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일 화요일

'결정적 증거'의 결정적 불일치

2010년 6월 1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고문,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 대 물리학 교수가 공동명의로 기고한 글이다. 

 

‘1번’에 대한 과학적 의혹을 제기한다

 

지난 20일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원인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 동력부 등을 수거, 제시했다.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고 쓰인 것과 설계도와의 일치 등의 증거에 따라 수거한 어뢰부품이 북한산이라는 것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필자들은 합조단 발표를 신뢰한다. 수거된 물건들이 천안함 인근에서 폭발하고 남은 부품이라는 발표와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는 한글 표기”에 의혹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합조단의 모든 발표를 사실이라고 믿는 순간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불일치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합조단이 공개한 후부 추진체와 방향키를 보면 외부가 심하게 부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뢰의 외부가 심하게 부식된 것은 폭발 결과와 일치한다. 사용하기 전의 어뢰는 부식을 막기 위해 페인트를 칠해 놓는데 어뢰의 부품이 왜 부식되어 나타났는가? 그것은 폭발시 발생하는 고열로 이 페인트가 타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폭발 후 남은 잔해는 바닷물에 노출되고 그 결과 부식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합조단이 공개한 어뢰부품의 부식현상은 폭발결과와 일치한다. 합조단이 공개한 것이 폭발하고 남은 어뢰의 잔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폭발 이전의 어뢰였다면 페인트가 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 부분은 부식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합조단의 결론은 전적으로 과학적이다. 그러면 어뢰의 외부에 칠해 놓은 페인트는 몇 도가 되어야 타버릴까? 문제의 어뢰에 사용된 페인트 성분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현재 가장 높은 열에 견딜 수 있는 실리콘 세라믹 계열의 페인트는 비등점이 섭씨 760도이고 보통 유성페인트의 비등점이 섭씨 325~500도 정도이다. 이에 비춰볼 때 수거된 어뢰 뒷부분에는 적어도 섭씨 325도의 열이 가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250㎏의 폭약량에서 발산될 에너지양에 근거해 계산해보면, 폭발 직후 어뢰의 추진 후부의 온도는 적어도 섭씨 325도, 높게 잡으면 1000도 이상 올라갈 수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합당한 추정이다.

어뢰 중에서도 가장 뒷부분이고 가장 외부에 있는 방향키도 부식돼 있었고, 따라서 이 부분의 온도도 최소한 페인트를 태울 정도인 섭씨 325도 이상으로 올라갔을 것이므로 어뢰의 내부는 이보다 높은 고열상태였을 것이다. “1번”이라고 쓰인 후부 추진체 내부도 325~1000도의 열을 받았을 것이다. “1번”은 페인트가 아니라 매직펜 같은 것으로 쓰여 있고, 그 잉크의 성분은 분석이 완료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잉크는 크실렌, 톨루엔, 알코올로 이뤄져있다. 각 성분의 비등점은 섭씨 138.5도(크실렌), 110.6도(톨루엔), 78.4도(알코올)이다. 따라서 후부 추진체에 300도의 열만 가해졌더라도 잉크는 완전히 타 없어졌을 것이다. 비등점이 이보다 높은 유성잉크나 페인트를 사용했더라도 어뢰 외부의 페인트가 타버릴 정도였다면 내부의 유성잉크나 페인트도 함께 탔을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외부 페인트가 탔다면 “1번”도 타야 했고, “1번”이 남아 있다면 외부 페인트도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고열에 견딜 수 있는 외부 페인트는 타버렸고, 저온에도 타는 내부 잉크는 남아 있다.

※서재정 교수는 국제정치학자로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이승헌 교수는 물리학자로 버지니아대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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