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일 월요일

대한민국은 지금 글쓰기 열풍/ 세계일보 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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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취업… 소통… 성찰의 답을 찾아… 나만의 글을 쓴다

대한민국은 지금 글쓰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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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중략)… 전체적이요 생명체적인 것이 되기 위해 말에서보다 더 설계하고 더 선택하고 더 조직·개발·통제하는 공부와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필요한 공부와 기술을 곧 ‘문장작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으로 일컬어지며 한국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소설가 이태준은 글쓰기론을 담은 저서 ‘문장강화’에서 글을 쓰기 위한 공부와 기술을 강조했다. 짧은 글을 쓰더라도 말을 할 때보다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최근 저마다 ‘문장력’을 강화하느라 바쁘다. 취업을 위해, 소통을 위해, 성찰을 위해 사람들은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맞춰 글쓰기 강좌가 늘고, 글쓰기 책 출판이 봇물을 이루면서 ‘글쓰기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안 쓰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대학생 김모(26)씨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취업 자기소개서 클리닉에 다닌다. 취업준비생으로 올해 상반기 취업시장에 처음 뛰어들기에 앞서 글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선배들이 많을 때는 하루에 한 개씩 입사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을 봤다”며 “웬만한 글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첨삭을 받고 있는데 혼자 할 때보다 확실히 낫다”고 말했다.

대학생에게 글쓰기는 생존 전략이다. 입사는 물론 학생 때 대외활동을 하더라도 자기소개서 제출은 필수인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안 쓰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되면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이 늘었다.

각 대학은 학과 수업 외 별도의 글쓰기 클리닉을 만들고 있다. 건국대는 2011학년도 2학기부터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주로 학부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클리닉에서는 자기소개서, 리포트 등 학생들이 써야 하는 모든 글쓰기를 가르친다. 지난해에만 400여명의 학생이 이용했다.

건국대의 한 관계자는 “글쓰기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틀을 못 잡고 주제만 들고와서 쓰는 법을 물어보는 학생도 있다”며 “지도해주면 어느 정도 개념이 서니까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건국대는 1학기부터는 이공계 학생만을 위한 글쓰기 클리닉을 개설할 예정이다.


◆글쓰기로 나를 돌아본다

대학생이 실용적인 이유로 글쓰기 삼매경에 빠졌다면 일반인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자서전 쓰기에 빠진 70∼80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 ‘웰다잉’ 바람이 불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일의 하나로 자서전 쓰기가 각광받고 있다. 평생 글 하나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삶에 쫓겨 살아온 이들은 종이와 펜을 앞에 두고 인생을 반추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에서 지난해 자서전 쓰기 강좌를 수강한 박모(70)씨는 “처음에는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자서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쓰고 나니 인생에서 좋았거나 아쉬웠던 기억을 정리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30∼50대는 자기 표현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글쓰기에 빠지고 있다. 유행 따라 인터넷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시작했다가 ‘이왕 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해 보자’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배운다.

창작 욕구가 끓어오르는 사람을 위한 강좌도 잇따라 개설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무료 글쓰기 강좌인 ‘글쓰기 틔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 관악구의 평생학습관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글쓰기 독서반’을 열고 있다. 학습관의 한 관계자는 “강좌 개설 후 수강생이 꾸준히 늘어 반을 증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쓰기 책 봇물… 판매량 증가

글쓰기 열풍이 사회현상이 되면서 관련 강좌뿐 아니라 서적 출판과 판매 역시 늘었다.

교보문고 집계결과 글쓰기 관련 서적 판매 증가량은 2012년이 2011년보다 9.3%, 2013년 12.1%에 이어 지난해 37.3%로 훌쩍 뛰면서 처음으로 판매량이 10만부를 넘어섰다.

단순히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들이 글쓰기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든 책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활동한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지난해 내놓은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 인기를 끌자 2탄으로 ‘회장님의 글쓰기’를 출간했다. 강씨는 책에서 자신이 만났던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들의 글쓰기 특징과 글 잘 쓰는 법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전문가들은 글쓰기 열풍의 이유로 소통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SNS가 발달한 매체적 요인을 꼽았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국어국문학)는 “과거에는 백일장 등 문예적 글쓰기를 강조했지만 최근에는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쓰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며 “글을 종이에 써서 전달하는 시대에는 글쓰기를 할 일이 많지 않았지만 SNS 활성화로 소박하게 글을 올려야 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 글쓰기 열풍의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us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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