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고 김근태 '선배'의 마지막 글들

김근태 '선배'(민주통합당 상임고문)가 2011년 12월 30일 오전 5시31분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가슴이 저려 온다. 고인의 블로그, 김근태 희망을 말하다에서 세 편의 글을 옮겨놓고 읽어본다. 강조는 인용자.



*사진출처: 한겨레 2011년 12월 30일자, 김종철 선임기자의 기사, 민주화 역사에 가장 굵은 글씨로 새겨질 이름, 김근태. 2011년 12월 30일 오후 3시 02분 추가.


첫 번째 글의 제목은 '2012년을 점령하라'. 글을 올린 날짜가 2011년 10월 18일자로 되어 있다.

세계는 격동하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잔혹한 유럽의 여름, 월가를 점령하자는 뉴욕의 가을, 그리고 월가점령에 대한 다른 도시들의 공감, 급기야 10월 15일 전 세계 곳곳에서 월가점령시위 동참......

월가점령시위가 확산되자 미국의 언론, 학계,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보수 쪽에서는 폭도라는 말까지 사용해가면 월가점령운동을 폄하하고 있고, 진보 쪽에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역사의 순간으로 칭송하고 있다. 그러나 월가점령에 나선 사람들이 폭도로 여겨지지도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당장 붕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양 진영의 주장이 워낙 강력하고 방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관계로 자칫 생각과 판단의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아졌다. 월가점령운동에 대한 양극단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차분히 묻고 냉철하게 대답해야 한다. 우선 미국인들은 왜 월가를 점령하자고 외치고 있을까.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서 왜 월가점령에 공감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1%인지 5%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처럼 전 세계가 공감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증거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의 구분 없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적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월가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희생도, 반성도, 징벌도 없는 불공평함에 분노한 것이다. 금융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월가의 과도한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 오바마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티파티의 압력에 굴복해 길을 잃은 공화당과 의회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기도 하다.

드디어 미국인들이 기존 정치를 불신하고 스스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들은 티파티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발악에 맞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있다. 너무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냉혹해서 그들이 공화당을 장악한 티파티 정도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면 미국은 한 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감세가 중지되거나 약간 다시 오르거나 다음 선거에서 오바마가 재선되거나 일뿐이다. 이런 사실을 2008년 촛불집회를 했던 우리는 너무 잘 안다. 2008년의 촛불국민들은 2009년엔 조문행렬을 이었고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야한다.

흔한 말로 정치권의 위기, 야당의 위기, 민주당의 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비난은 비난일 뿐 비난이 승리는 아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미국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처럼 경선에 뛰어들어 직접 후보를 내거나 특정 후보를 지지해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정치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전자가 쉽고 확률도 높다. 비호감일지 모르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미국의 티파티나 한국의 뉴라이트의 공통점은 적극적 참여와 정당과의 연계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2011년 10월 김근태


두번째 글의 제목은 서울의 봄, 깐느의 봄. 2011년 10월 4일의 글이다.

