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일 화요일

틱쾅둑 스님(Thích Quảng Đức)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Thích Quảng Đức 1963년 6월 11일 사이공의 길 한복판에서 분신 공양한 틱쾅둑 스님의 모습. 그의 분신으로 디엠 정권(Diệm regime)의 정책에 대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말콤 브라운(Malcolm Browne)은 풀리처 상을 수상하였다. 틱쾅둑 스님의 소신공양과 그 소신공양을 찍은 이 사진이 불러일으킨 마음의 움직임은 미국 내의 반전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상돈 교수의 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을 접하며

지난 주말(금-토)에 천주교 광주 대교구와 영산강 살리기 본부가 주최한 영산강 순례를 갔다 왔다. 3월초에는 나주에서 담양까지 사흘에 걸쳐 상류를 걸었고, 이번에는 영산강 하구언으로 호수가 되어 버린 하류 제방을 걸었다. 광주대교구의 김재학 신부님, 나주 성당의 이영선 신부님, 그리고 광주환경연합의 최지현 국장을 다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저녁에 봉은사 행사에 갔다 왔다.

일요일 저녁에 알고 있는 한 중진기자와 통화해서 며칠 새 내가 본 일을 이야기 했다. 영산강 순례에 수녀님들이 많이 참여하셨고, 특히 마지막 날에는 수녀님들이 100명 이상 오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봉은사 행사장의 열기 등에 대해서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나는 아마도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이렇게 많이 밖으로 한꺼번에 나온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전국 선방의 선승 2000명도 반대 대열에 섰다는 뉴스를 이야기 했다. 그 기자는 지방 취재 중이서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봉은사 행사가 성황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선방에서 수도하시는 스님들은 자신을 태울 정도의 경지에 들어 계신 분들이라고 했으며, 혹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걱정스럽게 비쳤다.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그러냐"고 했고, 우리는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스님이 '소신공양' 하신 일이 일어났다. 어제 밤 그 기자에 전화해서 "당신이 말한 바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했고, 그 기자도 "글쎄 말입니다"라고 침통해 했다.

스님의 소신공양은 1960년대 초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당시 월남 스님들의 연속 분신은 세계적 뉴스였고, 그것은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분신 사태가 일어나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고딘디엠 대통령의 동생인 실력자 고딘 누의 부인인 마담 누는 승려 분신을 '바베큐'라고 부르면서 악담을 했다. (고딘디엠은 독신이어서 제수인 미모의 마담 누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었다.) 마담 누는 “바베큐에 쓴 휘발유가 미제라서 완전한 국산이 아니다” “다른 승려가 분신을 하겠다면 자기가 휘발유를 공급하겠다”는 등 비상식적인 독설을 퍼부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런 형제 집권자를 두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미국은 월남 군부를 조종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케네디 대통령이 직접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승려 분신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결국 실패했음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4대강 사업과 MB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면서 한 스님이 자신을 불살랐음에도 정부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공사를 밀고 나갈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정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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