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토요일

마에가와 츠네오(前川恒雄), 히노시립도서관이 목표로 삼은 것 2. 히노시립도서관의 설립, 그 사유방식

 2. 히노시립도서관의 설립, 그 사유방식 

마에가와 츠네오(前川恒雄히노시립도서관 초대관장)

1963년 나는 아리야마의 추천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도서관의 실무는 물론이고 그 제도, 자치단체의 조직, 운영에 대해 배우면서 영국인의 생활과 사유방식도 직접 몸으로 겪으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영국의 도서관서비스의 방향과 내용, 그 세세한 기술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카운터에서 직원과 이용자가 친구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도서관장은 카운터뿐만 아니라 플로어에서 이용자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의 도서관은 이용시키는 도서관이었지만, 영국의 도서관은 이용되는 도서관이었다. 시민이 요구하는 책은 반드시 제공했다. 이를 위해 반환하면 기록을 남기지 않는 대출방식과 우수한 협력조직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생각하고 있는 바를 솔직하게 말해서 주위 사람도 그것을 인정해주는 영국인의 태도. 영국의 거울에 비친 일본 도서관의 근본을 잘 알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귀국할 때 나는 일본에서는 도서관이 자라지 않는다는 일종의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귀국하여 아리야마와 상담했다. 아리야마는 시립도서관, 그 기능과 이상적인 존재방식市立図書館,その機能とあり을 쓰면서(1965), 이 책에서 "시민이 자신의 문제와 욕망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한다는 자주성, 평생을 통해 지식과 교양을 넓히고 높이려는 지속적인 자기교육성, 이것이 근대 사회인의 기본적 요건이며, 이것을 개발해 나가는 것은 근대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며 시립도서관의 중요한 사명이다.”라고 썼다. 나 또한 자신의 생각으로 행동하고 배우는 시민이 다수인 것이 민주제의 기초이기 때문에, 책 읽는 사람이 많도록 하는 도서관은 민주제의 기반이라고 생각했다. 

1965년 아리야마는 당시 후루야 타로(古谷太郞) 시장*의 권유를 받아서 히노시가 도서관을 만들 방침을 분명하게 밝히게 되자 나는 관장 후부로서 히노시에 채용되었다. 

아리야마가 고향인 히노에서 도서관을 만드는 일은 일본의 도서관계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히노의 도서관이 실패하면 당분간 일본의 도서관에 발전의 싹은 없어질 것이었다. 일본 도서관의 체질을 바꾸고 시민의도서관이 되기 위해서는 아리야마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도서관을 히노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그 책임의 중대함에 몸이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아리야마는 나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겼다. 

일본 도서관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에 대한 시민의 상식을 바꿔야 한다. 우선 히노시민에게 도서관서비스 그 자체로 도서관이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민을 책을 읽는 시민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설교나 강요가 아니라 시민의 눈앞에 책을 늘어놓고 손에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기서 보통의 시민이 제일 바라는 대출에 집중하고, 호기심이 강한 장래의 독자가 되는 어린이에 대한 서비스를 중시하며, 히노의 어디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되어야 한다. 생각하고 생각하여 이 방침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곧바로 분관이 몇 개나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 필요한 도서비(당시로서는 파격의 도서비)를 획득해야 하는 상황 아래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동도서관(移動圖書館)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동도서관만으로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설치 조례에는 도서관은 중앙도서관 및 분관으로 구성된다라고 썼고, 또한 관장은 사서가 되어야 하는 조항을 넣었던 것이다.


*후루야 타로(古谷太郞) 시장의 히노시장 임기 1963.11.3-1965.7.8; 

아리야마 다카시(有山崧) 시장의 히노시장 임기 1965.8.27-196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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