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4일 화요일

경향신문 뉴파워라이터 2 정여울

[뉴 파워라이터](2) 문학평론가 정여울

ㆍ“독자와 소통은 절실함의 문제지 난이도는 아니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타인의 작품에 기대야 하는 것은 평론하는 자의 숙명이다. 엄격하고 정치한 작품 분석은 학술적 성취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지만, 책읽기와 글쓰기에서 마음의 무늬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질곡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37)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학문으로서의 문학이 요구하는 기율 사이에 끼여 오랫동안 갈등했다. 2004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한 이후 계간지에 발표한 평론이 정통 문학평론이었다면,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출간한 11권의 저서는 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자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의 책들은 ‘특정 텍스트(문학·영화·드라마)에 대한 글’이라는 점에서는 넓은 의미의 평론에 속하지만, 궁극적으로 텍스트가 마음에 던진 섬세한 파문을 포착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에세이를 지향한다. 정씨의 글이 지닌 이런 특징은 학문의 영역은 몰라도 대중을 상대로 한 글쓰기에서는 강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2000년 국문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갔는데, 석사 1학기 때부터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에 서평을 쓰기 시작해 1년 가까이 했다. 하고 싶은 말을 A4 한 장 분량에 넣느라 글이 빡빡해졌는데 읽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서두를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런저런 매체에서 영화나 드라마 관련 글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다.”

■ 글을 줄이다 압축된 문장이 갖는 힘 깨달아

- 대학원 논문을 쓰기 위한 글쓰기와 대중을 위한 글쓰기의 차이 때문에 갈등하지는 않았나.

“논문에서는 ‘나’라는 주어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 내 감정, 주관적 판단을 다 빼야 한다는 거다. ‘그걸 빼면 뭐가 남나’라고 생각했다. 이게 억압으로 느껴져서 서평은 더 자유롭게 쓰려고 했다. 드라마와 영화 관련 글을 청탁한 매체 편집자들은 ‘더 쉽게 써달라’고 요구했고, 학교에서는 ‘감성적이다’ ‘엄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나 <미디어 아라크네>처럼 대중문화에 대해 쓴 책도 있지만 소재가 무엇이든 모든 글이 수렴하는 지점은 문학인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소중하지만 결코 그게 다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아프게 자극하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면을 써야 한다. 친구, 직장 동료, 남편에게 보여주는 인격이 저마다 다르다. 이처럼 너무 많은 인격을 갖고 살면서도 미쳐버리지 않고 ‘그래도 나는 하나’라는 걸 인식하게 해주는 게 문학의 힘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넓은 의미의 것이다. 내게는 TV 광고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다조차 문학으로 다가온다. 문학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문학이 아닌 곳에서 문학적인 것을 포착해내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다.”

- 문장이 아름답다는 평가가 많다. 문체에 특별히 신경을 쓰나.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진 않았다. 문체에서는 <마음의 서재>가 전환점이다. 신문에 3년 넘게 연재한 글인데 신문 연재의 분량 제한 때문에 글을 줄이고 또 줄였다. 본래 한 문단이었던 걸 한 문장으로 줄이기도 했다. 내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너무 줄이다보면 원래 말하려던 주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압축된 문장이 갖는 힘이 있더라. 내 책 중 독자들이 문장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책이 <마음의 서재>다.”


지난 5월에 출간된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은 20대 시절 자신을 고민하게 했던 경험들을 ‘우정’ ‘여행’ ‘재능’ 등 20개 키워드로 쓴 에세이다. 지금까지 3만부 가까이 팔렸다.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책이지만 출발은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20대를 위한 에세이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쓴 것인데, 처음에는 안 쓰겠다고 했다. 내게 20대는 다가가기 어려운 독자였다.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수군거리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막상 책을 써보니 내가 잊었던 20대 시절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그때 알았더라면…>은 소설이나 영화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나’를 주어로 해서 쓴 첫 책이다.”

-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글쓰기를 방해하진 않나.

“매체에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부터 내 글을 읽는 타인을 의식하게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맨 뒤로 빼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뭘까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굉장히 피곤해졌다. ‘독자들이 어렵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지나치게 한 거다. 대중 강의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강의를 하다보면 내용은 어려워도 내가 뭔가 절실하게 소통하려고 하면 청중에게 가닿는 순간이 있다. 서로 통했다는 느낌,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공감의 순간이 있다. 잘 소통하기 위해 트렌디한 것이나 쉬운 것을 에피타이저로 내놓지 않아도 된다는 걸, 문제는 절실함이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글은 내게 편지… 글 잘 쓰려면 편지 자주 써라

- 싫어하는 종류의 글이 있나.

“정보만 있는 글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리면, 정보와 지식의 가장 큰 차이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다. 가령 어떤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때 신문을 보면 모든 기사가 다 똑같다.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정보다. 하지만 어떤 기자가 사건의 이면을 상세하게 취재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쓴다면 그건 기사 이상이다. 정말 지식이 되는 글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글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보는 글, 문체에서 영혼이 느껴지는 그런 글이 좋다.”

-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글은 내게 편지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수신자를 정해놓고 편지를 쓴다고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 대상을 정하면 그 대상에게 할 말은 이미 있는 것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는다. 학생들에게는 책에 메모를 하라고 말한다. 책에 메모를 하게 된다면, 그건 그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데서 글쓰기가 시작된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0182011005&code=960205&s_code=ac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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