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7일 화요일

사진출판 한 우물 판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사진가는 냉정해야…투쟁하려면 차라리 사회운동해라”

대가라고 하는 사진가만 따라하는 죄수들 행렬 끔찍
투쟁이 아닌 삶의 현장 찾아 감동 있는 시대 기록을

noonbits6.jpg» 6일 부랴부랴 달려가서 새로 찍은 사진. 지면엔 이걸로 나갔다.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와의 인터뷰는 2013년 12월 23일 낮과 밤에 대부분 이루어졌다. 사진기자 출신이고 여전히 사진기자라는 정체성을 버릴 생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인터뷰가 부담스러웠다. 다른 게 아니라 인물사진도 내가 직접 찍어야 한다는 대목이 걸렸다. 늘 주장하듯 기사가 나가고 나면 나중에 기억 남는 것은 기사의 내용보다는 사진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사진을 먼저 찍고 나중에 시간이 남으면 질문을 하라”고 과장된 주문을 해왔다. 
 이규상 대표를 인터뷰할 때 나 먼저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진을 먼저 찍었다. 물론 시간이 남아서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고 3시간 가량 충분히 시간을 투자했지만 사진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100매 가량되는 분량을 24매로 줄이는데 애를 먹었다.  
 2014년 1월 6일 오전에 원고를 넘기고 나니 다시 덜컥 겁이 났다. 사진이 안좋다면 어쩔것인가. 부랴부랴 상암동 눈빛 사무실로 달려가 인물사진을 새로 찍었다. 이번 것이 12월 것보다 더 나은지 확신은 없지만 두 번 찍었다는 사실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두 번째로 마음에 걸린 것은 실명 비판이었다. 당초 인터뷰를 하고 녹취를 할 땐 그야말로 거침없는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이대로 나가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은 내용도 많았다. 그리하여 이 대표는 내용을 많이 순화시키자고 했고 나는 몇몇 표현은 그냥 쓰려고 했는데 절충안으로 지면에 기사가 나갔다. 실명 비판은 자루 없는 칼 같은 것이다. 스스로 경계하고 있으나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쓸 것은 써야 한다. 


 이규상(53)은 1988년 11월에 눈빛출판사를 열었고 지난해 25주년을 맞았다. 눈빛은 사실상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사진전문출판사다. 최근 <한국의 보도사진>까지 550종의 책을 냈고 종당 1,000권을 찍었다고 보면 55만권 정도 낸 셈이다. 이규상 눈빛 대표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무들에겐 미안한 일이다”라고. 
 이 대표를 지난 12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눈빛’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경제발전과 과학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즉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이웃과의 공감, 인간다움 같은 것들이 사진 속에 살아있으니 사진을 좀 주목해서 봐다오!”라고 주장하는 이 대표는 그동안 페이스북과 사진관련 잡지 등을 통해 한국사진계에 대한 쓴 소리를 거침없이 쏟아 내왔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이 대표가 한국사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며, 사진집 출판을 통해 사진독자층을 확대해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종이책의 위기도 심각하지만 사진출판 시장은 더 심각한 위기다. 일안반사식카메라(DSLR) 인구가 1천만을 넘었고 휴대폰 카메라를 포함한다면 국민 누구나가 사진을 찍는 시대가 왔지만 사진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카메라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사진집을 한권이라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사진계 현실의 구조적 문제점과 전망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먼저 이규상 대표가 2013년 봄에 한 작가의 전시 개막식 자리에서 발표한 ‘4·16 사진선언’을 읽어보자.

한국사진은 한국인이 자신들의 삶의 흔적을 거울처럼 반영한 사진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사진은 형식주의와 외래 사진풍조에 매달려 우리의 삶과 이 땅의 역사를 끈질기게 외면해왔다. (중략) 
 모든 분야가 사진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이 가공할 이미지의 시대에 한국사단은 오히려 역행과 퇴보를 거듭한 끝에 몇몇 사진가들만의 살롱이 되어 장기침체의 늪을 걸어왔으며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의 출입마저 제한해 버린 지 오래다. (중략) 
 김수영식으로 말하면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그러니 오해 말라. 사진은 흔적이고 추억이며 기억이다. 우리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하고 사진 또한 그럴 것이다. (중략) 
 이 땅에 뿌려지는 사진의 새로운 씨앗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온 저 탐욕스러운 블루길과 배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 애절한 조국산천의 일급수에서 은인자중하던 산천어와 쉬리 같은 사진가들의 자생적 발아라는데 그 깊은 사진사적 사회문화사적 의의가 있다. 그것은 가히 경이로운 일이다. 한국사진사가 송두리째 다시 쓰일 대변혁이다. 우리는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1. 우리의 혁명은 사진의 다양성과 사진가의 탄생을 억압하고 제지해온 한국사단의 그 교조적, 전제적 억압에 대한 반기이다.

