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화요일

평화를 위한 십자가의 길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도 아니고,
형제 간의 다툼이 멈춘 상태도 아닙니다.

나라와 나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과 하느님,
이웃과 형제자매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우정을 맺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취되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우정은 그분의 은총으로 비롯되고
우리 자신들의 노력과 헌신 속에서 맺어집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우리에게 육신을 내어주면서도 버려지는 산천초목들,
굶주리고 학대받으며 목마름에 지친 이들과 맺는 연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맘몬이라는 재물신에 사로잡힌 권력자들과
탐욕에 눈이 먼 이들 때문에 상처받아 신음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물질주의에 오염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피조물 모두가 상품화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본래 모습대로, 자유롭게 되돌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당신이 먼저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함께 걷자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1,

그분은 침묵하셨습니다.
빌라도에게 속한 세상과 하느님께 속한 백성들 사이에서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과 무력한 백성들 사이에서
비열한 부자들과 가난한 백성들 사이에서
그분은 땅에 발을 더 굳건히 딛기 위해 하늘을 더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분은 침묵하셨습니다.
유다의 사제들이 그분을 고발하고
로마의 권력자들이 사형선고를 내릴 적에도
고요히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만을 응시하셨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
외롭게 고달픈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2.

그분은 목수의 아들이셨습니다.
나무의 향과 끌칼의 날카로움이 만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창조됩니다.
나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분 앞에선 금속성 끌칼도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모든 게 그분 손끝에 닿으면 일용한 양식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이 곧 그 음식이 되어 저희에게 오셨습니다.

목수의 작업대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노동자들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며 사셨던 나자렛 예수,
그분이 십자나무를 당신의 등으로 떠받치고
당신의 손으로 어루만지십니다.

그분에게 닿으면 죽음조차 거룩해집니다.

 

3.

대한민국은 공사중입니다.
포크레인의 굉음이 미치지 않는 땅이 없고
인간의 탐욕이 부른 아수라장이 되지 않은 강이 없습니다.

오손도손 터잡고 살던 가난한 이웃들은 뉴타운 개발로 천지사방 흩어지고
객지에 객이 되어 움이라도 파고 들어가 살아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선 집이 없습니다.
공생활 3년동안 정처없이 철거민처럼 떠돌아 다녔습니다.
이 세상 모든 가련한 인생들이 따뜻한 보금자리 한자락 마련할 때까지
하느님이 옷자락으로 발가벗은 백성을 덮어주기 위하여
당신은 여전히 지금도 정처없고, 당신의 집을 갖지 않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살던 집에서 내몰릴 때마다
무르팍이 꺽이고 주저앉던 그분, 고통 속에 아파하신 그분을 생각합니다.


 

4.

이 세상은 하느님의 그늘입니다.
당신의 품이며, 당신의 얼굴입니다.
당신은 어머니와 같아서 저를 품고 제 자식들을 품고
세상의 모든 목숨들을 거두어 먹이십니다.

오늘은 그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늘은 당신의 마음이 비수에 찔린듯 아파하십니다.
대한민국의 산천초목이 몸살을 앓고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이 젖줄이 끊길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목숨줄을 대고 있는 생떼같은 자식들이 굶주릴까 염려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래서 말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와 저를 위해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어머니, 형제들과 자매들을 위해 제가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고 있습니다."
"어머니, 그러나 걱정 마세요. 저는 당신의 품을 잊지않고 있어요.
그 자비를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 때문에 오늘은 힘이 나네요."

 

5.

가련한 인생을 돌보아주시고
위태로운 목숨들을 안아 주시는 그분은 지금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다.
그분이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동안, 우리가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그분께서는 손도 발도 없습니다. 당신의 손과 발밖에는
그분께서는 당신의 눈을 통하여
이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발로 세상을 다니시며 선을 행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손으로 온 세상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손이 그분의 손이며
당신의 발이 그분의 발이며
당신의 눈이 그분의 눈이며
당신이 그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6.

그분에게 닿으면, 모든 게 그분이 됩니다.
당신은 그분을 만났습니까?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습니까?
그분의 땀을 닦아 드렸나요?

그분 얼굴 빛에 물들어 내 가슴이 그분처럼 따뜻해졌는지
그분께서 묻고 계십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 하신
그분께서 저희에게 "누구의 손을 잡아주었는지?' 묻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네 손에 닿아 네가 나처럼 일해 주길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애타는 마음을,
사경을 헤매는 아픈 이들의 병실을,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수형인의 간절함을,
아직은 맑은 물가에서 놀고 있는 4대강 생명들을,
지진과 전쟁의 상처 속에 목놓아 우는 이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한 처지를 보듬어 안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일해 왔는지 묻는 것입니다.

 

7.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신 주님입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세상만물 모두가 제 생긴대로 살고 신명대로 흘러서
창조 때의 아름다움을 지켜 가라고 이르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

다만 인간의 마음이 제 욕심을 따라,
제 탐욕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해
물줄기를 콘크리트로 줄세우고 흙으로 덮어
그 강에 깃들어 살던 목숨들의 숨통을 막아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영을 사람이 가두어 두지 못하듯이
뭇 생명의 원천인 강물 역시 사람이 편리한대로 가두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대로 두어도 참 좋더라" 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십자나무에 못질을 하듯, 생명의 강에 콘크리트를 들이붓는 불경한 마음을
주님 거두어 주시고, 우리가 물줄기를 다시 트게 하소서.
넘어진 우리의 양심을 다시 일으켜주소서.

