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군대 내 불온서적과 책 읽을 권리-0

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

한겨레신문 노현웅, 김일주 기자

1. 취재착수 및 보도제작경위
제보( O )


<한겨레>는 지난 7월22일께 군 내부에서 ‘불온서적’ 목록을 만들어 장병들을 대상으로 감시 통제 체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한겨레>는 군조직의 특성 상 일정 수준의 정신교육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지만, ‘불온서적’ 이라는 냉전적 용어로 개인의 사상의 자유까지 통제에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움직임으로 판단했습니다.


다수의 군 장교들을 접촉하며 공문 확인에 나섰지만, 대부분 난색을 표했습니다. 공문서를 넘겨준 사실이 밝혀질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설득 끝에 공군에 근무하고 있는 한 현직 장교에게서 문제의 공문서를 건네받았습니다. 이 공문서는 공군참모총장 명의로 공군 각급 예하부대로 발송된 것이었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 널리 읽히고 있는 23권의 도서 목록이 친북, 반미·반정부, 반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항목으로 구분돼 ‘불온서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습니다.


또 이 공문에서는 ‘불온서적’ 차단 대책으로는 군 장병들의 생활관을 일시 점검할 것, 편지·소포 등 반입물품을 간부 입회 아래 개봉하고 확인할 것, 발견 시 기무부대 통보할 것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시의 근거로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보안 정책과에서 각 군 본부에 내려 보낸 ‘군내 불온서적 차단 강구(지시)’라는 공문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이 공군에서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한겨레>는 다시 육군, 해군 등의 다른 군 조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교들을 접촉했습니다. 공문서 내용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한 지시를 받았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조금 더 수월하게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육군과 해군에서도 같은 ‘불온도서’ 목록이 하달됐고, 차단 활동을 벌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 지난 해 말부터 문화부에서 선정·배포한 ‘우수학술도서’를 금서로 지정해 수거하는 등 활동이 시작됐으며, “이런 지시가 각 군 본부로부터 내려온 사실은 이례적”이라는 실토까지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한겨레>는 7월31일 1면과 4면을 통해 국방부의 시대착오적인 사상 통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국방부는 “한총련이 책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었다.”라고 해명했지만, “‘불온서적’이라는 용어가 냉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 오해를 사지 않은 용어로 대체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무엇보다 여론이 크게 움직였습니다. 한국작가회의와 출판계에서는 국방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성명을 발표했고, 온라인 서점 등에서는 ‘불온서적’ 특별전을 기획했습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여름 방학을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과 함께 보내자”는 조롱이 쏟아졌고, 결국 국방부에서 지정한 ‘불온서적’ 판매량은 많게는 수십 배까지 급증했습니다.


2. 취재 및 보도과정의 특이사항 여부
군 조직의 폐쇄성과 기밀성 탓에 취재와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군 공보라인을 통한 정식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판단 아래, 개인적 친분을 가진 각 군 장교를 위주로 접촉하고, 확인하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다수의 취재원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해, 육·해·공군에서 같은 목록으로 통제 작업을 벌이고 있음을 확인했고, 이를 마지막으로 정식 공보라인에 문의해 “이는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지시사항이었으며, 군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는 해명을 들었습니다.


3. 타 매체 선행보도 여부 및 타 매체의 반향
<한겨레>는 7월31일 1, 4면에 ‘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이라는 제목으로 국 당국에서 벌이고 있는 사상 통제 사실을 공개했고, 이는 주요 일간지와 방송 등에서 비중있게 보도했습니다. 또 폭증한 ‘불온서적’ 판매량, 출판계의 반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 등 후속보도가 이어졌습니다.


4. 사회에 끼친 영향
국방부에서는 <한겨레>에 기사가 게재된 7월31일, “‘불온도서’라는 용어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합리적인 용어로 이를 바꾸겠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적극적인 대응으로 이어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여론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 <교보문고>, <지마켓> 등에서는 ‘불온도서’ 기획전을 벌여, 여론의 움직임을 발빠르게 뒤쫓았으며, 시민들은 ‘불온도서’ 읽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을 배검토하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집단주의 문화의 가장 강력한 근원지 가운데 하나인 군대에서, ‘국가와 집단’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고 있는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시민들은 분노 또는 경악했고, 이는 비판 또는 조롱의 반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좋은 책을 시민들에게 알려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합니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됐다고 믿고 있는 지금이라도, ‘집단’이 ‘개인’을 통제하는 과정에 비판과 감시가 배제될 경우,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일 것입니다.


5. 자체평가 및 소속사확인여부
감시와 비판이 미치지 않는 영역일수록 자유와 인권은 소외되기 마련입니다. 언론이 권력기관 비판에 나서는 본질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한겨레>의 이번 보도는 ‘전해 듣고 지나치는 말’에서 인권침해 가능성을 판단하고 다수의 취재원을 통해 사실을 확인해 결정적인 장면을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앞으로도 제도와 권력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더욱 치켜뜨겠습니다.


6. 기타 고려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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