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기사 스크랩--금융감독권과 관련하여

‘금융감독권 접수하라’ 모피아의 60년 전쟁

1999년 1월 금융감독원 현판식이 서울 여의도에서 열려, 참석한 김종필 국무총리(왼쪽 둘째)와 이헌재 금융감독원장(왼쪽 셋째) 등 관계자들이 현판식을 하고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경제 쏙] ‘금융감독체계 변천사’로 본 금융관료-민간의 대립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뜨겁다.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신설을 놓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갈등을 빚고,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위 해체 등 근본적 대수술을 주장한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역사는 해방 직후인 1950년까지 거슬러간다. 금융감독 기능은 누가 맡아야 하는 걸까?
금융정책과 감독의 분리, 금융감독기구의 민간기구화 등 ‘금융위원회 해체론’을 국내 금융학자 100여명이 꺼내든 것은 지난 4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방안은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권영세·서상섭 의원이 내놓은 관련 법률 개정안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조금 더 거슬러가면 1997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으로 만든 ‘금융개혁위원회’가 장고 끝에 내놓은 방안과도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이념과는 상관관계가 적다는 방증이다.
60년 남짓 이어져 온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이렇게 이념보다는 공무원인 금융 관료와 민간인 신분이면서 공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앙은행·금융감독원 간의 영역 갈등, 외환위기·금융위기와 같은 대외 환경 변화, 금융시장 성숙도, 헌법 해석 차이 등을 축으로 발전하거나 퇴보해왔다.
2008년 3월 전광우 금융위원회위원장(가운데)과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금융위원회 앞에서 현판식을 한 뒤 손뼉을 치고 있다. 김명진 <한겨레21>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세종로 출장소와 남대문 출장소 애초 금융감독권은 한국은행에 있었다. 정부 수립 2년 뒤인 1950년에 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은은 통화·신용·외환 정책을 총괄할 뿐만 아니라 은행에 대한 감독과 검사·제재 권한을 모두 가졌다. 당시 금융기관은 은행이 유일했던 탓에 한은이 금융감독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외환정책까지 한은에 내어 준 재무부는 스스로를 ‘(한은) 세종로 출장소’라고 불렀다.
1962년 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은은 추락하고 재무부로 금융감독 기능이 대거 넘어갔다. 한은법 개정으로, 한은은 외환 정책이 재무부(현 기획재정부)로 이관되고, 재무부에 은행 검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은행감독권한도 약화됐다. 이후 차례로 만들어진 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금융감독기구도 모두 재무부 산하로 편재가 됐다. 이번에는 한은이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가 된 셈이다.
이는 당시 정권이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전략을 추진한 것과 관련이 깊다. 최흥식 전 연세대 교수(현 하나금융지주 사장)는 2010년 발표한 한 논문에서 “정부 주도 성장기에는 성장을 위해 통화 공급을 원활히 하고 정부가 선정한 중점 전략 산업에 자금을 집중하기 위해 정부가 한은을 지배했다”고 썼다. ‘관치금융의 전성시대’에 맞춰진 금융감독 체계였다는 의미다.
1987년 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한은은 반전을 모색한다. 한은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정부(재무부)로부터의 통화 정책과 금융감독의 독립을 추구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다양한 대안들이 제출됐다. 하지만 이 역시 금융 관료들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탓에 5~7년에 걸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는 공전만 거듭하다 끝을 맺는다.