1. 우리의 혁명은 천박한 문화자본에 사진혼마저 팔아버린 우리 시대의 탕아들에 대한 준엄한 반역이며 도전이다. 
2013 4 16 이규상

 사진은 민주적인 매체…‘사진 선언’ 혁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선언을 한 적이 있다. 선언만 하고 끝이 난 것인가? 실천방안은 있는가?
“혁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기존의 사진계에 대한 젊은 사진가들의 저항의식을 촉구하고 싶었다. 한국사회는 민주화를 위한 진통을 겪으면서 진보해왔는데 유독 한국사진계만은 정체되어 있고, 몇몇 사진가들이 좌지우지하며 퇴행적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 구조를 한번 깨보자는 것이 사진선언의 취지다. 한국사진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구조를 깨려면 사진을 우리 역사와 삶의 생산적인 매체로 생각하는 젊은 사진가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사진미학적인 측면에서도 너무 서구 지향적이고 외래적인 사진들이 한국에서 풍미하고 있으니 대안으로 우리의 삶과 현실에 맞는 사진들을 찾아내야 한다. 다행히 그런 작가들이 전국 각지에 포진하고 있다. ‘하이 아마추어’ 작가들, 사진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 사진과 연관된 제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사진 수용층을 형성해 가고 있다.

-아마추어들도 포함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사진은 민주적인 매체이다. 프로 아마 구분 없이 사진의 완성도만으로 사진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진지하게 사진을 수용하고 향유하는 층이다. 그들의 저변이 확대되고 사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사진출판이나 사진판의 양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몇몇 그룹을 중심으로 이미 대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작가주의 표방하는 일부 평론가 중심으로 사유화…서구의 눈에 오염

-한국사진계는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한국사진계’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다. 그들은 갤러리나 미술관과 밀월관계를 지속해 오면서 권력화한 독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은 사진을 발표할 기회마저 봉쇄되었고, 그들의 독창성 있는 사진은 부단히 평가절하되어 왔다. 더군다나 권력화한 독점 구조에 가세한 일부 사진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작가주의’를 표방하면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사진을 사유화하고, 사진의 저변확대를 막아 왔다. 우리의 현실을 기록한 사진가들을 매도하고 가장 민주적인 매체인 사진을 폄훼하면서 자신들만의 성역을 구축해 온 것이다. 나는 이런 구조 속에서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이 좌절하는 것을 숱하게 목격했다. 게다가 시선이 서구 지향적으로 오염되어 있다. 사진이 서구에서 온 매체이긴 하지만 한국에 사진이 들어온 지 100여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우리 시선으로 우리 풍경과 삶과 우리 역사를 보고 우리가 기록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진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풍경사진이라든가 아주 어두운 톤의 프린트, 내용은 없고 형식미만 추구하는 사진들이 만연해 있다. 베끼고 따라하고... 우리의 삶과 현실에서 유리된 작업이 아직도 한국사진의 중심에 있다.”

noonbits1.JPG» 눈빛에서 나온 책들. 사진 눈빛제공



-갤러리와 미술관도 문제가 있는가?
“그렇다. 적어도 젊은 사진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모두 봉쇄되어 있다. 몇몇 사진가들이 독점 내지 독식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초대전이라든가 기획전 통계를 내보면 누가 누구인지 모두 드러날 것이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몇몇 사진가들이 사진자본을 독점해 오면서 부패한 양상을 보여왔다. 작가의 지명도에 연연하지 말고 사진을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최민식이 B급 작가라고 운운하는 건 자기 아성 지키려는 불순한 의도

-이런 발언들을 하다가 저항을 받았다고 들었다.
“미미한 것이지만 현 체제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의 저항일 것이다. 코끼리 비스킷이나 얻어먹으려 하지 말고 굶더라도 기존의 권위에 대항하라는 것이 젊은 사진가들을 향한 나의 곡진한 메시지이다.”

(이 대표는 한 사진잡지의 기고문에서 “한국사진계는 젊은 사진가들이 기존의 권위에 조아리며 그들의 교시에 추종하는 것noonbits4.jpg» 졸지에 'B'급 사진가로 변모한 최민식의 휴먼선집을 보면 죄수들의 행렬을 보는 것 같아 끔찍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몇몇 잘나가는 자칭 대가라고 하는 사진가의 사진만을 사진으로 알고 따라하고 있다”고 썼다.)

