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4일 일요일

‘24시간 종편’의 그늘…책의 시련 깊어질라

한겨레신문 2011년 12월 2일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칼럼. ‘24시간 종편’의 그늘…책의 시련 깊어질라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종합편성채널 4개 방송사들이 개국해 자못 화려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종편은 언론재벌들과 현 정부, 정치권이 만들어낸 회심의 합작품이다. 2000만가구가 가입한 케이블티브이, 위성방송, 인터넷방송 시청자들의 방송(채널) 선택권이 확대되고 콘텐츠산업의 육성 효과가 기대된다는 긍정적 시각도 없지 않지만 우려되는 바가 훨씬 많다.

무엇보다 종편은 지상파 방송에 적용되는 방송 시간(19시간) 제한조차 없는 24시간 종일 방송인데다,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낼 수 있고, 지상파 방송과 바로 인접한 10번대의 영양가 넘치는 채널을 줄줄이 배정받았다. 사실상 지상파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셈이다. 이는 단순히 몇 개의 케이블채널이 늘어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송 지형의 변동을 초래하고, 이에 따른 광고시장과 미디어 권력의 연동 문제, 시청자의 영상매체 예속 현상이 가속화될 것은 자명하다. 신문 지면을 활용한 자사 종편의 지나친 홍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출판 생태계 측면에서는 활자매체, 인쇄매체에 전방위적인 역기능을 증폭시켜 독서인구 감소를 부채질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출판 환경에서 지난 2년 사이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의 보급은 독서인구를 더욱 줄게 만들었고, 이동중에도 독서매체 대신 인터넷과 영상매체를 이용하도록 구조화된 것이 요즈음 현실이다. 출퇴근이나 통학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그나마 책을 읽던 풍경도 영상과 인터넷 이용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종편의 등장은 이처럼 매체 이용 시간과 비용이 영상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전망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은 주요 언론사와 지상파 방송의 책 관련 정보 제공이 10년 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퇴한 점이다. 8면씩 별면으로 제공하던 주요 신문의 주말판 책 소개 지면은 <한겨레>를 제외하고는 2~3면으로 대폭 줄었다. 황금시간대를 할애하여 소개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티브이, 책을 말하다> <느낌표> 같은 프로그램의 신화도 사라진 지 오래이고, <한국방송>이 그나마 체면치레용으로 목요일 밤 12시에 독서 프로그램 하나를 진행하는 정도다. 이는 언론매체들이 책 읽는 사회를 조성하기 위한 공익적 실천 대신 당장의 이윤만을 추종한 결과이다. 언론의 독서정보 제공 감소 추이와 지난 10년간 추락을 멈추지 않는 국민 독서율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침 2012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이다. 무한 영상매체(엔스크린) 시대에 쇠약해진 책과 독서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신문사에 뿌리를 둔 신생 종편채널들이 부디 언어·문문자의 힘을 확장시키는 데 각별한 사명감을 갖고 미디어 융합 시대에 임하기를 바란다. 책에 관한 정보 부족을 독서 장애요인으로 꼽는 다수 미디어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책 정보와 독서토론, 낭독, 저자 인터뷰, 책으로 읽는 세상 등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 프로그램을 다수 편성했으면 한다.
 
나아가, 없는 분야가 없는 수백개 케이블채널 가운데 유독 ‘책 전문 방송 채널’ 하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모색이 출판계에서부터 촉발되어야 할 것이다. 출판시장과 독서인구 감소를 원망하기에는 자구노력이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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