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건축물은 무엇일까?
- 도서관 건축물의 작은 역사 3 : 학교도서관
백창민 2020년 7월 20일
앞서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서 오래된 건축물을 다뤘습니다.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학교도서관’으로 ‘쓰인 건물’ 중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경기고등학교도서관
근대적 의미의 학교도서관이 자리했던 건축물로, 현재 가장 오래된 곳은 옛 ‘경기고등학교 도서관’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현재 #정독도서관 입구에 있는 건물로 ‘#서울교육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927년 지은 건물로 추정되며, 정독도서관 건물군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정독도서관은 관립학교 터로 ‘중등교육의 발상지’입니다. 정독도서관 건물은 학교 건물 중 큰크리트로 지은 최초의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교’ 건축물사에서 의미있는 정독도서관은 ‘학교도서관’ 건축물 역사에서도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서울교육박물관 자리는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집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균 김옥균은 과거에 급제한 후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에서 관직을 시작했습니다.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은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암살 당했습니다. ‘대역부도죄인’으로 죽었지만 나중에 규장각 대제학에 추증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도서관인’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해야 할까요.
#경기고등학교 학교도서관은 1958년 10월 3일 개교기념일을 맞아 문을 열었습니다. 1957년 4월 2일 경기고등학교에 부임한 #김원규 교장은 #한국도서관협회 간사로 일하던 #김경일 선생을 ‘사서교사’로 영입해서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교도서관을 탄생시켰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은 교실 7개 규모였습니다. 교실 1-2개 규모의 ‘도서실’도 있을까 말까 하던 그 시절, 경기고등학교 ‘도서관’은 규모나 시설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습니다.
당시 경기고 도서관 개관식에는 문교부장관, 서울시교육감을 포함한 ‘고관대작’ 뿐 아니라 피바디 교육사절단의 도서관 전문가 #스와이거Swiger 여사도 참석했습니다. 동남아 교육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할 때면 경기고 도서관은 꼭 들려야 할 견학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학교도서관이라는 평도 들었습니다.
학교도서관으로 쓰이던 이 건물은 1970년대부터는 학생들이 합숙하며 리더십 교육을 받는 생활관, ‘화동랑의 집’으로 쓰였습니다. 역사가 오랜 이 건물은 누가 설계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교육박물관 건물 아래 계단에는 ‘#홍현’紅峴이라는 표석이 서 있습니다. 이곳의 흙이 붉어 ‘홍현’이라고 불렸습니다. 정독도서관 자리는 #성삼문 집터였습니다. 홍현이라는 이름에서 단종의 복위를 꿈꿨던 성삼문의 붉은 단심丹心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정독도서관에 있는 건축물을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학교도서관으로 쓰인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이 가장 오래되었고, 도서관 건물 3개 동 중 앞에 있는 2개 동과 식당 건물(경기고 시절에는 ‘강당’으로 쓰였습니다)이 그 다음입니다. 이 4개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었습니다. 역사가 오랜 이 4개 건물만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세 번째 동은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 지었습니다. 가장 늦게 지은 건물은 현재 직원식당으로 쓰이는 ‘음악당’ 건물입니다. 이 학교 출신 건축가 이천승이 지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기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성제일고보)라 불렸습니다. 굵은 흰테를 하나 두른 백선모자는 경성제일고보의 상징이었습니다. 두번째 관립학교로 세워진 평양고보는 백선이 2개, 세번째 학교인 대구고보(지금의 경북고등학교)는 백선이 3개였습니다.
경성제일고보 시절부터 경기고는 ‘진학 명문’으로 꼽혔습니다. 첫번째 건물인 1동 교장실 옆에 ‘도서실’을 두고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입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성제일고보 시절 ‘#도서실’이 있던 곳은 1동 오른편에 위치한 ‘청소년관’ 자리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나저나 경성의 제일고보가 어쩌다가 ‘#경기고등학교’가 되었을까요? ‘경기공립중학교’로 이름이 바뀌는 1938년, 학교가 있던 경성은 조선의 ‘수도’가 아닌 경기도의 ‘도청 소재지’였습니다. ‘경기’라는 학교 이름을 통해 우리는 식민지 시절 경성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숙명여자중고등학교도서관
그러면 지금도 학교도서관으로 쓰이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어디일까요?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숙명여자중고등학교 숙명도서관’입니다. 숙명여자고등학교는 교무부장 아빠가 쌍둥이 자매에게 내신시험 문제를 유출한 사건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바로 그곳입니다.