-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게) 출판 작업에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창업 초기부터 나는 기존의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왔다. 25주년을 맞이해 출판사 연대기를 작성하면서 보니 비교적 그 결심을 잘 지켜온 것 같아 다행이다. 사진 한 점에 수천만 원씩 하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진가들을 쫓아다녔으면 경제적 형편은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잘나간다는 사진가들에 빌붙어 책을 내오질 않고, 내 스스로 절치부심하며 이 땅의 사진을 발굴해 사진독자층을 형성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애당초 이해득실을 따져 사진출판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사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사진계에는 별 신경을 안 쓴다.”

-2013년 박평종은 자신의 책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에서 최민식, 김영갑 같은 작가들을 “보편적 가치는 존중하지만 새로운 가치가 없으므로 B급 작가를 벗어날 수 없다. 대중들은 B급을 좋아하지만 전문가들은 B급 작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그런데 지난 연말 그 평론가는 자신이 B급으로 분류한 최민식 선생의 이름을 딴 ‘최민식사진상’의 1차 심사위원에 포함되어 심사를 했다.
“최근에 최민식 선생과 관련된 이야길 듣고 화가 났다. 돌아가신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B급 작가 운운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한 사진평론가의 판단이 아니라 기존의 한국사진계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최민식의 ‘인간’이나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을 부단히 저평가하거나 적당히 무시하면서 자신들만의 아성을 공고히 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noonbits3.jpg» 출판기념회의 눈빛 식구들 왼쪽부터 편집자 이자영 고성희(뒤) 편집장 안미숙 이규상 사진가 엄상빈 편집팀장 정계화 2008

 요즘은 상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사진 더 잘하는 것 같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시상하는 2013년 온빛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성동훈 씨가 ‘코피노’로 상을 받았다. 제1회는 한설희 씨가 92살의 어머니를 찍은 ‘노모’로 수상했고, 제2회는 김석진 교사가 학교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지속되는 과도기’로 수상했다.
“요즘은 상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들이 더 사진을 잘하는 것 같다. (웃음) 기성의 다큐 사진가들도 그런 작업을 하면 좋겠는데 그런 주제의 사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적 시위나 노동쟁의의 뉴스 현장에 우르르 몰려가 찍은 사진 몇 장을 가지고 다큐멘터리 사진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온빛상’ 같은 경우는 다큐 사진가들이 모여서 새로운 다큐 작가를 발굴하자는 것이니 사진의 저변확대란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사진은 뭘 해야 하나?
“다큐 사진가들에게 투쟁의 현장에 매달리지 말고 삶의 현장으로 가라 했는데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노동쟁의나 정치적 시위 현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독거노인, 이주노동자, 원룸이나 지하 전월세방 거주자 등 사회의 저변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은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작업을 기대한다면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될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사진으로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으려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한다면 시대상의 기록,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감동이 있는 기록이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 건 고교 사진반 학생들이 하는 일…프로는 냉정해야

-그렇지만 현장에서 고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도 일부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사회적 이슈를 찍고 전시도 하고 달력을 만들어 판매하고 돕기도 한다.
“그런 것은 고교 사진반 학생들이나 해야 할 일이다. 프로페셔널한 사진가는 냉정해야 한다. 사진과 사회운동은 구분해야 한다. 투쟁이 절실하다면 차라리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낳지 않을까. 사진가는 삶의 현장을 심도 있게 취재하여 그 진실을 좀 더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경찰과의 대치나 주먹 쥔 시위자의 모습 같은) 우리가 다큐 사진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첩되고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솔직히 그런 사진 너무 많이 봐와서 지겹지 않는가?”

(이 대목에서 이규상은 책상에 놓여 있던 임재천의 <한국의 재발견>을 끌어안고 이야기했다.)

“임재천은 그의 나이(46)나 사진경력으로 보아 충분히 중견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첫 사진집을 냈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의 완성도가 여느 사진가 못지않게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평가조차 받지 못해왔다. 그런데 독자들이 평가해 주었다. 대부분 상업출판을 하는 한국출판계에서는 고작 1천부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으나 초판이 순식간에 다 나갔다. 독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구매행위를 통해 책을 샀을 때는 무언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기존의 한국사진에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 출판사와 사진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진전문출판사의 대표로서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다행히 우리의 현실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산천어와 쉬리 같은 사진가들이 없지 않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그들의 작업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작가의 지명도나 학연, 지연 그리고 기존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작가들을 부단히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 나와 출판사의 소임이다.”

