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호르크스의 '환상을 깨는 미래 전망'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05/2010030501239.html

'뛰어난 기술' 아닌 '편안한 기술'을 추구하라
'인간 속성' 놓친 콩코드機·화상통화… 하이테크임에도 주변적 기술로 전락
많은 이가 전자책의 성공을 확신하지만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고 더 많아질 것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치 않는다"
똑소리 나는 인조인간보다는 할머니처럼 여성적이고 편안함을 주는 기술 원해
대량생산 산업화 이후는 맞춤형 디자인 경제 시대… 메가트렌드 놓치지 마라


미래의 삶'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짜증 내며 운전할 필요없이 가만 앉아 있어도 절로 안전하게 달리는 승용차로 출근하는 샐러리맨…. 교통 체증이 괴롭다면 영화 '제5원소'에서 전직 특수요원 브루스 윌리스가 했던 것처럼 멋지게 미래형 스카이카를 타고 빌딩 사이를 이리저리 날며 출근하는 건 어떨까?

가전제품들이 더 똑똑해지는 미래에는 '귀차니스트' 독신 남성들의 걱정도 덜어질 것 같다. 시들어 빠진 야채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팩 하나 남은 썰렁한 냉장고 대신, '똑똑한 냉장고'가 척척 알아서 근처 수퍼마켓으로 주문서를 넣고 신선한 우유와 계란, 시원한 맥주를 늘 배달받아놓아서 살림 걱정도 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의 첨단 기술은 이미 손에 잡힐 듯 다가온 미래일 듯도 싶다.

지난달 24일 서울 남산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 1층 커피숍.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실눈을 뜬 채 미래학자와의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첨단 기술을 자랑하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는 ‘박물관 유물’이 되어버리고, 구식 자전거는 점점 더 사랑받는 ‘테크놀로지 생태계’의 비밀은 무엇일까? 공상 과학 영화의 출연자처럼 생겼으면서도, 독일의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씨는 정작 공상 과학 영화 같은 미래론을 과감히 거부한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시선 속에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듯한 이미지의 사나이가 포착됐다. 입고 있는 검정 양복 대신 우주복을 걸치면 영락없는 우주선 함장 같은 외모였다. 독일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55)씨였다.

직업도 외양도 '미래적'인 그에게, 잔뜩 상상했던 유토피아 같은 미래를 들으려는데 뜻밖에도 그는 "요즘 떠드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은 완전 지옥"이라며 그 환상을 깨뜨려 버린다.

수많은 사람이 종이책의 퇴장과 전자책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 시대에 호르크스씨는 "종이는 자료 보관에 탁월하고, 건전지도 필요없으며 다운되지도 않는다. 재활용 종이는 시력도 보호하고 신발 속도 채워주지 않느냐"며 엉뚱하게도 종이의 장점을 거듭 강조하는 '복고풍(復古風) 미래학자'다.

한 걸음 더 나가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고 더 많아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책은 단순히 일개 매체가 아니라, 촉각, 청각, 시각, 그밖의 다양한 감각 체계까지 연결된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자신 있게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로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결코 직선적이지가 않다"는 논리를 편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반드시 로테크가 아닌 하이테크만이 승리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자연계에서 생물종들이 그렇듯 테크놀로지도 생존을 위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른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기술 생태계'에서 어떤 테크놀로지는 생존하고, 어떤 테크놀로지는 도태될까?

호르크스씨는 '박물관 유물'로 도태되어버린 하이테크의 대표 사례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제일 먼저 꼽았다.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일도 할 수 있고 지상과의 통화도 가능해진 세상이라, '시간의 경제성'을 따져본다면 사람들은 굳이 비싼 돈 내고 런던과 뉴욕을 3시간 앞당기는 콩코드기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100년도 넘게, 전화의 최종 진화체로 상상해 왔던 '화상 전화'가 막상 현실화되어서는 별로 대접 못 받는 것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음성 통화로 수다를 떨고, 얼굴 붉히며 사랑 고백하기보다는 짧은 문자 메시지로 사랑을 담아 보낸다. 왜? 해답은 '인간 속성'에 있다.

