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7일 수요일

[‘세월호’ 릴레이 인터뷰](1) 한승헌 변호사·전 감사원장 “구조 0명, 국격을 0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승헌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슬픔보다는 분노가 계속 치밀었다. 경험한 적 없는 침통한 심정으로 줄곧 지냈다”고 말했다. 6일 그와 만난 경기 일산의 한 카페 너머 문화공원에 차려진 세월호 참사 추모 분향소에서는 노란 리본들이 봄바람에 흩날렸다. 

한승헌 변호사가 6일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어떤 심경으로 사태를 봤나. 

“이번 참사는 불가피한 자연 재해가 아니다.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한국 사회의 나쁜 풍조가 드러난 데 마음이 무척 상했다. 선장이나 선원, 해경의 구조를 포기한 일탈 행위에 많은 분노를 느꼈다. 정부 기관이나 업체의 이해관계 때문에 대응체제의 혼선이 온 것도 가슴 아프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우왕좌왕, 책임회피, 진정성 없는 사과에 많은 국민들이 격노했고 나도 마찬가지다.”

- 박 정권 대응을 어떻게 보나.

“대통령 언동에 진정성이 부족했고 언동의 타이밍도 놓쳤다. 대안을 갖고 사과하겠다고 했는데,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게 우선이다. 대안은 그 다음에 차분하게 마련해야 한다. 국민에게 사과한다면서 왜 장관들 앞에서 사과를 하나.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걸 두 번이나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했다. 대통령은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대통령이 취임 때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헌법상 선서(헌법 제69조)의 핵심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 이는 곧 헌법 위반으로 대통령은 헌법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 박 대통령 하야 주장도 나온다.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그런 요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법학도로서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헌법 준수를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박 대통령은 게다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는 언동이 부족했다. 오래된 관행이라는 둥, 적폐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둥 책임을 전 정권으로만 돌렸다. 나중에 겉치레 식으로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했지만, 그간 아웃사이더처럼 말하며 과거 타령만 했다. 이번 사태에 참모가 써준 것으로 보이는 원고를 국무회의에서 번번이 낭독만 하는 걸 봤다. 리더(leader)를 뽑아야 했는데 리더(reader)를 뽑았다며 한탄하는 이야기도 오간다. 오늘날 이런 사태와 무능·부패의 구조를 가져온 게 ‘관피아’라고 한다면 이 관피아는 누가 조성했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현 집권층의 자기 사람 심기, 낙하산으로 관피아가 조성됐다.”

- 정부의 문제는 무엇인가. 

배 침몰 이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격이나 정부의 대처 능력을 0점으로 만들어버렸다.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다. 민·관·군은 협동이 아니라 배척의 관계를 보였다. 안전행정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는 허둥대고 무능하며 뻔뻔하고 약삭빠른 모습만 보였다. 그리고 겉치레와 헛구호로 가득한 국정 프로그램을 실감했다.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안전을 강조한 게 허상으로 드러났다. 규제 완화도 할 게 있지만 인간 생명이나 안전에 직결되는 것은 완화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노후선박 사용연한을 늘렸다든가, 박근혜 정부가 선장의 안전 점검 책임을 면제한 것 같은 규제 완화가 이번 사태를 유발한 원인 아닌가.”

- 법치주의의 문제도 드러났다. 

이번 정권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데 근대 이후 법치주의는 집권자의 준법, 즉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지배하라는 게 본질이다. 권력자에 대한 상향적 견제가 법치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한국에선 상하가 뒤집혀 집권자가 국민을 지배하는 수단으로서의 법만 강조한다. 이번 사고를 정부와 그와 유착된 집단이 법을 어겨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킨 사태로 본다면, 법치주의를 파괴한 결과 국민 생명이 말살된 것이다. 정부의 준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정보원의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진상과 책임을 계속 추궁해야 한다. 대통령 사과 직후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이 사건이 잊혀졌지만 연장선의 문제다. 진상을 밝히고 문책해야 한다.”

- 참사에는 항상 부정부패 문제가 뒤따르는데.

“모든 참사의 배경에는 개인과 집단의 탐욕과 부패가 도사리고 있다. 이번에도 해경과 민간업체, 선박 관련 단체, 심지어 종교집단까지 얽혀서 거대한 부패 집단을 이루며 사건의 근인을 만들지 않았나. 사람의 생명마저 자기 이익과 이해관계를 챙기는 수단이 된 걸 보여준다. 돈이 최고라는 고질화된 사회 풍조가 엄연한 현실이 됐다. 돈이 최선의 무기,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욕망 사회를 바로잡으려면 사회 상층부가 먼저 정화돼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쪽이 더 많이 부패하고 탐욕스럽다. 국민이 이런 나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학>의 ‘덕자본야 재자말야 외본내말 쟁민시탈(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이란 구절이 계속 떠올랐다.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맨 나중이라, 그 본말을 뒤집게 되면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빼앗게 된다’는 뜻이다. 관청이나 공공의 일을 이용해 개인 이익을 꾀하는 ‘빙공영사(憑公營私)’란 사자성어도 머리에 맴돈다.” 

- 앞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권력 친화 집단의 초법적 불법행위를 엄폐하고 옹호하는 일을 없애야 한다. 대통령 일인체제를 바로잡고, 언동의 진정성이나 신뢰도를 높여야 하는 일도 과제다. 무엇보다 배금주의적 사고를 사람 존중의 사고로 바꾸는 교육이나 사회 기풍 조성이 절실하다고 본다.”

- 희망은 없나. 

“진도에 몰려간 자원봉사자가 2000명에 가까웠다. 학생을 먼저 대피시키려다 숨진 승무원과 교사들, 장례비 5000만원을 도로 내놓은 장례식장 주인 등 여러 의미 있는 일들이 있었다. 거기서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062213315&code=9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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