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5일 화요일

'인문학 신드롬과 불온한 인문학'

한국일보 유상호 기자의 심포지엄 보도 "넘치는 인문학은 몰락의 징후"
정정훈씨는 권력과 돈에 포박된 한국 인문학의 현실을 지적하며 인문학의 야만성 회복을 주장했다. 그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프로젝트에 대해 "인문학 교수들을 국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매니저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인정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자들을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더 인문학적 사유에 적합한 자격을 가진 자들이 된다"는 것. 정씨는 "이런 선별 작업을 통해 대학 인문학은 점점 더 해당 분야의 전공자들만 관심을 갖는 폐쇄적 공간이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권 밖의 인문학은 돈, 곧 대중적 수요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문학이 "청소년들의 논리적 사고와 창의력을 길러 주고,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창조적 경영을 위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무의미한 일상에 지친 사회인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런 상황에서는 공부하는 대중은 "강사가 전해 주는 지식을 수용하는 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씨는 "국가에 사로잡힌 문명인이 아닌 그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위해 국가와 전쟁도 불사하는 야만인들의 도래, 야만인들의 생성을 기다린다"는 표현으로 인문학의 진짜 존재 가치를 설명했다. 

'인문학 신드롬과 불온한 인문학' 스케치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블로그 '불온한 인문학'

한때 운위되던 인문학 위기담론이 무색하게 오늘날 인문학은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인문학 지원을 위하여 대학에 연간 수백억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또한 도서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문화센터, 그리고 심지어는 기업이 개최하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에 수많은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학의 부흥을 넘어서 인문학의 유행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인문학 유행 현상은 인문학이 처한 심각한 위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CEO 인문학’과 ‘백화점 인문학’이 보여주는 바는 이제 인문학이 자본의 이윤창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며, 연간 394억원의 국가예산이 지급되는 ‘인문한국’ 정책은 국가정책에 인문학이 더욱 깊이 종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줍니다. 지식정보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증식을 위한 새로운 수단이자 국가경쟁력 강화의 도구로서 인문학은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이 부활은 인문학의 시대를 도래시켰습니다. 아주 세련되고 교양 있지만 자본과 국가의 권력에 의해 극도로 순치된 안온한 인문학의 시대를 우리는 지금 목도 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지배적 통념을 논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비판의 급진성, 사회의 지배적 가치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상의 전복성, 세상의 지배적 삶의 방식을 뒤엎는 사유의 불온성을 거세당한 채 인문학은 기름진 교양주의의 지적 장식물로 퇴락하거나, 협애한 전문가주의의 실적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문학의 시대는 인문학의 몰락과 함께 도래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앎이 여전히 유의미한 것이려면, 이런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인문학의 깃발을 드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인문학에 반대하고 그것과 대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정상화'하는 지식으로서의 인문학과 대결하는 것. '위기'란 이름으로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를 차라리 더 멀리 밀고 가 폭발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때 비로소 '인문학'이라 불리는 지식은 지배적 가치와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의 길을 촉발하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나 국가 발전전략의 수단으로서 인문학, 삶의 현장과 유리된 맹목적 전문지식으로서 인문학, 자기만족적 교양주의 인문학을 거부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불온성과 전복성의 날이 예리하게 서있는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온한 인문학’ 1기를 시작합니다. ‘불온한 인문학’ 1기를 통하여 우리 시대의 지배적 가치와 통념에 맞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기획하며, 지성의 공동성, 공동의 지성을 함께 만들어 갈 동료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욕망이요 힘이며, 불온성으로부터 인문학을 다시 사유하려는 의지입니다. 이 과정을 함께할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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