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일 월요일

도서관, 생활의 중심에 서다-건축가 강예린 이치훈

도서관, 생활의 중심에 서다-건축가 강예린 이치훈

2014-02-17 by 국립중앙도서관

출처 http://wl.nl.go.kr/?p=19376


‘미래’라는 단어 속에는 기술지향적 관점이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미래’라는 과제 속에도 디지털 혹은 공학적 신기술이 들어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라 해도 결국 인문학적 관점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건축가가 생각하는 미래의 도서관은 신기술의 복합체 이전에 서지학과 건축학이 만나는 지점이고 이를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사상적 관조 혹은 직관의 형태로 표출된다.
강예린과 이치훈, 두 사람에게 미래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두 사람의 생각은 계단과 문턱이 없이 나즈막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강변의 조약돌처럼 반들반들, 동글동글했다. 그들 가슴 속의 도서관 역시 그러했다.
모름지기 도서관은 자생적이고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동네 쇼핑몰과 다를바 없어야 한다. 그 지역의 필요로 생겨나고 누구나 자연스럽게 향하는 곳이어야 한다. 계단이 없으며 개방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장소여야 한다. 장을 보듯 책을 가방에 담고, 윈도우 쇼핑을 하듯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이것이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관해 할 말 많은 그들
사진_이치훈
도서관이 좋아서 국내의 크고 작은 도서관을 돌아보고 <도서관 산책자>를 펴낸 이 두 건축가는 도서관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지금껏 둘러본 도서관들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도서관으로 강예린 소장은 스페인 살라망카의 작은 도서관을 꼽았다.
“그 도서관에 가면 동네 주민들이 다 나와서 책을 읽고 있어요. 도서관을 이용하다보면 어떤 도서관은 이 공간을 잠깐 빌려서 사용한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고, 잠시나마 이 공간이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는데 살라망카 도서관은 후자였어요. 그만큼 주민들이 도서관을 마치 자기 공간인 양 편안하게 이용하더라고요.”
우리는 이질감이 없고 편안한 공간을 좋아한다. 뜻모를 거창함보다는 차가운 마루의 감촉을 맨발로 느끼며 걷고, 공간을 가득 채운 유쾌함과 발랄함 속에서 창의적이 된다. 그런 일상이 도서관에 재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치훈 소장은 미국의 시애틀공공도서관을 꼽았다.
“건축가가 시애틀 공공도서관을 지을 때 ‘노숙자들이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해요. 비록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고민을 도서관이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건 결국, ‘그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 중심’의 운영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해요.”
도서관이라고 해서 서가에 책만 많이 꽂혀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만들어질 때부터 책 읽는 자세와 공간, 그 속을 채우는 가구의 어울림을 고려해야 한다. 거기에 도서관의 운영 프로그램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 숨쉬어야 한다.
근본적인 질문, 도서관의 건축주들은 누구인가?
사진_강예린
물론 살라망카와 시애틀의 도서관이 반드시 우리나라 도서관의 미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서관을 지을 때 ‘좌석수’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우리의 현실은 격차를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공모전에 좌석수를 명시해요. 마치 병원의 침대 수를 정하는 것처럼요. 이런 부분이 우리나라 도서관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계획은 도서관의 원래 기능과 목적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어요.”
이 세상에 건축주의 입장을 반영되지 않은 건축물은 없다. 개인 주택을 지을 때는 이 집에서 살 사람의 생활 방식, 가족 수 등을 충분히 이야기해야 한다. 이는 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도서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즉 사서나 도서관계 사람들이 건축주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도서관은 건립 과정에서 도서관에서 실제 생활할 사람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어요.”
해외 도서관의 경우, 도서관과 도서관 연구학자, 그리고 건축가들이 모여 이러이러한 철학이 담긴 도서관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방향을 설정한다. 그런 뒤에 공모전을 진행한다. 이유가 분명하고 그 위에 실체를 쌓아나가는 지극히 상식적인 절차이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건축의 기초보다 더 단단하게 다졌어야 할 철학적 기반이 부족하니 비슷한 외관과 내부 구조의 도서관들이 양산되고, 이용자 중심의 운영 프로그램 역시 천편일률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방향 설정의 부재는 도서관을 채우는 ‘비품’으로 이어진다.