noonbits5.jpg» 임재천 <한국의 재발견>출판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두 손을 모아 곡괭이질을 하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어느 면에서 본다면 나는 행운아다. 나는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사진의 광맥을 캐고 있다. 이 곡괭이질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사진이라는 광산을 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곡괭이질을 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누구를 위해서 뭘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잘 팔리는 책 만들어 돈 벌면 좋은 책 만든다는 것도 우리 출판계의 공공연한 구라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 남들 보기에도 좋다면 그나마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최근엔 사진과 인문학을 결합하는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롤랑 바르트나 발터 벤야민 등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서구이론에 너무 기대다 보면 현실을 놓칠 수 있다. 우리 사진에 대한 논의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한국의 자생적인 사진이론도 있어야 하는데 아직 미미하다. 우리 시각에서 우리의 삶과 바로 연결되는 비평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사진을) 어려워하고 갑갑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진도 언어인데 글 넣으면 서로 충돌해 효과 반감

-우리나라에 사진이론서가 있는가?
“한정식 선생이 쓴 <사진예술개론>은 28년 전에 나온 책이다. 일전에 한 선생을 만났더니 ‘이 책을 뛰어넘는 책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이 책이 팔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얼마 안 되는 사진비평가들이나 사진학과 교수들이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출판사에서도 최근에 너무 사진집의 비중이 높아진 것 같아 사진이론서에 좀더 관심을 기울일 계획이다.”

-사진집에 글이 들어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사진과 글의 결합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독자들이 사진을 해독하기 어려워하니까 친절하게 글도 같이 넣어 에세이로 가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진은 사진으로만 가자. 글이 사진을 보조적으로 설명한다거나 읽기 어려운 사진을 연결해 준다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사진도 언어인데 글을 넣어 상호 충돌하게 하는 것은 사진의 효과를 오히려 반감시킨다.”

-독자들이 1년에 사진집을 몇 권정도 봐주길 기대하는가?
“1년에 12권 정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중 2~3권은 사진집을 봐주면 좋겠다. 다큐 사진가들이 기대할 수 있는 고정 수익은 인세밖에 없다.”

-사진이 취미가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사진집을 봐야하는가?
“사진은 기억이다. 현재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청동거울과 같은 것이다. 소설가 조세희 선생은 사진을 종이거울이라고 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과거가 집적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거울이다.”

 누가나 찍을 수 있지만 아무나 사진가가 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사진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한권이라도 냈다면 한 10여 군데…. 손을 댔다가 시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대개 포기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도 이와나미출판사 등 대형 종합출판사가 순수사진집 출판에 뛰어들었다가 철수했다. 한 나라의 출판문화 수준을 재는 척도는 전문출판이다. 거대 종합출판사가 자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전문출판에 있다.”

-사진집에도 e-북 도입이 가능할까?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고 주시하고 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우선 e-북도 편집자들이 편집해야 한다. 둘째 서체 운용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셋째 복제방지 기술이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한국에선 초기에 엔지니어들이 만들었다가 망했다. 종이책만큼 서체가 다양하지 않았고 편집자가 잘 가다듬어서 올려야 하는데 날 것으로 올렸다가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수익도 종이책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종이책이 가진 특성은 종이의 질감, 잉크, 서체의 구현인데 기술이 발전하곤 있지만 아직은 종이책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전자출판으로 편집된 피디에프(PDF)가 완벽하게 e-북 체제로 넘어가는 것인데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눈빛에서 사진집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사진은 원래 민주적인 매체이므로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사진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를 판명하는 나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대상에 충실하며 일관되게 자기 작업을 해왔냐 하는 것이다. 거기엔 프로나 아마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의 눈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그리고 그의 기록이 훗날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잘 팔리지 않아도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사진의 본질은 기록이므로 무엇보다도 시대성이 잘 살아 있어야 한다.”

noonbits7.jpg» 이 대표는 카메라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낸 책의 종만큼 될 것 같다고...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보수는 집중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을 잘 아는가?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내가 그래도 조금 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을 편집하고 책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서 이규상은 돌연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방점을 찍고 말했다. 독수리 날개처럼 두 팔로 벌려서 이야길 전개해나갔다.)
“사진출판이든 세상의 모든 일이든 간에 가장 중요한 보수는 그 일에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다. 거기에 경제적 성공이 보너스로 주어지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나 또한 경제적으로 풍요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 출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일에 집중하고 자기의 존개감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미 좀더 민주적이고 행복한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과거에 두고 온 것들이 사진에 남아 있다. 그 훌륭한 것들을 나는 책의 형식으로 묶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의무를 즐기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순 없겠지만 되살려 보자, 되돌아가 우리가 놓치고 온 것들을 상기해 보자는 것이다. 내 경우엔 그 중심에서 사진이 반짝반짝하면서 작동하고 있다. 나는 사진책 출판으로 얻은 수익을 100% 사진책 출판에 밀어 넣는다. 요즘은 부족해도 언젠가 채워질 테니 걱정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마케팅이니 프로모션이니 하는 것도 못하지만 다시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이면 대성공 아니겠는가. 책을 만드는 사람이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진출판은 다른 분야보다 열악하지만 그래도 살아냈으니 감사한 일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550종을 출판, 내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본 것 같다

