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안 잡히는 이유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집값은 왜 잡히지 않을까? 이유가 있다. 집값이 안 오르길 바라는 사람보다 오르길 바라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 집을 갖고 있다면 어느 쪽을 바라는가? 설마 내 집의 재산 가치가 내리길 바라는가? “이만큼 올랐으니 됐다. 이제 집 없는 사람들과 장차 집을 구해야 할 내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집값이 그만 오르고 아예 내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2019년 자가보유율은 61.2%이다. 국민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집을 가지고 있고 집값이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부동산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의 정책결정자들도 집 가진 사람이 다수고 다주택자들도 꽤 있다. 한 채만 남기고 팔라는 비서실장 권고대로 팔았다는 얘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이 만든 정책은 어느 쪽을 위한 것일까? 가난한 백성들일까, 자신을 포함한 기득권일까? 집값은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기득권 대 비기득권의 문제다.
집값을 올리는 강력한 힘의 근원이 또 하나 있다. 정권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최고 권력자들, 대기업과 부동산 재벌 등 자본권력이다. 돈으로 땅을 사고 땅으로 돈을 벌어 막대한 불로소득을 누리고 권력을 키워온 이들의 끝없는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 한 집값은 결코 잡히지 않는다.
집값 문제 대책으로 신도시 등 공급론이 늘 거론된다. 엊그제 장관을 소환했던 대통령도 공급확대를 주문했다. 주택공급을 늘리면 집값이 잡힐까? 그렇지 않다. 공급된 주택이 누구 차지가 되고 오른 집값의 혜택이 누구에게 갔는지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공급된 주택 489만호의 절반인 250만호를 다주택자가 사재기했고, 이 가운데 200만호를 자가보유자 상위 10%(105만명)가 사들였다. 10년 사이 전체 주택가격은 3100조원 증가했고, 1인당 평균 증가액을 보면 자가보유자 전체는 2억원, 상위 10%는 5억원, 상위 1%는 11억원이다. 신규 주택공급은 기득권을 더욱 살찌우는 먹잇감이 되었다는 얘기다. 공급론에 속지 말자. 수도권 신도시는 집값을 잡기는커녕 더욱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고 지방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다. 비수도권 신도시 역시 집값상승의 불쏘시개 노릇을 하며 비어가는 원도심과 농산어촌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빈집들이 지천인데 왜 자꾸 새로 짓는가? 누구 좋으라고?
집값은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이다. 자본권력들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정책결정자들도 기득권이거나 그에 가깝다. 국민들 중에도 오르길 바라는 쪽이 수도 많고 목소리도 크다. 이런 형국인데 집값이 내려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답은 없는가? 있다. 혁명뿐이다. 위로부터든 아래로부터이든.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기득권에서 먼 청년들에게 부동산대책을 맡긴다면 아주 ‘신박한’ 해법이 나올 것이다. 집 없는 사람들이 뭉치고 힘을 키워 바로잡는 길도 있다. 그런데 38.8% 무주택자만으로는 버겁다. 61.2% 자가보유자 가운데 10% 아니 20% 정도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집 없는 사람들과 연대한다면 대세가 될 수 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될 것이다. 집값을 잡는 일, 결국 대통령과 국민 마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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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70603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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