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조갑상 선생의 칼럼--노벨문학상과 단편소설, 그리고 도서관

[부일시론] 노벨문학상과 단편소설, 그리고 도서관  

/조갑상 소설가·경성대교수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소식은 화제를 모으지만 올해 수상자 엘리스 먼로는 캐나다 작가로서는 처음이면서 평생 단편소설을 써온 여성작가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다 고은 시인과 황석영 소설가가 지속적으로 후보에 오르고 있어 국내적 관심도 컸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개인은 물론 국가의 영예가 된 지 오래며 출판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품들이 제대로 소개된 것은 1964년 신구문화사에서 7권 전집을 내면서이다. 그해 수상자는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로 실존주의철학과 문학의 현실참여 주장으로 당시 우리문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작가인데다 본인의 수상거부까지 더해 화제를 모았었다. 각 권의 서두에 국문학자와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머리말을 썼는데 모두들 우리도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절절이 토로하고 있다. 

우리 소설 세계적 수준엔 단편소설 공로 커

그 글 속에는 노벨문학상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당연히 자기에게 올 것이라는 김동인의 말도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우리 작가들이 일찍부터 노벨문학상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근대 단편소설 형성에 대한 자기 공로를 내세우려는 김동인의 자기과장적인 발언이기는 하지만, 아주 짧은 기간에 우리 소설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는 데에는 단편소설의 공로가 컸다. 현진건의 '빈처'로 시작해 염상섭, 채만식, 이태준, 김동리 등이 탄탄한 기반을 쌓았다.

단편은 우리 인생의 단면(독립된 진실의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안정적인 형식미 속에 담아내야 하기에 직관과 섬세함, 여백두기 등 다분히 장인적이면서도 예술적 공력이 요구되는데, 그런 면이 우리 민족성 내부에 내재해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작가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단편소설에만 전념한 소설가들도 있다. 김승옥과 오정희가 대표적이며, '요산문학상'으로 후배들을 격려하는 김정한도 중·단편만으로 반열에 오른 작가이다.

단편소설에 대한 작단의 관심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매달 문학잡지에 발표되는 작품 수도 상당할 뿐더러 다수의 문학상은 단편소설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부산에서는 단편소설 전문 문예지인 '좋은소설'이 계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게재작품 중에 유수한 문학상 수상작품이 나왔으며 지명도 있는 외부 소설가들의 참여와 더불어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다. 

잡지를 처음 기획했을 때는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작품길이를 200자 원고지 50~60장으로 생각했었다. 한 자리에 앉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의 미덕을 살려 보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단편들 중에는 의외로 길이가 짧은 작품들이 많다. 세계적 단편의 명수라는 체호프와 오 헨리의 작품 대다수가 그러하며 올해 수상자 먼로의 경우도 짤막한 작품이 의외로 많다. 우리 경우 김유정의 '동백꽃',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황순원의 '소나기' 등을 손쉽게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잡지의 발행호수가 늘어갈수록 작가들의 요구는 작품 길이를 늘리자는 것이었다. 단편이라 하더라도 소설의 본질이 현실 반영이라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60장 짧은 분량으로는 더 이상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의 하중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인지, 창작기법의 문제와 더불어 한번쯤 따져볼 문제인 것 같다. 

공공도서관 이용 노벨문학상 작가 나오기를

노벨문학상 소식을 빌려 우리 소설형편을 전하면서 독자들에게 소설(책)을 읽어보자는 이야기를 하려다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국공립 도서관 비율이 타 시·도에 비해 매우 낮다는 보도였다. 부산지역 자치단체 중에서 도서관이 하나뿐인 데가 다섯 곳이나 되고 경남도 여섯 곳이나 된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부산시 동래구와 인구가 비슷한 전남 여수시에는 7개의 도서관이 있는 반면 동래구에는 단 하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당장 문화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 우선순위와 결부되는 문제이기에 심각하게 다가온다. 물론 예산규모와 지역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지만 물적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지적자원에 대한 투자는 아낌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있을 리 없을 것이다. 공공 도서관이야말로 모두의 지적 목마름을 공정하게 채워주는 영구불변의 샘물 아니겠는가. 뒷날, 우리 아이들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나와 수상소감에서 내 문학수업은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3102200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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