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7일 월요일

정의의 실천 게을리 말라는 우리 모두에 대한 유서

그림 김병호 화백

내 서재 속 고전



이탈리아 저항운동의 유서
피에로 말베치 외 엮음, 가와시마 히데아키 외 옮김
후잔보 펴냄(1983)

어느 가족의 대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스가 아쓰코 옮김, 하쿠스이사 펴냄(1963)

이번에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일단 <이탈리아 저항운동의 유서>를 갑으로 하고, <어느 가족의 대화>를 을로 해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갑의 원래 제목은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사형수의 편지>(Lettrere di condannati a morte della Resisenza italiana, Einaudi, Torino, 1952)다. 1922년에 권력을 탈취해 이탈리아 총리가 된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5년(일본에서 치안유지법이 공포된 해)에 파시즘 독재를 선언했다. 파시스트 정권은 스페인 내전에서는 나치스 독일과 함께 프랑코파를 지원했고, 1937년에 일본·독일과 3국 방공협정을 체결했다. 나치스를 본떠 인종법으로 유대인을 배척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독일과 함께 추축국이 돼 연합국과 싸웠다. 1943년,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시칠리아섬에 상륙함으로써 전세가 바뀌자 그해 7월 무솔리니는 국왕에 의해 해임돼 실각했다. 그러나 독일군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하고 무솔리니를 구출해 살로라는 소도시에 그를 수반으로 하는 괴뢰정권을 세우고 전쟁과 파시즘체제를 유지하려 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이탈리아 각지에서 다양한 파르티잔 그룹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각 그룹 연합체로 이탈리아해방위원회(CNL)를 결성했다. 이 연합체를 구성한 것은 공산당, 사회당, 행동당, 기독교민주당, 자유당, 노동민주당 등 6개 당이었다. 행동당은 일찍부터 반파시즘 운동을 계속해온 진보적 리버럴 정당으로, 그 무장조직 ‘정의와 자유’는 1929년에 망명처인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됐다. 저명한 작가 프리모 레비는 이 ‘정의와 자유’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됐고,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
격렬한 싸움 끝에 1945년 4월27일 무솔리니는 코모 호반에서 파르티잔에 붙잡혔고 그 다음날 처형당했다. 5월에는 독일이 항복했다.(일본은 3개월 뒤인 8월15일에 항복했다.) 이 책(갑)은 이 시기의 반파시즘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다양한 사람들의 유서를 당파를 초월해 널리 모은 것이다. 원서는 1952년에 이탈리아에서 간행됐으며, 일본에서는 1983년에야 번역 출판됐다.
‘레지스탕스 사형수의 편지’라고 해도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을 정연하게 피력한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죽음을 앞둔 극한 상황 속에서 마지막 생각이 소박하고 짧은 말 속에 응축된 것들이다. 유서를 쓴 사람들(즉 학살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름없는 민중들이다. 20살의 기계공 아르만도 암프리노는 “산악지대에서 오래 고생한 뒤 이렇게 죽어야 하다니…. 곧 성체를 보내줄 형무소 담당 신부님 입회 아래 차분한 마음으로 죽겠습니다. 나중에 신부님 계신 곳으로 가면 묻힌 장소를 가르쳐 줄 겁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61살의 재봉사 주세페 안셀미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썼다. “오늘 밤 처형당한다는 통고를 받았다. … 이것 봐, 나는 죄가 없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꾸민 함정에 걸려 희생당하는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전보다 더욱 가슴을 펴고 살아도 돼.”
41살의 가구 장인인 피에트로 베네데티는 아이들에게 유서를 썼다. “공부와 노동을 사랑해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거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은 인생의 훈장이다. …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신조로 삼고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의 소망과 고통에 항상 신경써다오. 자유를 사랑하고 이 보물을 위해서라면 끝없는 희생을, 때로는 목숨을 버려야만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노예의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어머니 조국을 사랑해라. 하지만 진정한 조국은 세계라는 것, 어디에나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너희들의 형제라는 것을 잊지 마라.”
한 편 한 편의 ‘편지’는
개개인들 영혼의 고통스런 기록이다
이탈리아 민중이 희생을 치르고
해방을 이룩했다는 ‘자신감’이다

정의의 실천에 게을렀다는 반성은
지금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 책은 역사적 반동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유산이다

