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4일 화요일

윤익선의 경성도서관 터/ 가회동 1번지/ 백창민

[윤익선의 경성도서관과 가회동1번지 - 재벌가 저택으로 변한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 도서관 터]
 
취운정 터에 있었다는 윤익선의 ‘#경성도서관은 정확히 어디에 있었을까요?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산책의 저자 김해경 교수님에 의하면, 경성도서관은 가회동 1-15번지 일대에 있었습니다. 김해경 교수님은 일제강점기 경성의 옛 지도를 조사해서 윤익선이 세운 경성도서관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도서관이 세워진 #가회동 1-15번지에는 지금 무엇이 있을까요? 위성지도로 확인해보면, 가회동 1-15번지에는 대저택이 들어서 있습니다. 윤익선이 문을 연 경성도서관 자리에는 가회동 일대에서 가장 큰 저택이 있습니다. 땅값이 오를 대로 오른 북촌 가회동에 자리한 이 저택은 누구 소유일까요? 바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저택입니다.
 
경성도서관이라는 근대도서관이 있던 땅에 재벌그룹 총수의 저택이 들어선 이유는 뭘까요? ‘가회동 1번지의 역사를 잠시 살펴 봐야겠습니다.
 
가회동 1번지 일대는 조선시대까지는 개발이 되지 않은 미간지未懇地로 있었습니다. 이 땅이 ‘#취운정翠雲亭이라 불린 대한제국 때는 여흥 민씨가 소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가 국권을 빼앗자 땅의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초 취운정 터가 있던 가회동 1번지부터 3번지까지 필지는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박영효와 #조선귀족회 소유였습니다. 왕의 부마로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박영효는 일제강점기에 후작 작위를 받고 조선귀족회 회장과 중추원 부의장을 지내며 친일의 길을 걸었습니다. 박영효와 조선귀족회는 가회동 1번지부터 3번지까지 필지를 ‘1번지로 합쳤습니다.
 
조선귀족회가 이 땅을 소유했던 1920115일 윤익선의 경성도서관이 이곳에 들어섰습니다. 윤익선의 경성도서관은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종로 탑골공원에 있던 이범승의 경성도서관과 함께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윤익선이 만주 간도로 떠난 후 가회동에 있던 경성도서관은 탑골공원 경성도서관으로 합쳐졌습니다.
 
박영효와 조선귀족회가 10년 가까이 소유했던 가회동 1번지1928년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에게 넘어갔습니다. 흥남에 조선질소비료공장과 수풍발전소를 짓고 조선철도호텔 옆에 반도호텔을 세웠다는 바로 그 노구치 시타가우입니다. 박영효와 조선귀족회로부터 가회동 1번지를 사들인 노구치는 1929년 윤치창을 비롯한 해평 윤씨 집안과 최정순, 유문규·김규응, 이종구·양한석에게 1번지를 나눠 매각했습니다.
 
윤치창은 윤치호의 이복동생이자 윤보선의 당숙으로 초대 영국공사를 지낸 사람입니다. 노구치로부터 가회동 1번지의 일부를 사들인 이종구와 양한석은 주택개발업자였습니다. 이종구와 양한석은 1-17번지를 비롯한 가회동 땅을 사들여 한옥을 지어 팔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도 가회동에 남아있는 도시 #한옥지구가 탄생했습니다. 이종구와 양한석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경성의 건축왕이라 불린 정세권도 이 일대 한옥지구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가회동 1번지는 1960년대부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저택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주택이 들어서고, 한화그룹사가 이 일대를 사들이면서 지금은 ‘#한화타운이 되었습니다.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지금은 정독도서관으로 바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81년 아버지인 김종희 회장이 사망하자 장남인 그가 스물아홉의 나이로 한화그룹을 이어받았습니다.
 
한화그룹의 이름은 원래 ‘#한국화약그룹이었습니다. 그룹 고위 관계자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룹 영문명이었던 Korea Explosive Group라는 이름을 남조선폭파집단이라는 테러단체처럼 번역해서 이후 한화그룹으로 바꿨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전합니다. ’폭파집단은 아닌지 몰라도 한화 재벌가는 몇몇 사건사고를 통해 대중에게 조폭집안이라는 인상을 깊이 아로 새겼습니다.
 
조선시대 개발되지 않은 땅이었던 이 주변은 일제가 이 땅의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국권 탈취에 협력한 친일파의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손꼽히는 일본인 사업가에게 넘어갔다가 주택개발업자의 손을 거쳐, #재벌 소유의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도서관, 경성도서관이 있던 땅에 새겨진 역사입니다.
 
이쯤되면 경성도서관이 있던 땅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성도서관이 있던 가회동 1번지는 권력의 향배에 따라 당대 권세를 누린 세도가의 손을 두루 거쳤습니다.
 
흔히 땅에도 ‘#팔자가 있다고 합니다. 땅이름처럼 도서관을 통해 아름답고 즐거운 만남[嘉會]이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재벌가 소유가 되면서 경성도서관터는 쉽게 답사가 불가능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근대도서관이라는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 윤익선의 경성도서관이 그 위치조차 잊힌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그 의미를 망각하고 그 역사를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기억하는 것만이 과거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기록하는 것만이 역사가 될 것입니다. 경성도서관의 과거를 기억해서 역사로 기록하려는 이유입니다. 가회동 1번지 일대에서 윤익선의 경성도서관으로 출발한 '#종로도서관'은 올해로 개관 100주년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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