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요소 비료 포대에 담긴 쌀

 

우리교육에서 펴낸 <참 아름다운 당신>(2009년 11월 12일 초판)을 읽었다. 도종환, 공선옥, 김중미, 박정애, 전성태 등 13명의 작가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이웃사람들 이야기를 쓴 것을 묶은 책이다.

 

도종환 시인은 보은 내북면 법주리의 그 산속 외딴 황토집, 산골길을 넘어야 하는 그 집을 찾아오는 길만영 집배원 이야기를 들여준다. 김중미 씨는 프레스공 고경순 씨를 만석동의 천연기념물로 소개하면서 그이의 삶 한 자락을 펼쳐보인다.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내 가슴을 저며들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공선옥 씨의 큰아버지 이야기. 그 가운데서 비료 포대에 조카 먹으라고 담아준 쌀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짠하게 저 밑바닥에서부터 아파오며 쓸쓸해졌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살던 어느 해, 큰집에 갔다. 내가 작가가 되고 나서 어느 방송국에서 작가의 고향을 찍고 싶다고 해서였다. 우리 집은 이미 허물어져 밭이 된 지 오래였다. 당연히 큰집으로 갔다. 큰어머니가 방송국 사람들에게 밥을 해서 내놓았다. 아, 그 밥! 큰어머니는 도시 사람들 왔다고, 시골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계란 부침개'를 내놓으셨다. 그것은 반찬이 맨 '시골 반찬'인 것을 부끄러워하며 내놓은 반찬이었다. 방송국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었을 그 계란 반찬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났다. 그때 큰아버지는 방송국 사람들이 작가인 조카를 찍는 것을 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그리고 신기해 하면서 바라보셨다. 그것이 내가 살아생전 본 큰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돌아가려고 하자 큰아버지는 큰 짐바리 자전거에 뭔가를 싣고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셨다. 요소 비료 포대에 담긴 그것은 쌀이었다. 방송국 차에 큰아버지가 주신 쌀을 싣고 도시로 돌아오면서 나는 울었다. 요소 비료 포대에 담긴 쌀이 나를 울렸다. 나는 집에 와서 쌀을 쌀통에 쏟아붓지 못하고 한참 동안 요소 비료 포대째로 거실에 놓아두었다. 쌀 포대가 된 비료 포대.

 

비료 포대는 언제나 나를 눈물 나게 한다. 떡방앗간에서 제사나 명절에 쓸 떡을 해서 그 비료 포대에 담아 가지고 온 적이 나도 있었다. 광주에서 자취할 때, 나는 또 김치를 그 비료 포대에 담아 가지고 머리에 이고 왔다. 그런 추억들이 나를 울리고, 해가 지는 저물 무렵 큰아버지가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쌀을 실어 주고 나서 하염없이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나를 울렸다.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없는 고향에 이제 등 굽은 나의 큰아버지가 내게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지금 어디를 가도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농사짓고 사는 농부를 보면 문득 아버지, 하고 뇌게 된다. 모든 농부는 세상 모든 이의 아버지다.

 

-공선옥, '진짜 농부, 우리 큰아버지', <참 아름다운 당신>(우리교육, 2009) 4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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