이 책의 번역자 대표인 가와시마 히데아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번역자)의 의도는, 말하자면 바깥(外面)에서 고찰을 시도하는 상황이나 운동 연구 또는 분석 방식과는 달리 민중 개개인의 마음속을 내면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밝혀 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 … 이 말(이 책 서문) 속에는 자발적으로 들고일어나 끝까지 싸운 사람들의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그리고 그런 결과 위에 이탈리아 민중은 전후의 새로운 문화를 쌓아올렸다. 정치적으로는 먼저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확립했던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한 편 한 편의 ‘편지’는 둘도 없이 소중한 개개인들 영혼의 고통스런 기록임과 동시에 반파시즘이라는, 개인을 초월한 커다란 공통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 그것은 또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인 개개인의 영혼의 궤적에 반영돼 우리 자신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늘 반성하게 해 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한 뒤 가와시마는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파시즘을 경험한 일본에서는 “저항운동이, 더구나 해방운동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른바 체제의 희생자로서의 영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아프게 공감하며 그런 기록들을 접하긴 해도 그것이 ‘레지스탕스’의 기록은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총구는, 예컨대 학도병으로 동원된 병사의 그것은 다른 쪽을 겨냥하고 있었으니까. … 총구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기 육체의 소멸을 각오하고 사상의 변혁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주창하는 총리가 공공연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전쟁 피해 민족들이 이에 항의하면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오히려 협박조로 나오는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할 말이다.
이 책 서문을 쓴 엔초 엔리케스 아뇰레티는 해방투쟁 당시 행동당의 대표적 존재였고 해방 뒤에는 수많은 평화운동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의 쌍둥이 누이는 반파시즘 투쟁 중에 붙잡혀 처참한 고문 끝에 총살당했다. 그 서문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본서에 수록된 편지에는) 일관되게 하나의 정신이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성과 용기를 어떻게 최후까지 지켜낼 수 있었는지, 또한 20년간의 파시즘 죄업이 저 희생자들의 영혼 덕에 얼마나 부당하게 속죄받았는지를 후세에 길이길이 증언할 것이다. 이탈리아 민중은 저 시대에 양식(良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뒤에는 정의의 실천을 게을리해 왔지만. 또다시 과오를 범해서 저런 가혹한 고통과 희생이 또 필요한 날이 두 번 다시 오지 않기를 누구나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필요한 날이 또 오더라도 이 전례가 즉각 되살아나 이탈리아 민중은 자신들이 취해야 할 길을 훨씬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번역자도 지적했듯이 이탈리아 민중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해방을 싸워서 이룩했다는 ‘자신감’이다. 또 하나는 해방된 지 겨우 7년 뒤에 쓰인 서문에서 이미 “정의의 실천을 게을리했다”는 쓰라린 반성을 한 데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런 투쟁의 성과는 급속히 풍화된다는 교훈이다. 그것은 피와 눈물로 뒤범벅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성과가 자칫 폐기처분될지도 모르는 지금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국 민중은 ‘정의의 실천’을 게을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고귀한 희생을 잊지 말고 ‘취해야 할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책(갑)은 이탈리아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한 유서이며, 역사적 반동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상기해야 할 공유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갑에는 ‘정의와 자유’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기관지 편집장이었던 레오네 긴츠부르그의 편지도 들어 있다. 그는 러시아 오데사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토리노대학 러시아문학 강사를 했으나 1933년 파시스트당에 대한 선서를 거부하다 해직당했다. 금고 4년 형을 받았고 1940년에는 이탈리아 남부로 유형당했다. 에이나우디 출판사 창립 멤버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1943년 11월 체포돼 고문 끝에 빈사상태가 됐다가 1944년 2월5일 34살의 나이로 숨졌다. “사랑하는 나의 나탈리아. … 창작에 몰두해서 복받쳐 흐르는 눈물을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소. 뭐라도 좋소. 사회적인 활동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접했으면 좋겠소. …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지. 만약 그대가 없다면 나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는데. (이것도 최근에 도달한 결론이다.)” 이 편지에 등장하는 그의 아내는 여성 소설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1916.7.14~1991.10.7)이며, 아이들 중 한 명은 역사가 카를로 긴츠부르그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나탈리아의 책(을)은 파시즘기 이탈리아 어느 유대인 일가의 초상이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돼 있는 것은 처참한 투쟁의 프로필이 아니라 그런 투쟁 속에서도 발휘된 놀라운 유머와 풍부한 지성이다.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자세히 소개할 만한 지면이 남아 있지 않다. 갑과 을은 태양과 달과 같은 관계이며,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한층 더 심화시킨다. 이 두 책이 한국에서 번역돼 있는지 나는 모른다. 만약 아직 번역돼 있지 않다면 이제라도 꼭 그렇게 하기를 권한다. 갑은 필독의 역사적 기록으로, 을은 최상의 문학으로. 둘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지식인과 출판인의 문화적 책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214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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