 

8,

오늘, 고통받는 자가 슬퍼하는 자를 위로합니다.
오늘, 슬퍼하는 자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멀쩡한 이들을 다독거립니다.

주님께서는 제 일로 고통받고, 남의 일로 슬퍼하는 자를 위로합니다.
그들은 그분의 위로를 받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위로받을 일 없이 잘 사는 이들은 불행합니다.

탈도 많고 문제도 많은 대한민국에서
오늘, 살만하다고 장담하는 이들은 어리석습니다.
남의 슬픔이 내일은 내 슬픔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오늘 당장 고통받는 이들의 곁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안에 당신도 계시겠다고 이르십니다.
그분과 더불어 슬픔의 강을 건너가자고 권하십니다.

 

9.

작년 한 해 그나마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겼던 분들이 연이어 돌아가셨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마저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분들과 더불어 민주주의는 장례식을 치르고
개발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대한민국입니다.
국민에게 한이 많아 대한민국(大恨民國)입니다.

지금 일자리 없는 사람들 여전히 일자리 없을 것이고,
지금 제 집에서 쫒겨나는 사람들 여전히 살 곳을 찾지 못하고,
지금 권리가 없는 사람들 여전히 인권이 유린될 것이고,
지금 학대받는 사람들 여전히 아픔이 계속될 것이고,
지금 부자인 사람들 여전히 그 부가 날로 커질 것이고,
지금 권력을 지닌 사람들 여전히 위세를 떨칠 것이라고 믿는
불신앙 시대를 우리는 건너가고 있습니다.  
반복음적인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권세 있다는 자들을 내치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는 주님,
하느님밖에는 주인이 따로 없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들밖에 없음을 우리가 다시 새기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오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10.

참혹한 시절입니다. 온갖 생명과 백성들이 유린되는 세월입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권력이
칼 위에서 춤추는 시대입니다.

예언자가 감옥에 가고
선량한 시민들이 거리로 내몰리며
의롭다는 자들조차 돈 봉투를 쥐고 떠나는 참혹한 시절입니다.

주님, 고난 가운데 있는 저희와 함께 하소서.
주님, 안간힘으로 자녀를 돌보려는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소서.
무너지는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의인들을 축복하소서.

우리가 당신의 복음 때문에 손가락질 당하고
우리가 당신의 생명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고
우리가 당신의 진리 때문에 바보 취급을 당하더라도
우리가 지치지 않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끝내 당신이 승리하리라 믿으며,
남은 힘 모아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평등평화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투신하게 하소서.
그 안에서 행복하게 하소서. 


 

11.

우리시대에 교회가 무엇입니까?
영혼의 복락을 약속해주는 증권거래소입니까?
아니면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이만저만한 사랑을 나누는 싸롱입니까?  

고난이 많은 시대에 교회가 풍요를 누린다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슬픔이 많은 시대에 교회 안에만 웃음소리 낭자하다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의 권력자처럼 교회 역시 권력이 난무한다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제 땅에서 유배된 자들의 터전에 마천루 같은 빌딩을 짓고
성채와 같은 아파트를 짓듯이 성당을 올리느라 분주하다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과 다르게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 깊숙이 파고들지만,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흥정하고 거래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한번 더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거저 주시는 사랑,
예수님이 몸 바쳐 주시는 평화를 위해
교회는 먼저 나태한 자신을 못박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12.

한용운 시인처럼 입을 떼고 싶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 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3.

"이제 평화가 왔다"고 알리는 이의 발걸음이 그리도 빛나는 것은
"이제 우리가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이의 발음이 그리도 아름다운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평화를 그리도 간절히 원했던 탓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참사람이 되라고 목타게 호소하셨던 까닭입니다.

이제 그분은 당신의 몫을 다 하시고 내려오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에서 우리가 손잡은 땅으로 낮게 내려 앉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련한 집으로 그분을 모셔야 합니다.
거기서 다정한 이야기 나누고, 서로가 네 덕분이다,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평화가 피어나고
우리가 건네는 말 마디 마다 사랑이 묻어나게 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나누고, 세상이 나누게 해야 합니다.

 

14.

이제 그분의 육신이 이 땅에 온전히 묻히셨습니다.
집 없이 떠돌던 그분이 이제 당신 집을 지으셨습니다.

이 산과 바다, 이 땅에 흐르는 강물 속에 그분이 계십니다.
새들과 벗하고 물고기들과 친구합니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 그분이 계시고
찰랑이는 파도 속에 그분이 계십니다.

발바닥을 간질거리는 흙먼지 속에 그분이 계시고
싹트는 풀포기 사이에 그분 숨어 계십니다.

죽으시고 묻히심으로써 이제 비로소 우주와 하나가 되신 주님.
그분이 우리와 다함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대, 어디 있느냐고,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대답할 준비 되어 있습니까?

댓글 2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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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rackback from: 원조 교제나 매춘 여행의 온상으로도 통한다.
    겨울의 막바지다.. 한풀 꺾인 듯하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다. 게다가 왜 이리 눈비가 내리는지 짜증 나는 요즘이다. 어디든 트인 공간에 가서 새파란 바다와 하늘 속에서 마음껏 쉬고 싶어지는 그런 날씨다. 바다 색깔이 화려하기로 유명한 세부와 보라카이의 해변은 최고다. 최근 여길 다녀온 친구로부터 소식 하나를 전해 들었다. 그곳 도시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류의 커피 전문점인 커피 브레이크에서 일하는 남학생들이 특히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한다. 말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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