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칼럼] 코로나의 6개월 / 김훈
등록 :2020-07-06
지난 6개월 동안 코로나 재난의 전개 양상과 거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물리적, 화학적 수단으로 박멸함으로써 이 재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이 볼 수 없고, 추적할 수 없는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백신 개발을 위해 거대 자본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고, 그 성과물이 기업이윤과 지식재산권의 굴레를 벗어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돌아올 수 있을는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없다.
방역수칙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고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큰 효과가 증명되어 있지만, 그것이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고통을 사람들은 장기간 감당해낼 수가 없다. ‘아프면 며칠 쉬라’는 아름다운 조언은 쉬면 가게문을 닫아야 하고, 쉬면 잘리고, 쉬면 굶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과 사소한 관련도 없다. 말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말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코로나 재난은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이 서로 대등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병리적 평등을 보여주면서 비정규직, 콜센터, 플랫폼에서 질병의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 보였다.
여러 나라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코로나 재난은 국제적 연대와 협조의 힘으로 글로벌하게 관리·통제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대는 동안에 재난을 자국의 국경에서 멀리 밀쳐내려는 각국의 배타적 이기주의는 심화되었다. 나의 생각은 출구가 없고 전망이 없다.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인간은 가혹한 심판대 위에 서 있다.
작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23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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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
검찰은 "준사법기관"이 아닙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청법 제8조에 따라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찰의 언론관련 위법행위에 대한 지휘ㆍ감독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우리 검찰청법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개입하지 않는 대신 검찰총장에 대해서는 직접 지시를 내릴 수 있게 되어 있고, 추 장관은 현행법의 절차에 따른 적절한 지휘를 통해 검찰의 부당한 수사를 바로 잡기 위한 조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윤 검찰총장은 소위 검사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의 이유로 아직 그 지휘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법무장관의 지시에 토를 달면서 수사지휘 이행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 헌정사 상 유례없는 항명 사태가 될 것입니다.
검찰총장의 2년 임기 보장이나, 법무장관의 직접적 수사개입을 거부하는 현행 법제도는 정치검찰의 수사권의 남용이나 왜곡을 무수히 경험한 과거를 기억하며 그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검찰에 무소불위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보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검찰은 독일 형사법의 구조를 이어 받았지만 지난 권위주의의 경험 속에서 다른 어느 나라도 갖지 못한 엄청난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서초동에 대법원 청사가 흰색 고층 건물로 건설될 때 검은 색 고층건물로 대검청사가 그 옆에 들어 선 것을 두고, 검찰이 법원의 권위에 자신을 빗대는 것의 상징이라고 하며 희화화하는 내용이 외국논문에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윤석열 검찰의 장관으로부터의 수사지휘 이행 거부를 부추기는 주장 중의 하나가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며 검찰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혀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이 아닙니다. 검찰총장은 대한민국 정부의 법무장관의 휘하에 있는 행정기관이며 국민의 민주적 통제에 따라야 합니다. 법무장관의 지휘를 거부하고, 일선 검사장의 분위기를 내세우며 항명을 꾀하는 검찰이라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법무부의 수장인 법무장관이 법무와 검찰 전체를 관장하는 어토니 제너럴 (Attorney General)입니다. 검찰이 별도의 수사기관을 갖고 있지 않고, 또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도 하지 않기 때문에, 법무장관과 검찰의 권력 남용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 검찰의 권력은 너무나 큽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정당한 법적 절차에 대해서까지 토를 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검찰 개혁을 얘기하고, 군대조직의 경험을 떠 올리며 항명을 걱정합니다.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진정한 검찰개혁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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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단
#1.갈 때가 마땅찮다. 학교 끝나면 갈 곳이 없다. 스쿨버스가 야속했다. 더 놀고 싶은데 후딱 태워서 마을에 덩그러니 데려놓으니 놀 친구가 없었다. 조금 더 놓고 싶은데. 그런 마음을 읽어주는 이 없었다. 학교 안에서 노는 것도 재미나지만, 학교 밖에서 노는 것은 얼마나 재미지겠는가. 자유를 만끽하며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웠을 지도 모른다.
