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년 2월 1일자 위행복(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인문학총연합회 사무총장)
차기 정부의 부처 개편안이 발표되면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단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컨트롤타워로 기능할 뿐 아니라 창의력과 상상력을 과학기술과 접목해 새로운 일자리와 성장 동력을 창출할 부서가 될 것이라 한다. 풍요로운 나라가 기대되면서도 유용성을 우선시하는 학술 정책에 대한 염려도 없지 않다.
선진 국가는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가 조화된 품격 높은 나라이고, 그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못지않게 인문학도 발전해야 한다. 인문학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질과 능력으로써 인류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한다. 인문학 진흥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풍요롭고 행복한 세상, 선진국 진입의 선결 요건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우리 사회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이 인문학 시민 강좌를 찾고, '인문 주간' 등 인문학 관련 행사를 꾸리는 지방자치단체나 기관도 많다. 인문학에 의한 '사회 치유'가 화두가 되고, 인문학과 세상의 소통이 예전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 기관 역시 '세계인문학포럼'을 개최하거나 '인문 도시' 같은 인문학 대중화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인문학 진흥을 위한 고민과 구체적 조치는 아직 없다.
미국은 인문 분야도 과학기술 못지않은 투자가 있어야 국가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각에서 1965년 대통령 직속의 '국립인문학재단(NEH)'을 설립했고, 인문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계속해왔다. 프랑스 교육부는 대학 연구 분야 재정의 20% 이상이 인문사회 분야에 투입되도록 조정한다. 학문 간 불균형을 정부가 나서서 수정하고 국가 차원의 인문학 진흥 체제 운영으로 품격 높은 나라를 지향해 온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한국연구재단의 과학기술 부문 2012년도 예산은 3조원에 달했는데 인문사회 부문은 2000억원에 불과했다. 'BK(두뇌한국)21' 사업은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투자는 구색 맞추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 'HK(인문한국)' 사업은 인문학의 학문 후속 세대 양성에는 기여하고 있지만, HK 교수들을 정년 보장 연구 전담 교수로 채용하도록 한 핵심 조항이 대학의 재정적 여건과 동떨어져서 사업이 꾸준히 발전할지 우려되고 있다.
이제는 인문학에 대한 적정한 지원 규모가 책정되어야 하고 타당하고 효율적인 제도 수립이 절실하다는 점을 지금까지 해온 경험이 알려준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역량도 훌쩍 커졌으니 인문학이 본령에 충실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국가 차원의 체제 수립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전망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인문학 전담 기구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한국의 인문학계는 1998년 '인문사회연구회'가 설립된 때부터 지금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 통합되기까지 줄곧 인문학 진흥책을 모색했고 상당한 연구 성과도 축적해왔다. 그랬기 때문에 정부의 실행 의지만 있으면 인문학 진흥 체제 수립과 운영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과정이다. 새 정부가 '인문진흥법'을 제정하고 '인문진흥원' 같은 독립적 기구를 설치하는 용단을 내림으로써 전문가들의 참여 속에서 바람직한 인문학 진흥 체제가 가동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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