“책에 실을 사진을 찾는데, 내부 사진만 봐서는 이 도서관이 대체 어느 도서관인지 구별이 안되는 거예요. 보통 ‘건축 디자인’하면, 그 안에 내부 디자인과 가구를 염두에 두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도서관은 어느 도서관이나 비슷한 비품으로 내부를 채우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관에서 ‘책’이 ‘비품’으로 분류 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도서관은 이용자의 체재시간이 가장 긴 시설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독특한 공간이다. 그래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입장 또한 설계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 지역에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주체가 ‘커뮤니티’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림_헬싱키 중앙도서관 공모전 출품작. 3층의 통로는 서가와 일체화되어 있어 사람들이 그 사이로 이동하면서 책을 ‘쇼핑’하는 느낌을 준다. 책을 편안하게 만난다는 도서관의 기본에 충실한 안배이다. 4층의 열람실은 훨씬 따뜻한 느낌으로 익숙한 집안 서재처럼 밝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건물의 구조가 되는 포물선을 따라 큰 창이 생겨서 빛이 잘 들어오게 하고, 문 없이 요철처럼 나눠진 서가는 개인이 도서관이 아닌 자신의 서가에 들어온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이들이 꿈꾸는 도서관
‘만약 국립중앙도서관을 짓는다면’이라는 질문에 두 사람은 뜻밖에도 ‘터’를 이야기했다.
“광화문으로 옮기고 싶어요. 지금 미국대사관이 있는 자리가 곧 비거든요웃음. 접근성보다는 상징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도심에 화려한 백화점이 있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 근사한 도서관이 있는 건 받아들이지 못해요. 하지만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도서관이 있으면 오다가다 책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될테고, 나아가 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게 돼요. 생활 공간의 중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과 도서관이 내 삶에 밀착 되어있다는 의미겠죠.”
가장 좋은 예가 서울시청 앞의 서울도서관이다. 실제로 그곳에는 장 보러 왔다가 책을 빌려가는 사람도 있고, 퇴근하면서 책을 반납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계단이 많아요. 주로 언덕이나 산에 지어진 탓도 있지만 외형을 크게 보이려고 일부러 계단을 쌓는 경우도 많거든요. 광화문에 위치한 계단 없는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이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도서관 공간 내부의 개념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친구들이 ECM 전시회유럽 음반 레이블 ECM의 음악과 영상, 표지 등을 감상, 관람하는 전시회를기획했어요. 촉각, 시각, 청각을 만족시키는 정보들로 가득한 공간의 연속이었죠. 도서관도 결국은 우리의 감각을 충족시키는 정보들로 채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느끼게 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원리가 가장 중요한 공간이 도서관입니다. 이런 감각적인 설득력이 갖춰진 공간, 정보의 집합체로서 기능하는 도서관이 미래 도서관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그림_광주푸른길도서관 공모전 출품작은 폐선부지를 이용해 만든 푸른길의 연장으로 도서관을 ‘커뮤니티의 공간’으로 제안한 프로젝트이다. 중앙에 정원이 있는 단층 구조로, 가장 조용하게 책을 읽는 장소만 층을 걸고, 실별 구분을 최소화하여 공간을 하나로 엮었다. 열람실별 구분을 없애서 관리의 효율을 높임으로써, 도서관의 운영 시간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br />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넓은 중앙홀보다 중앙 정원과 책이 눈에 띄게 하는 동선도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중앙의 정원쪽으로 전면 유리창으로 된 실내는, 접이창을 접었을 때는 반외부 공간으로 변화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책을 가지고 이 정원으로 나가서 읽을 수 있게 의도한 것이다.
새로운 광장, 도서관
인류가 활자와 문서를 만들면서 도서관은 공존해왔지만, 그 역할은 역사 환경에 따라 항상 변화해 왔다. 지금 우리 시대의 도서관이 받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두 건축가의 의견은 ‘우리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된 도서관’이었다.
우리의 도시에는 커뮤니티 개념이 희박하다. 그런 삭막한 단절과 고립을 잇기 위한 공동의 공간들이 시도되기 시작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도서관은 커뮤니티의 소통 네트워크 중심, 광장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과 공간, 그리고 정보가 교류하는 장소, 도서관.
이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책의 집’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어울림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복합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쇼핑몰의 곁, 놀이터와 이어진 서가와 열람실, 때로는 집보다 편안한 쉼터. 그렇게 커뮤니티와 책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나라 도서관이 가야 할 미래가 아닐까. 자연스럽지만 단단한 공간은 예상 외로 생명력이 길다. 그것이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는 도서관의 미래이다.
건축가 강예린, 이치훈에게 미래의 도서관이란 생활의 중심 공간이다.
| 강예린. 도서관에서 길 잃어버리는 것을 즐기는 젊은 건축가. 서울대학교에서 지리학 공부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로테르담과 서울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0년 이치훈과 함게 건축사무소 S.O.ASociety of architecture 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 이치훈. 도서관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만남을 지원하는 유연한 플랫폼을 상상하는 젊은 건축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경관과 도시 건축에 관심이 많아 석사 학위도 〈경관 변화의 사회적인 조건에 관한 연구〉로 받았다. 2010년 강예린과 함께 건축사무소 S.O.A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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