#2.작은학교, 전교생이 고작 7명밖에 안 되는 그야말로 초 미니 학교이다. 분교가 된지 오래됐다. 유치원생까지 치면 9명, 그래도 두자리 숫자가 안 된다. 이 아이들을 품지 못했던 마을은 내내 마음이 걸렸을 것이다. 주민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권역사업의 하나로 삐까뻔쩍한 건물이 와정리 경로당 옆에 지어졌다. 도시인들의 농촌체험, 프로그램, 숙박을 주로 하는 공간이라 평일에는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3.공간을 보면서 아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식당도 있는, 차와 음료, 아이스크림도 판매하는 그 공간을 보면서 단박에 아이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던 박은경 사무국장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돌봄공간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먼저 시작했고 마침 행복교육지구 사업으로도 신청했다. 공공의 예산까지 끌어온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을 모아냈다. 공동의 필요를 연결해 내자 꽃이 피었다. 웃음꽃이 곳곳에서 피었던 것이다.
#4.학교 끝나고 빈 상자같은 방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아이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부모들은 쌍심지를 켜고 격한 환영의 반응을 보냈다. 군북면 와정리 공동돌봄, 향수뜰행복돌봄공동체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남녀노소가 다 모이기 시작했다. 인근 할머니들은 학교 끝나고도 아이들 웃음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무언가 돕고 싶은 마음이 동해 감자도 캐서 가져다 주고, 농산물도 틈날때마다 듬뿍 듬뿍 들고 왔다. 기분 좋은 자리에는 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 자리는 얼마든지 만들어줬다. 같이 마음을 보탤수록 커진다는 것을 알기에 '다다익선'으로 맘을 모았다.
#5.충북도에서 지역공동체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사실 덤이었다. 상을 받아서 특별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특별해진 마을에 훈장이 하나 더 달린 것이다. 이미 그들은 그렇게 돌봄을 하면서 마음의 별 하나씩을 선물 받았다. 숫자로는 형언할 수 없는 9개의 별을 선물받았다. 누가 학생 수가 작다고 폐교를 운운하는가. 대정분교는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큰 도화선이었다. 그들은 꿈을 꾼다. 폐교되지 않는 학교를 말이다. 박은경 사무국장은 동이초에서 대정분교로 본인의 아이도 전학을 시켰다. 대정분교에서 아이가 더 필요했고 이미 그 곳에 몸을 담그고 있는 터라 살핌도 더 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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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gu Kang
[케어]
팔순의 나이에도 손자의 기사 오타까지 지적하시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께서 먼저 가시자 급격하게 약해지셨다. 치매가 시작되고 나서도 시골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티셨지만, 새벽에 논두렁에서 동네 주민에게 발견되고 나서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노인 요양 병원으로 모셨다.
마침 그때 평생직장을 정년퇴직한 아버지께서 노인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셨다. 무슨 궁리인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격증을 따자마자 할아버지를 모신 노인 요양 병원에 입사 원서를 내셨다. 어차피 매일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할아버지를 지켜보시는 상황이니 아예 직원이 되어서 옆에서 지켜보자고 마음먹으신 것이다.
노인 요양 보호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기에 처음에는 말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문병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희미하고 엉클어져 가는 기억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남이 언제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는 아주 큰 안정을 취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어르신을 돌보는 아버지의 표정도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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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클라인먼의 『케어』(시공사 펴냄)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이 겹쳤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 대학 정신의학과 교수가 50대 후반에 조발성 치매(젊은 치매)가 온 아내를 10년간 보살핀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아내 조앤을 보살피는 과정을 통해서 현대 의료에서 ‘돌봄(care)’이 가진 의미를 성찰한다.
『케어』는 중국 현지에서 남편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천자문』을 영어로 번역하던 명민한 중국학자 조앤이 치매로 무너지는 모습부터 시작한다. 학자로서 경력을 쌓아오면서 아내의 조력이 필수였던 저자는 이런 아내를 보면서, 어떻게든 ‘자신이’ 책임지고 끝까지 함께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고 나서부터 10년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여정이 시작된다.
시력을 먼저 빼앗기고 나서 서서히 기억이 사라져가는 조앤은 나중에는 남편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심각한 상태로 치닫는다. 품위의 여신이었던 조앤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상황도 저자로서는 못 견디게 슬픈 상황이다.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앤이 거친 언행을 거침없이 하는 모습은 어떤가.
