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1일 총선의 결과로 사라지게 될 '녹색당'. 하지만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농민기본소득, 녹색당을 기억하라'라고 말한다. 2012년 4월 25일 시사인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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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의 승리로 끝난 선거 결과를 보다가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있다. 그것은 "정신이상이란 꼭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행태"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왜 이 말이 생각났는지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어쩐지 우리 모두가 지금 치유하기 어려운 어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선거가 끝나면 판에 박은 이야기들이 늘 쏟아진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명박 정권의 엄청난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패배한 까닭이 무엇인지 구구한 설명들이 개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유사한 결론에 귀착한다. 요컨대 야당 세력이 정권심판론만 들고 나왔지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그들이 후보단일화와 공천 작업에 쫓긴 나머지 구체적인 정책공약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해설도 곁들인다.
급조된 신생 정당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게다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부설 정책연구소를 가진-주요 정당이 어째서 정책공약을 선거에 임박해서 준비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즉, 만약에 시간이 있었다면 신뢰할 만한 비전과 대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나는 솔직히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당명을 바꿔가며 쇄신을 운위하고, 듣기 좋은 공약을 제시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말하지만, 그 모든 게 결국 헛소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완강히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철저히 외면하는 데 익숙한 그들의 체질이 쉽게 변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나라의 보물 중의 보물인 4대강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있음에도 끝끝내 침묵으로 일관해온 '정치 지도자'가 이끄는 정당에 대해서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행태는 새누리당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언제나 꼭 같은 행동을 되풀이해왔지만, 어차피 그들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는 것 말고는 다른 결과를 기대한 바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통합당이다. 한때 집권을 했으나 준비되지 않은 권력, 서툴고 실력 없는 권력이라는 조소를 당했고, 마침내 한·미 FTA 체결이라는 결정적인 패착에 의해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거의 완전히 상실했던 뼈아픈 경험이 민주통합당 사람들에게는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게 사실이라면, 민주통합당이야말로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정치집단의 전형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농민기본소득' 녹색당을 기억하라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민주통합당이 설득력 있는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번에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배포된 민주통합당의 홍보물을 보면, 이 나라의 농업에 관한 언급 자체가 없다. 이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다 알고 있듯이 역대 정권에 의해 우리 농촌은 끝없이 홀대를 당해왔고, 노무현 정부 시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우리나라 농민은 500만명에서 35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것, 즉 우리 농업이 조만간 사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아직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은 지난 4년을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허비했음을 고백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지속 가능한 농사를 중심에 두지 않는 어떠한 정책, 어떠한 비전도 허망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갈수록 문명사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상황이 일상화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농업 기반의 확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성장 시대는 이제 끝났음을 직시해야 한다. 성장을 전제로 한 복지국가의 설계도 이 상황에서는 결국 망상에 불과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이 상황을 주목하고, '농민기본소득'이라는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한 정당이 녹색당이었다. 녹색당은 당의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표도 얻지 못한 '군소 정당'이지만, 사상과 이념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정치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녹색당이 표방하는 가치의 때늦지 않은 실현 여부에 우리 모두의 사활이 걸려 있음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김종철 ( < 녹색평론 >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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