호르크스씨는 "음성 전화가 당연히 화상 전화로 발전하리라는 예상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근본적인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선진 문화에서, 사람들은 더 가까워지는 통신 매체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효과와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카메라 앞에서 경직되는 건 인간의 당연한 속성이기도 하다. 깔끔하게 정리된 환경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미소까지 지어야 하는 화상 전화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을 경직시키고,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불편한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상 전화는 보고 또 보면서 쉴 새 없이 밀어(蜜語) 나누기를 즐기는 이탈리아 몇몇 지역에서나 유독 애용되는 주변적 기술이 되어버렸다.

책은 이미 국내에 여러 권 번역 소개됐지만, 미래학자인 호르크스씨가 한국에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WDC 세계디자인도시 서미트'에서 '디자인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Weekly BIZ가 만났다.

호르크스씨는 "'혁신'을 이룬 애플의 아이폰과 비교하면, 삼성전자는 공장에서 보다 나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산업시대의 '고전적' 기업"이라고 유형지으며 "혁신이 이뤄진 이 시장에서 삼성은 어디에 서 있는가? 개척자가 못되고, 2년 후쯤 뒤따라가서는 너무 늦었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수족처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컴퓨터에 대해서도, "이제 컴퓨터 시대, 정보화 시대는 꼭짓점을 지나 하향하고 있다"는 과감한 진단을 내렸다.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미래관(未來觀), 기술관(技術觀)에는 그가 성장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저서 〈테크놀로지의 종말〉에서 "내 책은 어릴 적 가족이 세들어 산 집의 먼지 쌓인 다락방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아버지 베르너 호르크스씨는 총각 시절부터 발명한 자동화기기로 작은 다락방을 잔뜩 꾸며, 1950년 당시 신문에 소개된 적도 있다. 아침 6시 30분이면 전기 주전자의 전원이 켜지고, 6시 33분이면 라디오가 켜지며, 6시 36분이면 환풍기 작동…. 호르크스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접착제 냄새를 풍기며 지하실 작업대에 서 있던 모습이었다.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낙관도, 비관도 피하라

―어떻게 해서 미래 연구에 관심을 쏟게 된 건가요?

"저는 달 착륙을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머지않아, 머리 위에 은하수와 별이 빛나는 우주에서 살게 되리라는 상상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자랐지요. 그러다가 베트남전쟁을 맞으면서는 전 세계가 미래 염세주의에 빠졌습니다. 다시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세상을 지배하더니,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니 온 세상이 염세주의로 돌아섰지요."

이 변덕스러운 미래 예측을 바라보면서, 호르크스씨는 공상과학 영화 같은 미래론에 대해서는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우울한 미래 예측에 대해서는 '미디어를 통해 확대생산된 신경과민적 유행병'으로 진단 내린다. 스스로는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는 신중한 낙관론 쪽에 서있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얘기를 재미있게 봤어요.

"아버지는 2차대전 이후의 전형적인 독일 엔지니어셨지요. 공장 자동화처럼, 그 시절에 집안을 몽땅 자동화할 공상을 한 거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발명품 때문에, 어머니는 소파에 앉는 것조차 꺼릴 정도셨어요, (호르크스씨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절반쯤 일어나는 시늉을 해보이며) 소파에 감전될까 봐 걱정되어서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테크놀로지(technology·기술)를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시각도 매우 다르다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호르크스씨는 '남성적 기술(male technology)'과 '여성적 기술(female technology)'이라는 표현을 썼다.

 과거에서 본 미래의 모습은… 1 담배를 피우면서 화상 통화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1877년의 그림. 2 미래를 가상해서 그린 1910년대의 그림엽서. 3 1950년 독일 신문에 실린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아버지 베르너 호르크스의 기사. 그는 ‘홈 오토메이션’을 꿈꾼 발명가이자 공상가였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세상을 조종하고 제어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분출하지요. 하지만 여성들은 대체로 테크놀로지에 대해 회의적인 것 같아요. 지금 오스트리아 빈의 외곽에 우리 가족이 살 미래 주택을 짓는데, 저는 상당히 여성적인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꼭 '우주선'처럼 만들어놓으려 듭니다. 그에 비하면 아내가 그리는 집은 '아늑한 둥지' 같아요."

그는 테크놀로지를 '곁에서 불평 없이 우리를 돌봐주는 할머니 같은 존재'에 비유했다. 혼자서 척척 수퍼마켓에 전자 주문서를 넣어 필요한 식료품을 채워놓는 '똑똑한 냉장고', '빵을 똑바르게 넣어라'라고 잔소리하는 '똑똑한 토스터기', 노인 수발을 책임진다는 '인조인간 로봇'의 성공 가능성에 그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지금껏 테크놀로지의 생존경쟁에서도 '첨단 하이테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상호작용하고 타협한 결과 편안함을 주는 테크놀로지가 살아남고 또 그런 방향으로 테크놀로지가 진화한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지났다"―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올드 노멀'에서 '뉴 노멀'의 시대로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는 어떻게 트렌드가 바뀐 건가요?