저자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일은 이 모든 과정에서 보이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선 긋기다. 의사는 조앤의 진단에만 치중할 뿐 환자가 어떻게 돌봄을 받고, 그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는 어떤 처지에 있는지 관심이 없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의사로 일하던 저자는 이렇게 돌봄의 가치를 부정하는 현대 의학이 과연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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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아내를 돌본 10년을 담담하게 복기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묻는다. 사실 그는 잘못했다. 치매 아내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저자의 간병기는 감동적이지만, 그의 고집스러운 ‘독박 간병’은 자신뿐만 아니라 아픈 아내까지 위험에 빠뜨린 행동이었다. 저자는 병원이나 시설에 아내를 맡기지 못했던 선택을 뒤늦게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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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에서 끊임없이 돌봄의 가치를 강조하는 저자 아서 클라인먼은 사실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이라는 현대 의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을 제안한 ‘사회 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개인의 고통이 사실은 정치, 경제, 사회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통찰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10년 동안 이런 사회적 고통을 당사자로 직접 경험해야 했다. 그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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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의 보살핌을 받던 조앤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던 할아버지도 같은 길을 갔다. 할아버지는 말년에 요구르트를 즐겼다. 그는 아들이 준 요구르트를 마지막으로 맛있게 먹고서, 30분 후에 눈을 감았다. ‘돌봄의 영혼’이 지켰던 조앤과 할아버지 모두 가는 길이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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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 한 달에 한 번씩 쓰는 ‘읽어본다, 과학’. 지난 주에는 아서 클라인먼의 『케어』를 소개했습니다. 클라인먼은 국내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의 대가로 여러분에게 익숙한 폴 파머(『권력의 병리학』)의 스승이자, 저명한 의료 인류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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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sik Kim
요즘처럼 일상이 흔들리는 시기에,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루틴입니다. 저의 습관은 새벽의 글쓰기와 퇴근 후 독서입니다. 둘 다 친구가 필요없고, 모임이 필요없고, 장소나 비용이 따로 들지 않는 일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간은 어찌보면 사회적 약속의 유혹을 이겨내는 시간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살아가는, 루틴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있어요.
<아무튼, 계속> (김교석/위고)
매일 아침 글을 쓰고, 매일 저녁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저녁 약속을 피합니다. 저녁에 사람을 만나면, 일단 저녁의 자유 시간이 사라지고, 귀가가 늦어져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듭니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블로그 글 올리려고 새벽에 일어나는 건 괴롭거든요. 어떤 일을 습관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즐겁게 유지하는 편이 좋습니다. 김교석 저자도 루틴을 지키기 위해 저녁 약속을 피한다고 해요.
'술자리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고, 둘째 일상을 지키려는 의지를 방해하고, 셋째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여러 이야기들과 타인의 근황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술 안 먹고 할 수 없다는 말은 듣지 말자. 평온하고 동요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 정말 여러모로 방해 요소다.'
정말 확! 와닿는 말씀입니다. 책을 읽으며 내내, '아, 나랑 비슷한 점이 정말 많은 분이네?'했어요. 이런 분을 만나면, 혹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를 살펴봅니다. 그게 내가 새롭게 배울 점이거든요. 나와 취향이 다른 저자의 루틴을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에게는 분명 배울 점이 있어요. 저자는 '초라한 혼밥'을 피하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밥을 먹지 말라고요.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식사 약속을 잡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혼자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럴 때, 스마트폰을 켜서 전자책을 읽습니다. 마치 '뽀로로'나 '또봇'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산만한 아기처럼 눈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입으로만 밥을 먹지요.
'식사는 오롯이 자기와 마주하는 하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식사 시간은 음식 맛을 느끼며 행복을 찾고, 잠시 쉬면서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하고 비우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마저도 자기 자신과 단둘이 마주 앉기를 거부한다. 이런 식이면 혼자 밥을 먹는 이유가 초라해진다.
습관이란 무서운 거다. 혼자 밥을 먹더라도 격식을 갖춰보자. 자기의 시선을 전화기에 가둠으로써 주변의 시선을 차단하려 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고 식당의 분위기까지 식사라고 생각하고 전반적으로 즐기자. 분주하고 정갈하든 지금 앉아 있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이다.'
한 달 전, 이 책을 읽고 따라하기 시작했어요. 혼자 밥을 먹을 때도 휴대폰이나 책을 멀리하고 식사의 순간을 느껴보는 걸로.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긴 채 밥을 먹는 대신, 한숟갈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으며 먼 곳을 응시합니다. 마치 만화 <초밥왕>의 심사위원이 한 알 한 알 쌀 한 톨까지 음미하듯이. 그렇게 먹었더니, 이제 혼밥의 시간도 즐거운 루틴이 되었어요.
책에서 배우며 나의 일상을 가꾸는 일, <아무튼, 계속> 해보겠습니다.
출처: https://free2world.tistory.com/2488 [공짜로 즐기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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