숙명도서관은 건물 전체를 도서관으로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건물 자체의 역사는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숙명여자고등학교 도서관은 1928년 ‘도서실’로 출발했습니다. 1930년부터 본관 2층 귀빈실을 도서실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숙명여자고등학교는 1981년 2월 25일 강남구 도곡동 91번지로 이전한 후 본관으로 쓰던 지금의 건물을 복원해서 1-2층 공간을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 숙명여자고등학교는 종로구 수송동 80번지 코리안리 빌딩 자리(조계사 근처)에 있었습니다. 1906년 5월 22일 ‘#명신여학교’로 출발해서 1909년 ‘숙명고등여학교’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개교한 지 114년이 넘은 유서 깊은 학교입니다. 월북 무용가 최승희와 소설가 박완서, 최정희, 한말숙, 권지예, 이화여대 총장으로 국무총리 후보자가 되었다가 낙마한 장상이 숙명 출신입니다.
#숙명도서관 건물의 건립연대는 1920년대로 추정되며 100년 가까이 된 건물입니다. 서울시는 이전 복원한 이 건물의 의미를 높이 평가해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습니다. 본관으로 쓰던 이 건물이 도서관과 사료관으로 사용한 역사는 40년이 되지 않지만, 건물 자체의 역사는 경기고등학교 학교도서관으로 쓰인 ‘서울교육박물관’ 건물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2004년과 2009년 2차례 리모델링을 거치며 내부 공간을 현대적으로 단장했습니다. 영상실과 온돌방, 마룻바닥을 갖춘 지금의 모습은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3층 규모 건물의 1-2층은 도서관으로 사용하며, 3층은 사료관으로 사용합니다. 중고등학생이 함께 사용하며 만화책 뿐 아니라 아동서도 비치하고 있습니다.
제물포고등학교도서관
가장 오랫동안 도서관 건물로 쓰인 건물은 따로 있습니다. 독립건물로 존재하는 건축물 중 학교도서관으로 가장 오래 쓰인 건물은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1959년 11월 27일 문을 연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은 3층 규모의 독립건물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가제’ 도서관이었습니다. 개가제로 운영했을 뿐 아니라 열람실, 참고열람실, 직원 연구실, 정리실, 소지품 보관실, 음악감상실, 영화감상실, 정기간행물실, 제본실, 시청각 교육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시 왠만한 공공도서관보다 시설이 더 뛰어난 학교도서관이었습니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기준으로도 1950년대 제물포고등학교가 건립한 학교도서관 시설은 대단해 보입니다.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이 도서관을 짓기 위해 #길영희 교장은 기성회를 조직하고 미국군사원조처AFAK의 원조자금을 얻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길영희 교장이 직접 등짐으로 벽돌을 나르며 이 도서관을 지었다는 얘기가 전합니다.
전국 최초의 개가제 학교도서관으로 아는 분도 있지만, 개가제의 역사는 경남고등학교 덕형도서관보다 뒤집니다. 제물포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 연혁’에 올라와 있는 “1956년 11월 20일 도서관 신축 개관” 정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은 1956년이 아니라 1959년에 신축해서 문을 열었습니다.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사서교사로 일했던 #최근만 선생은 그에 앞서 경기고등학교 도서관에서 1년 정도 일했습니다. 그후 모교인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 건립과 함께 사서교사로 일했습니다. 경기고 도서관 개관 시점이 1957년이고 최근만 선생이 1년 정도 일한 후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으로 옮겨 일했으니, 개가제로 탄생한 제물포고등학교 도서관은 1959년부터 운영된 것이 맞습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 인천 구도심 공동화되면서 제물포고등학교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인천 송도 같은 신시가지로 학교를 이전하자는 논의가 일었습니다. 제물포고등학교의 맞수로 인천의 명문으로 꼽힌 ‘#인고’(#인천고등학교)가 율목동에서 주안동으로 이전한 상황이라 ‘#제고’도 이전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물포고등학교가 이전했다면, 올해로 건립 61주년 역사를 맞은 제물포고 도서관 건물은 사라졌을 겁니다. 제물포고등학교가 웃터골에 그대로 머물면서 가장 오랫동안 학교도서관으로 쓰인 ‘제고 도서관’도 우리에게 그대로 남았습니다.