"아, 그건 또 다른 사이클인데…. 제가 보는, 지난 200년간의 더 긴 사이클에서 보자면, 1830년대 증기기관차와 면직물 시대, 1880년대 기차와 철강, 1910년대 전기와 화학, 1950년대 자동차와 석유 시대를 지나 1990년대부터 컴퓨터와 정보화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정보화 시대가 이제 정점을 지나 하향 단계로 접어들고 있지요. 다음은 '그린 테크놀로지(green technology)'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호르크스씨가 "정보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지만, 앞으로는 컴퓨터나 IT가 별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컴퓨터는 이미 현대의 비즈니스와 일상생활에 매우 중요한 도구로 정착했다. 자동차가 보편화된 뒤에야 자동차 오염 문제가 제기됐듯, IT 혁명이 성공하면서 그 후유증이 나타나는 기술 진입의 2, 3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그는 저서 〈미래, 진화의 코드를 읽어라〉에서 IT 혁명의 성공 이후 나타나고 있는 생산성의 4가지 패러독스를 자세히 설명했다. 가령 기업이 데이터를 많이 생산할수록 오히려 이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정보분석가의 고용으로 비용이 더 많이 투입되는가 하면(지식정보의 패러독스), 컴퓨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높은 IT 투자로 인해 생산성은 되레 하락하며(복잡성의 패러독스), 연락 가능한 통신수단은 전보다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이메일 보내고, 전화하고, 휴대폰까지 동원해야만 겨우 연락이 닿는 상황(연락가능성의 패러독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버뱅킹, 사이버판매 등 대부분의 회사가 고객들을 가상공간으로 밀어 넣으면서, 고객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모순(고객만족 패러독스)에도 직면했다는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그가 테이블 위에 놓아둔 내 삼성전자 휴대전화로 시선을 흘낏 주었다.

"아, 이건 1년 반 전에 산 것이라…"하고 설명을 다는 내게, 그는 '1년 넘은 구형이든, 3개월 전 나온 신형이든 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냈다. 그러면서 산업화 이후에 걸맞은 '스마트 테크놀로지(smart technology)'의 대표 상품으로 극찬을 했다.

"노키아는 지난해 무려 450종의 다른 제품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중시한 '아이폰' 하나로 실질적인 혁신을 이뤘습니다. 촉각을 중시하는 인간의 욕구에도, 사회적 요구에도 부합되기 때문이지요. 그에 비하면 보다 나은 품질의 제품을 추구하는 삼성전자는 이 시장에서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요? 개척자 애플에 이어, 마이크로소프트나 삼성전자가 2년쯤 뒤에 따라가는 건 너무 늦어요."

그러면서 호르크스는 미래의 가장 흥미로운 시장은 '삶의 질'과 관련된 시장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에 와서 한 기조연설에서도 "산업화 시대에는 물건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대량생산했지만, 앞으로는 물건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살피면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디자인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 회장은 어떻게 해서 '아이폰' 같은 혁신을 가능케 했을까요?

"위기감이지요. 비슷한 나이에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에 비해 100배나 큰 회사를 일구었습니다. 심적 트라우마(trauma·外傷)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혁신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 싹틉니다. 한국도 100년 전 식민지를 경험했지만, 온갖 어려움을 뚫고 이렇게 성공하지 않았나요."

내친김에 호르크스씨는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도요타도 새로운 사이클에서 출구를 찾아낸다면 위기 탈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린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걸맞게 전기차로 승부한다면 출구가 보일 것이라는 조언이다.

종이의 퇴장, 신문의 쇠퇴가 당연한 명제처럼 휘날리는 시대에, 신문기자로서는 '종이 르네상스'를 부르짖는 호르크스씨의 주장에도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플은 야심 차게 '아이패드'도 내놨습니다. 아이패드도 아이폰만큼 성공할 것으로 보시나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지금 짓는 미래 주택에 스크린을 없앨 작정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스크린에, 노트북에, 아이패드에, 휴대전화에…. 너무 많은 기기에 사람들은 결코 편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만약 아이패드나 킨들의 다음 세대가 종이처럼 둘둘 말릴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호기심을 가져라, 실수하라, 놀아라!―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나요?