-가장 애정이 가는 책은?
“한권 한권이 모두 소중하다. 아마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1989년 2월 만든 첫 책, 크리스 마커의 ‘북녘사람들’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 이화여대 최미경 교수의 주선으로 2008년 저자의 동의를 얻어 개정판으로 재출간했다. 1959년 프랑스에서 만든 책은 오래전에 품절되어 이제 이 한국어판이 크리스 마커 사진집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가장 망한 책이 뭘까?
“(한숨, 웃으면서) 가장 망한 책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책을 만들 뿐이다. 책을 파는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도 나는 책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여러 종을 냈으니 다른 책이 안 팔려도 상쇄해 주니까 그걸로 버틴다. 난 책이 잘 나가거나 안 나가거나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다. 그래도 팔리는 것이 좋지 않나? 다음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550종을 출판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본 것 같다. 물론 어떤 것이 잘 나가는지 데이터도 나와 있지만 내겐 상업성보다 책의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 그동안 책을 만들며 잘살아왔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눈빛출판사 25주년 연대기에서 이재갑 사진 한 점 샀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너무 싸게 사서 그렇다. 후려쳐서 액자 값 정도 준 것 같다. 그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는 사진인데, 당시 내 형편이 그랬다. 그 노모와 찍힌 흑인 혼혈청년 사진... 짠하다.

여기서 인터뷰를 일단락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대표가 “곧 정태원 선생이 오실 것이니 뵙고 가라”고 했는데 급한 볼일이 있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약속해두었다.

noonbits2.jpg» 구와바라 시세이, 눈빛 친구들, 서울 서교동  


 저녁 시간, 연희동의 한 퓨전 음식점에서 식사 겸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길 이어나갔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두서없이 정리한다. 이 대표의 이야기가 많지만 인터뷰를 하는 나의 질문이나 생각도 섞여 있을 것이다. 격식이 없는 인터뷰란 그런 것이다.


“젊은 사진가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사진계에선 그런 것이 힘들다. 잘나가는 순수사진가들이 우리 출판사에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왜 영감님들의 기록사진, 자료사진 그런 것만 하느냐 자기들의 파인아트 사진에 왜 관심을 두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사진은 기록적 속성을 가진 매체이다. 당신들이 하는 예술사진을 출판물로 만들긴 참 힘들다. 그것은 전시장에나 어울리는 작업이다. 전시와 사진집은 많이 다르다. 갤러리 사진은 전시장의 규모, 조명, 프레임 그리고 훌륭한 음악 등과 어우러져 감상하는 것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가 없다. 사진은 하찮은 매체가 아니다. 작가가 피사체와 얼마나 동고동락했는지, 라포가 형성되어 있었는지 하는 여부가 사진에서 바로 드러난다.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은 특수한 상황이니까 입장과 주의가 혼란스러운 지경이니까 그것이 통한다. 잘나가는 작가가 한번 이렇다고 하면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모두 따라 하기에 바쁘다. 
 사진만 잘 팔리면 일거에 대표사진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 게다가 사진가로서의 역량이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도 없으니 아무나 사진가 한다. 선배도 후배도 그 어떤 위계질서도 없다. 그러니 누구나 다 사진가고 다 아니다. 이데올로기니 뭐니 떠들어도 사진은 한 장 없다. 
 책 한 권 만들기도 바쁜 내가 사진계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서 항변하는 것은 제발 사진만큼은 제자리에 가져다 놓자, 사진이 자본의 유혹으로 너무 멀리 왔으니 이젠 제발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코끼리 비스킷이나 받아먹을 생각하지 말고 기존의 권위에 대항하라는 것이고, 사진계의 형편이 어려우니 서로 도와나가란 말이다. 
 자본이 손짓한다고 함께 고생해 온 동료의 등에 칼이나 꽂고 돌아서지 말고 연대의식을 가지고 한국사진을 올바르게 세우라는 것이다. 빛 볼 것이 있다면 그런 다음에 봐도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못 본다 해도 사진가로 살아가고, 출판인으로 살아가고, 사진마을 촌장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슬픈 일만은 아니니 뭘 그리 걱정하느냐는 말이다.”

 밤이 깊었고 인터뷰도 깊어졌다.

 글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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