군사정권 시절 ‘관치금융 전성시대’
한은 ‘재무부 남대문출장소’ 전락
외환위기로 ‘금융관료 책임론’ 제기
금융감독 민간에 맡겨 견제 강화
MB정부 들어 ‘모피아의 반격’
금감원은 정책집행 하부기구 추락
글로벌 금융위기 계기로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신설 논의중
“근본적인 감독체계 개편 필요”
지난 4일 금융학자 100여명이
‘금융위 해체론’ 꺼내들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외환위기와 모피아의 위기 두번째 변곡점은 1997년 외환위기였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전반을 관장한 재무관료에 외환위기 책임론이 쏠렸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1997년 1월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금융개혁을 밀어붙인다. 민간위원이 중심이 된 금개위는 반년 남짓 동안의 논의 끝에 금통위 의장직을 재무부장관에서 한은총재로 바꾸고, 한은(은행)과 재정경제원(옛 재무부, 증권·보험·기금)이 업권별로 나눠 갖고 있던 금융감독기능을 통합해 공적 민간기구인 금융감독원과 이를 지배하는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 신설을 권고한다. 금감위에는 금융관료로 구성되는 사무국이 마련됐는데, 그 인원은 20명 안팎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외환위기를 계기로 금융감독체계에서 금융관료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금개위 안은 금융정책은 정부(재정경제부·재정경제원 후신)에, 금융감독은 민간(금융감독원)에 맡겨 서로 분리시킨 게 핵심이다. 금융감독 체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도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관료들의 상실감은 컸다. 이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05년에 펴낸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 잘 드러난다. 1997년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 과정에 대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차관으로 참여했던 강 전 장관은 최종 합의 사항(금감위 사무국에 소수의 공무원만 두는 안)에 대한 재경원 실무자들의 반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얼마 안 가 100명을 넘길 것이다. 지금은 사무국이라는 불씨를 켜두는 것이 중요하다. 너희들이 빠른 시일 내에 금융감독청으로 개편하면 된다.” 훗날을 도모하자는 취지였다.
금융감독체계 변천사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올드보이의 귀환과 모피아의 반전 가장 괴이한 변화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2월에 이뤄졌다. 당시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정 등을 통해 새로 만든 금융위원회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던 금융정책 기능을 부여한다. 금융위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감독 기능을 갖고 있었던 점에서 이런 체계 개편은 금융위에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몰아준 것이었다.
동시에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분리되는 등 금감원은 금융정책을 집행하는 하부 기구로 위상이 떨어졌다. 1997년 전인 관치금융 전성시대에 짜인 금융감독 체제로 복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 분야 최대 실권자로 복귀한 강 전 장관이 10여년 전에 후배 금융 관료에게 밝혔던 복안을 현실화시킨 셈이다.
이런 개편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1998년 이후에도 신용카드 대란 등 금융감독이 금융정책에 종속되면서 빚어진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개편 당시에는 이런 지적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법학)는 “당시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하면서 함께 진행했는데 불과 3주 만에 모든 논의를 끝냈다”고 말했다.
2008년 이후 금융관료들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됐다. 그 일면 중 하나가 금감원 인사다. 2008년 법 개정 이후 임명된 세 명의 금감원장은 모두 전직 금융관료가 독식했다. 또 금감원 내 2인자인 수석부원장직을 신설해 이 자리에도 세 차례 연이어 금융관료가 임명됐다. 금감원은 공적 민간 기구라는 외양은 띄지만 실질은 상당부분 금융관료 지배 아래 있는 셈이다.
■ 금융위기와 소비자보호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 기구 신설 문제는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기가 됐다. 미국·영국 등 주요 국가들에선 금융위기 원인으로 금융감독체계를 지목하며,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같은 선상에서 논의가 진행됐다. 현재 금융위는 금감원에서 소비자보호기능을 떼어내 독립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학계·정치권 등에선 더 근본적인 감독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김홍범 교수는 “공무원들은 감독체계 개편을 협소한 영역(금소원 분리)에서만 다루려고 하고 있다. 오늘날 실정에 맞도록 금융위·금감원·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감독 유관기관을 모두 포괄하는 전반적인 개편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7년 금개위를 놓고 일부에선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각 분야의 전문가를 끌어들여 근본적인 논의의 장으로 다시 한번 금개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감독기구 개편을 금융관료 손에만 맡겨선 안 된다는 의미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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