경남고등학교 덕형도서관
독립건물은 아니지만 경남고등학교에서 문을 연 ‘#덕형도서관’에 대해 언급을 해야겠네요. 덕형도서관은 경남고 #덕형관 2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덕형관은 ‘경고’(경남고)를 상징하는 건물로 유명합니다. ‘덕형’德馨이란 '너그러운 덕성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의미합니다.
덕형관의 모양은 ‘원통형’입니다. 직사각형 형태의 학교 건물이 흔한 오늘의 관점으로 봐도 파격적인 건물입니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천재 건축가 이천승입니다. 5층 규모 건물이며 연면적은 2,351.6㎡입니다.
건물 중앙에 있는 나선형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1층부터 4층까지 공간은 여섯 등분으로 똑같이 나뉘어 있고, 각 층은 5개 교실과 1개 화장실로 이뤄져 있습니다. 네모난 학교 건물 일색인 한국 학교건축물에서 보기 드문 원통형 건물입니다. 문화재청은 덕형관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경남고등학교는 1956년 학교도서관을 개관하고 1957년에는 ‘개가제’로 도서관을 운영했습니다. 덕형관에 자리한 경남고 학교도서관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남고는 서울의 경기고, 인천의 제물포고보다 학교도서관 건립과 운영이 더 빨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남고는 개가제를 가장 빨리 도입한 학교도서관입니다. 경남고에서 혁신적인 학교도서관이 탄생한 배경에는 당시 교장이었던 #추월영 교장과 지리교사로 일하다가 사서교사로 근무한 #김두홍 선생의 역할이 컸습니다.
진주여자고등학교도서관
1952년 3월 개관해서 #김종성 교수가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학교도서관’이라고 언급한 #진주여자고등학교 도서관도 있습니다. 진주여고 도서관과 5천여 권의 장서는 1957년 1월 23일 발생한 화재 때문에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산여자고등학교는 1954년부터 학교도서관을 운영해서 진주여고와 함께 경남의 선구적인 학교로 꼽혔습니다만, 독립건물로 도서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 마산여고에는 #박경원 교장과 훗날 이화여대 도서관학과 교수가 되는 #김세익 선생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도서관사 연구가 한국전쟁 이후 시점부터 이뤄지고 있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학교도서관 역사가 아직 ‘묻혀’ 있다는 점입니다.
광주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홀
일례로 광주 수피아Speer여학교에 있는 ‘#커티스메모리얼홀’The Bell memorial chapel 지하에는 ‘도서실’이 있습니다. 조적조와 목조 트러스로 지은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1층 짜리 건물입니다.
1925년 완공된 이 건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근대 문화유산입니다. 이 건물 지하 공간이 언제부터 ‘도서실’로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커티스메모리얼홀의 역사는 경기고등학교 도서관으로 쓰인 서울교육박물관 건물의 역사와 어슷비슷하거나 더 빠릅니다.
아펜젤러Appenzeller가 세운 배재학당의 경우도 ‘도서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배재학당 '#동관'은 현재 정동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배재학당 동관은 학교도서관의 흔적을 품은 가장 오래된 건축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개교 100년을 넘나드는 수많은 학교가 있습니다. 이들 학교에 ‘#근대도서관’은 언제부터 생겨서 어떤 형태로 발전해 왔을까요? 한국 근대교육의 역사는 대한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근대 학교도서관 역사는 반세기 후인 한국전쟁 이후에야 시작된 걸까요?
한국전쟁 이후 학교도서관 운동사를 연구한 김종성 교수의 선구적 업적이 있긴 합니다만, 김종성 교수의 연구는 한국 ‘#현대’ 학교도서관사일 뿐 한국 ‘#근대’ 학교도서관사까지 포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도서관 운동의 선구자인 김경일 선생도 일제강점기와 해방 시기에 학교 현장에 도서관이 존재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김종성 교수가 ‘한국 최초의 근대적 학교도서관’으로 언급한 진주여고 도서관도 ‘최초의 근대 학교도서관’이 아닌 ‘현대에 들어 처음 문을 연 학교도서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학교도서관 역사 연구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미답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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