 김승환 전북대 교수의 칼럼,  '일사부재의 원칙의 사망선고'. 참 앞날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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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방송법안 날치기 처리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방송법안 가결선포행위가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지만, 그러한 가결선포행위가 무효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정문을 더 자세히 뜯어보기로 하자. 방송법안은 최초 투표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다, 그럼에도 국회부의장이 이를 재투표에 부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방송법안 가결선포행위는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가결선포행위가 무효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위법한 행위가 무효는 아닌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 의사절차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제49조에서 ‘다수결의 원칙’을, 제50조에서 ‘회의공개의 원칙’을 각 선언하고 있으므로, 결국 법률안의 가결선포행위의 효력은 입법절차상 위 헌법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하자가 있었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결정문의 뜻풀이를 해 본다. 법률안 표결 과정에서의 하자가 다수결 원칙과 회의공개의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한 법률안 가결선포행위는 무효로 되지 않는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으므로 헌법상의 원칙이 아니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모든 회의체의 의사절차에 적용되는 일반적 법원칙이다.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에도 일사부재의 원칙은 적용된다. 주주총회의 의결이 이 원칙을 위반하면 법원은 그 의결에 대해 가차 없이 무효판결을 선고한다. 국회의 의사절차와 관련하여 일사부재의 원칙은 불문의 원칙이다. 명시적인 조항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그것은 회의공개의 원칙, 다수결 원칙과 함께 (불문의) 헌법원칙이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면 헌법원칙이고, 국회법에 규정되어 있으면 법률원칙인 것이 아니다. 1987년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관들에 의해 살해당한 박종철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법원칙이 있었다. 미란다 원칙이 그것이다. 당시 미란다 원칙은 형사소송법에 이미 규정되어 있었지만, 검찰이나 법원이나 그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미란다 원칙은 헌법에도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미란다 원칙은 인신의 체포, 구속과 관련한 법률원칙에서 헌법원칙으로 그 위치가 격상되었나? 박종철이 국가폭력으로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미란다 원칙은 헌법원칙이었다.

헌재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는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법률안 심의표결권에 대하여 “국회입법권의 근본적 구성요서”라고 말한다.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것은 곧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국회의 입법권은 국회법상의 권력이 아니라 3권분립의 한 축을 이루는 헌법상의 권력이다. 그렇다면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는 헌법 위반이라고 말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헌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법안의 효력은 유효하지만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헌재의 결정도 유효하다. 앞으로 국회의장이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처리해야 할 문제”다. 그게 법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회의장도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헌재는 헌법재판을 하는 기관이고, 헌재가 내리는 위헌 또는 위법이라는 결정은 판단의 대상이 된 공권력 작용에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법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제 국회의 법률안 표결에서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나 대리투표는 법적으로 유효한 행위이다. 헌재는 방송법안 결정을 통해서 일사부재의 원칙이라는 헌법원칙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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