"지금까지 기업들은 혁신을 내부에서 바깥으로, 기업에서 시장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이제는 '밖으로부터의 혁신'에 눈떠야 합니다. 고객은 단지 품질이 좀 개선된 제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제품, 또는 제품 아닌 서비스를 원할지 모릅니다. 여성적 디자인, 남성뿐 아니라 여성 소비자의 감성을 균형 있게 반영한 제품을 고민해야지요."

지금까지와 다르게 생각하려면 개인은 물론 기업들도 학습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금까지의 학습이란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실수를 없애는 걸로 이해됐지만, '밖으로부터의 혁신'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전혀 다르다. 그는 "호기심을 가져라, 용감하게 실수하라, 놀아라"고 주문했다.

미래학자이자, 트렌드 연구가이지만, 그는 기업들의 입에 딱 맞는 '제품 트렌드'를 떠넣어 주는 건 아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면 여러 단계로 된 '트렌드 구조'부터 알아야 한다. 흔히 쓰이는 트렌드는 계절 따라 변하거나 마케팅의 영향을 받는 가장 짧은 주기의 '패션 트렌드' 또는 '제품 트렌드'를 지칭한다.

호르크스가 말하는 트렌드란 어떤 발달이 진행되는 방향, 즉 과정이나 시간의 경과에 따른 움직임이요, 여러 층의 위계 구조로 되어있다. '메타트렌드→메가트렌드→사회문화 트렌드→소비자 트렌드→제품·패션 트렌드'의 구조다.

이 가운데 '메타트렌드'는 자연의 기본법칙처럼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보편적 트렌드를 말한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으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메가트렌드'이다. 이는 최소 30~50년간 지속되면서 글로벌한 성격을 띠는 거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사회 변화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메가트렌드를 무시한다면 미래를 잃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메가트렌드로, 익히 알려진 '세계화' 외에도, 호르크스는 '고령화' '건강' '새로운 노동' '교육' '여성' '개인화' 등을 뽑았다.

가령 '똑똑한 냉장고'처럼 주변을 제어하고 조정하려는 남성적 테크놀로지는, 우리 시대의 메가트렌드가 된 '여성화된 지구'에서는 별로 먹혀들지 않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인간과의 상호 소통을 중시한 호르크스의 생각들은, 이번 방한에서 연설한 '미래 도시' 개념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미래 도시를 '첨단 하이테크의 우주형'이 아닌, 도시에 자연을 품은 '그리노폴리스(Greenopolis)'가 될 것으로 봤다.

―미래의 이상적인 도시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디자인은 단순히 멋진 외관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환경과 관계 그리고 감성까지 디자인하지요. 즉 디자인은 우리가 주체자가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새로운 노동계층인 '창의적 계층'이 활동하고, 인간과 상호 교류하는 '스마트 테크놀로지'가 활용되며,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하는 '그린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시가 이상적인 미래 도시이지요."

호르크스는 영국인 아내, 두 자녀와 함께 10년 전 오스트리아의 수도 으로 이사 갔다. 런던-프랑크푸르트-빈을 오가며 생활하는 자신을 '유럽인'이라고 불렀다. 현재 빈 외곽에 미래의 삶을 체험해 보려고 '미래 주택'을 짓고 있다.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이면서 사무실로도 쓸 계획이다. 전체 면적 250㎡에 작은 우주선 모습인데, 천장을 유리로 해서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 집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하루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삶을 앞당겨 보게 되는 걸까.

마티아스 호르크스1955년 독일 태생. 사회학을 전공하고 〈자이트〉 〈템포〉 〈메리안〉 등의 잡지 편집장을 지낸 저널리스트 출신이다. 1992년 함부르크 트렌드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트렌드 분석에 뛰어들었다. 199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미래연구소'를 설립하고 메가 트렌드 및 소비자 트렌드 등을 연구하고 있다. 휴렛팩커드, 유니레버, 노키아, 인텔, BMW 등의 글로벌 기업에 컨설팅도 했다.

저서로는 〈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 〈미래에 집중하라〉 〈미래, 진화의 코드를 읽어라〉 〈미래를 읽는 8가지 조건〉 〈브랜드 예찬: 제품이 아이콘이 되기까지〉 〈테크놀로지의 종말〉 등이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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