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3일 화요일

도서관 냉대

앞의 글에 이어서 김병익 선생(전 문학과지성사 대표, 문학평론가, 당시 동아일보 기자)이 쓴 글 하나도 여기에 옮겨 놓는다. 동아일보 1967년 7월 8일자 칼럼, 제목은 '도서관 냉대'. 종로도서관 사태가 글의 중심이 되고 있지만, 도서관 행정의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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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냉대
‘1시군 1도서관운동’은 어디로 갔나
근시안적인 문화정책 지양을
있는 것도 폐쇄, 운영중단되다니

‘상점 10개보다 도서관 하나를!’ 이 외침은 이번에 헐리게 될 종로도서관장 이홍구 씨의 것만이 아니다. 교육계가 그렇고 시민이 그렇고 또 경제적인 부를 획득하자는 후진국개발론자들의 요구기도 하다. 그리고 불도저 운전사들이 더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교양을 갖기 위해 자진해서 도서관의 터를 닦을 일이다.

그 불도저가 도서관을 부수고 거기에 상가를 짓는다. 국민의 개화를 위한 첩경으로 유학생 손에 의해 세워진 한국인 최초의 종로도서관은 거리로 내쫓길 판이고 상가를 짓기 위해 돈을 다 써버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열람석을 가진 남산도서관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근래 도서관계가 받는 재난, 이것은 무대 위 가설 건물의 화려한 규모에 현혹되어 그 실속에는 맹목한 우리 문화정책의 일단이기도 하다.

학교가 팽창하고 체육시설이 곳곳에 생기고 각종 문화기관이 확장되는데도 그 맨밑바탕에서 육성되어야 할 도서관은 해방 당시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고 위정자와 시민의 냉대 지역이고 정책 공허 지대였다. 전남 K군 군수가 기왕 세워논 “도서관을 없앨 수는 없고 귀찮게 예산만 털어낸다”고 투덜거리는 게 고작 도서관에 대해 갖는 관심이었다.

전국 1백80여 시군구가 가진 공공도서관은 61개, 3개 시군, 50만 명에 도서관 하나 꼴이고 이 비율은 우리보다 문화적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제국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자다. 도서관 전문인인 사서는 1백50명에 불과한데 그나마 서울 등 도시집중이어서 대부분의 지방 도서관은 사서 한 명을 두지 못하고 있다. 시군청에 소속된 지방 도서관 직원은 거의 임시직 또는 행정직에서 전보된 사람들.

도서관이 서고 속의 먼지를 털고 재수생의 공부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더 이상 위축될 수 없는 상태에서 비로소 일어났다. 독지가 엄대섭 씨는 교양과 농업기술의 개발을 위해 사비로 마을문고를 제작, 농어촌에 활발히 침투하고 있고 국회도서관은 서지작업에 비상한 정열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국립도서관은 현재 외국기관을 통한 협조를 직접 교섭중이다.

도서관계가 당국에 요구하는 사항은 작년의 ‘1시군 1도서관 설립운동’을 비롯하여 문교부 내에 도서관 전담의 계 설치, 사서관의 수당과 지위 확보, 지방도서관의 교육청으로의 이관 등 다방면에 뻗치고 있고 공화당도 도서관계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1시군 도서관 증설’을 이번 선거의 공약으로 세웠으며 문 문교부장관도 지난 4월 대구 발언에서 공공도서관 5개년 계획을 밝혔다. 내년 예산에 문교부는 40여 관을 설치하기 위해 5천만 원을 요청했다.

오늘날 도서관은 도서열람처로만 보지 않는다. 지난 4월초 대구에서 열린 공공도서관 회의에서 채택한 <도서관헌장>에서 지적하듯 “새 문화창조의 온상”이며 “사회문화의 센터, 지역개발의 중심”이다. 미국의 ‘차펠스 스트리트’ 도서관은 미술전시회, 연극 음악의 공연, 영화상영, 가정지도 등 시민생활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은 일종의 도서관세를 거둬 이 필수의 문화시설을 확장개선하고 있다.

선진국의 수준을 바라는 건 과욕이라 치더라도 정부의 그 흔한 ‘행정지원’을 약간이나마 부어준다면 우리 도서관계의 의욕이 허욕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지난 1월에 발표된 ‘AID레포트’가 건의하듯 분산된 현 도서관행정을 일원화시켜 문교부에 전담계로 귀속시켜야 할 것이다. 지방도서관은 근래 이관된 부산 대구시는 도서관을 제하고는 인사 예산 등이 지방자치단체에 속해 있어 독자적인 발전을 기할 수 없다.

문제는 도서관 예산 확보에 앞서 위정자들의 도서관 인식, 계획 달성의 도표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먼눈으로 내다보는 형안만 가졌다면 한쪽에서는 증설 요구와 계획이 한창인데 또 한쪽에서 아무 대책 없이 유서 깊은 도서관을 철거, 또는 최소한의 운영까지 중지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김병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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