 
바야흐로 가을이 왔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오세훈 전 시장 덕분에 봄이 한창이다. 가을의 한복판에 ‘서울의 봄’이 열렸다. 서로서로 꽃이 되고자 경쟁이 한창이다. 물론 각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선거고 나 역시 야권단일화 경선에서 선택된 후보가 최종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쉬움도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기간 중에 국정감사, 한미FTA 등의 중요한 정치일정이 있다. 그런데 국가적 사안들이 다뤄져야할 국회의 국정감사가 뒷전으로 취급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게을리 한다기보다 여론의 관심이 분산되어 중요한 국가적 쟁점들이 부각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다. 쟁점이 국회에서 부각되지 못하면 언론보도도 잘 안되고 가뜩이나 바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뿐만 아니라 곧 타결이 임박한 듯 보이는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선거가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물론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잘해야 대한민국 안에서의 일일 뿐이고 정치적인 일일 뿐이다. 때 아닌 서울의 봄 속에 대한민국이 선거로 가을앓이를 하는 동안에도 세계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시시각각 새로운 경쟁 속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 역시 중동 지역이 격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유엔회원국 승인신청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으며, 리비아에서의 NATO 개입과 승리가 확실해질수록 시리아문제를 적극 해결할 수 없는 NATO의 무력함과 위선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정치적 사건과 경쟁들보다 중요한 일이 경제에서, 금융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의 금융위기와 스페인, 이탈리아의 위기설로 세계금융은 심하게 부침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스 금융위기 해결에 관한 수많은 논쟁과 논의는 최근 독일의 지원이 의회에서 최종 의결됨으로써 우선 일단락되었다. 금융위기 논쟁 중에 주목을 끌었던 것은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였다. 버핏은 소위 버핏세라 일컬어지는 부자증세를 주장했고, 빌 게이츠는 ‘토빈세’라고 불리는 금융거래세를 주장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 한마디로 참담하다. 박재완 기획재정부장관은 버핏세 도입에 대하여 미국과 사정이 달라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재정적자 수준이 미국과 달리 양호하다는 단순한 생각인데 어떻게 저런 인식으로 국가경제를 이끌고 있는지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버핏세 논란을 계기로 선제적으로 재정건정성 확보에 주도권을 행사해야할 주무 장관의 발언으로 너무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버핏세의 핵심은 미국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감세 수준이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될 정도로 과도했고 지금보다 빠른 시점에 감세를 중단하고 점진적 증세를 추진했어야 한다는 것이 버핏세의 교훈이다. 솔직히 박재완 경제팀에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미국과 유럽의 교훈으로 당연히 중단해야할 감세조차 야당과 친박의 반대에 부딪쳐 겨우 수용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토빈세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G20의장국을 큰 업적으로 자랑하는 이명박정부가 가장 공을 들일 사안이다. 이와 관련 의미 있는 소식이 하나 전해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EU내 주식 및 채권 거래에 0.1%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소위 금융거래세, 토빈세인데 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EU의 유로존 17개 국가에서 먼저 도입할 예정이고 깐느 G20정상회담에서 제안할 방침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깐느에도 금융전쟁의 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휴양지인 깐느는 우리에게 영화제로 더 유명하다. 비록 서울의 봄에 묻힌 깐느의 G20 정상회담이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에 더 치명적인 것은 깐느의 봄이다. 이번 깐느 G20의 황금종려상을 ‘토빈세’가 수상하고 대한민국이 이에 기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만약 깐느의 봄에서 토빈세가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다면 그간의 정책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이명박 정부의 최대 업적이 될 것이다. G20과 G20의장국은 솔직히 업적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격이 그 정도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고 운이 따랐다. 이명박 대통령이전에 대한민국은 이미 G20수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진정 독보적인 이명박 정부의 업적은 토빈세 등의 도입을 통한 횡포의 견제에 달려 있다. 11월 3일과 4일에 있을 깐느의 봄, 대한민국의 봄을 기대해 본다.


2011년 10월 김 근 태


세번째 글의 제목은 '일본을 생각한다. 2011년 9월 19일의 글이다.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현 정부는 자극을 받아 외교통로를 통해 일본정부에 대해 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외교부 부대신이 “이미 청구된 문제는 1965년 한일 기본협정으로 다 해결됐다” 고 주장했다. 일본의 궤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의 딱한 사정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봄에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리고 중국에 추월당한 국제적 위상과 최근의 신용등급 강등은 여러 측면에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노다 수상이 새롭게 일본을 맡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미일 안보동맹강화를 지지한다는 목소리 이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일본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원인이 있다. 그 중 세 가지를 주목한다. 신자유주의, 탈아입미(脫亞入美), 관료주의다. 90년대부터 미국을 모방해 시작된 일본의 신자유주의는 고이즈미 전 총리시절 정점에 이르렀다. 그 오랜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2011년 재정 악화와 신용등급의 강등이다. 두 번째로 미국을 추종하는 ‘탈아입미’ 노선이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 ‘탈아입미’는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었던 20세기 후반에 유용했지만 21세기엔 그렇지 않음에도 일본은 변하지 못했다.

21세기의 미국은 스스로 금융위기를 자초하고 20개의 국가들을 불러 모은 G20으로 문제를 미봉책으로나마 해결해야하는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자민당 일당 장기집권을 청산한 민주당 정권교체가 ‘탈아입미’를 ‘탈미입아(脫美入亞)’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사그라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료주의에의 포획이 문제다. 사실 일본에서 신자유주의와 ‘탈아입미’ 노선은 관료를 통해서 전파되고 계승된다. 20세기 일본경제신화의 주인공인 관료들은 21세기 일본의 재앙이 되어있다.

일본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 측은한 만큼 우리의 처지도 애처롭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에 몰입하는 외교노선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추진, 그리고 관료에 포획된 정치라는 상황은 일본과 비슷하다. 그리하여 일본과 비슷한 일들이 한국에서도 벌어진다. 과도한 친미외교로 대외 영향력의 약화, 양극화의 심화와 재정의 악화, 관료를 극복하지 못하는 선출된 권력의 무력감이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한나라당의 노선과 정책이 혁명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채 박근혜 전 대표가 정권을 잡는다면 한국의 제2의 일본화는 더 가속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솔직히 이명박 정부는 민주당 10년의 민심이반으로 탄생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IMF위기 극복 등의 여러 이유로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깊이 뿌리 내리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해야한다. 그러한 반성과 성찰 속에 집권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비전과 대안이 명확하지 않은 채 반MB정서 덕분에 정권을 잡는다면 다시 정체와 좌절이 찾아올지 모른다. 진정 승리하고 싶은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되돌아보고 성찰로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 대선에서의 승리를 함께 모색해야하듯이 승리 이후의 비전과 대안에 대해서도 함께 길을 찾자. 우리를 먼저 열어야 승리도 우리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2011년 9월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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