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7일 수요일

세월호 침몰과 신뢰의 위기 / 박순빈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하고 국가는 초라한 몰골을 드러냈다. 뻔히 보이는 데서 수많은 생명이 배와 함께 가라앉았는데도 국가는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 이 참담한 사실만으로도 국가의 자격은 수장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뒤 박근혜 정부는 기이한 장면을 여럿 연출했다. 언론이 별로 주목하지 않은 장면들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 때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국무위원들 모습이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만기친람의 리더십’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임금이 만 가지 일을 몸소 처리하는 자리에서 신하들은 납작 엎드려 ‘성은의 망극’을 새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언론이 중개한 이 정부 핵심 참모들의 모습이 실제로 그랬다. 사고 발생 엿새째인 4월21일 아침 열린 청와대 특별수석비서관회의 장면을 보면, 수석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의 ‘깨알지시’를 받아쓰는 데 열중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지시 내용은 세월호 사고의 장단기 원인 파악에서부터 실종자 구조 및 수습 활동, 책임자 처벌, 언론 대응 방안, 재발 방지 대책 등 온갖 분야를 망라했다. 정부 각 부처의 이행과제에서부터 국회와 사법부에 전달되어야 할 것들도 있었다.
상명하달식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작동하는 흐름을 보면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생긴다. 대통령의 깨알지시는 도대체 누가 써줬을까, 받아쓰기만 하는 공식 참모들의 모습을 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대통령의 다른 비선조직이 있나, 아니면 전지전능한 대통령을 띄우려고 참모들이 연극을 하는 것일까? 확실한 건 어느 경우든 심각한 문제라는 점이다. 국정운영의 파행을 초래하거나 국민 불신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책임은 해운사와 선장·선원들 몫이다. 하지만 그 뒤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난 국가재난대응체계의 총체적 부실은 전적으로 박근혜 정부 책임이다. 그렇다면 부실 원인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에서 발생하는 위기 또는 실패의 원인을 ‘정보의 비대칭’에서 찾는다. 세월호 사고에 적용하면, 불량 선박과 불량 선원에 대한 정보가 승객들에게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빚어진 비극이다.
세월호 침몰이 국가적 신뢰의 위기로 치닫게 된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보 공유와 소통의 실패에서 비롯된 위기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위기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이미 갖춰놓기는 했다. ‘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고,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고 소통·협력함으로써 국정과제에 대한 추진동력을 얻는다’는 ‘정부 3.0’이 바로 그 매뉴얼이다. 그런데 구호로만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조계사 봉축법요식에서 국민 안전을 위한 국가개조 의지를 또 밝혔다. “이번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국가 정책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의 이 약속 또한 낯설지 않다. 대선 후보 때 녹음기처럼 되풀이했고 취임사에서도 했다. 동네 불량식품까지 들먹이며 ‘사회악’으로부터 안전망을 치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헛공약이 됐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능력은커녕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온 국민에게 보여줬다. 이제 대통령의 약속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기 어렵게 됐다.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국민은 힘을 모아줄 수 없다. 그러니 대통령의 국가개조 작업은 성공하기 어렵다. 온 국민의 슬픔과 분노가 일으키는 물결을 거스르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57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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