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4일 목요일

9월 위기설 논란

9월 위기설과 관련된 우석훈 씨의 글이 흥미롭다. <프레시안>에 쓴 칼럼이다. 9월 위기는 없다? 그러나 위기는 있다는 것이 우 씨의 진단이다. 그의 시각이 그나마 9월 위기설과 관련된 글 가운데서는 냉정하다고 해야 할 듯싶다.

 

9월 위기설의 언론사별 논조를 분석해도 그 이념적 스펙트럼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 같다는 게 요즘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각 언론이 자기 이념에 근거해서 경제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 증폭된다.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97년 외환위기 때의 일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IMF에 긴급 지원을 요청하기 바로 3일 전에도 조선, 중앙, 동아는 "위기는 없다"고 했었다. 어느 네티즌은 그때의 기사 목록을 작성해서 올려놓고 있다. 자 봐라. 그때도 "위기는 없다"고 했었다. 말하자면 양치기 소년들 아니냐는 것이다.  

 

우 씨는 "경제가 이념인지 아닌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실용경제'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현 경제대응은 지독할 정도로 이념적이다"고 지적한다. 경제로 돌아가라는 말은 상식적인 말이지만 현 정부에 대한 지독한 충고이자 비판이 되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97년 9월 2일자 <한겨레신문>의 사설 '경제위기에 정치논리 안된다'에는 이런 지적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한국금융연구원이 경고한 대로 복합불황이 오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나라의 국가 안전도가 정상일 수 없다. 그 또한 추락 그 자체다. 하지만 정책당국이나 여당은 서로 잘못 짚고 있다는 눈흘김만 계속한다." 그런 눈흘김은 지금의 여당이나 정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1997년 9월 10일자 <세계일보>에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는 '금융위기 변화위한 계기돼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최근에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금리,환율,주가 등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일부 금융기관이 자금조달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도 한국 금융기관들의 신용도가 크게 떨어져서 외자조달이 매우 어렵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에서는 금융위기설이 확산되면서 불안심리를 부추겨왔다. 실제로 금융시장 지표를 보면 유동성이 풍부하고 국제수지도 다소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는 등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지금 보면 이런 전문가(이재웅 교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재웅 교수가 검색되었다.)의 논의도 분명 헛다리 짚은 것이 분명하지만,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검색창에 이재웅 교수의 이름을 넣고 검색해보니 이 교수는 매일경제나 세계일보에 지속적으로 칼럼을 집필하고 있다. 2008년 7월 23일자 <매일경제> 칼럼 '위기 타파 개혁밖에 없다'는 이렇게 끝난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이명박 정부는 인플레이션 공포, 국제수지 불안 및 경기침체의 3중고에 직면해 있다. 올해의 경제성장률은 4%도 쉽지 않다. 고유가 시대에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감세와 규제 완화 등 개혁조치가 필요하다. 정부 지출을 줄이고 공기업의 민영화 등 경제개혁도 앞당겨야 한다."

이미 위기가 온 것인지, 위기가 임박한 것인지, 위기는 아닌데 위기의 우려가 있는 것인지. 지금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9월 위기설의 실체에 대해 우석훈은 " 한국 경제가 겉잡을 수 없는 버블공황과 스태그플레이션의 결합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는 분석가를 아직 보지 못했다. 9월이든, 내년이든, 이명박 정부의 경제가 결국 도산하게 될 것이라는 많은 전망들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응못할 것 같다는 게 9월 위기설의 실체일 것 같다."고 말한다.

 

 

-------------------------------------------------

출처: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80902113512

 

 

 

진짜 위기는 9월부터 시작이다
  [우석훈 칼럼]'금융 단독 위기'를 '실물 위기'로 키우는 MB정부
 

2008-09-02 오후 12:00:49

 

1.'9월 위기'는 없다
 
  시중에 9월 위기설이 파다하다. 내 기억으로는 IMF 수개월 전에도 일부 펀드에서 한국을 작전 지역으로 한다는 설이 있었는데,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다. 최소한 지난 15년 동안, 한국에서 이렇게 '몇월'을 직접 찍어서 위기설이 나돌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노무현 정부 초기에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 연장과 관련해서 위기설이 파다하게 돌았던 것을 제외하면 이 정도로 직설적이고, 또 구체적으로 루머들이 돌기 시작했던 적은 없었다.
 
  지금 돌고 있는 이런저런 수치들을 되짚어보면, 한국이라는 경제 규모에서 수조 원으로 인해 '지급불능' 상태에 들어간다는 말 자체는 도저히 구현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수조 원이 큰 돈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인해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이런저런 루머들이, 수년 동안 거시경제에 대한 이런저런 수치를 만진 나에게는 도저히 곧이 들리지는 않는다. 9월 위기? 내게 선택하라면, 나 역시 9월 위기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위기는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 정부에서 거시경제의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문제는 잠깐 접고, 좀 큰 시각에서 상황을 짚어보자.
 
  한국 경제에 정말 '장기적 위기'라고 할 수 있던 순간은 두 번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의 성장률로 보자면, 이 수치가 0 혹은 마이너스에 달했던 것은 80년과 98년, 두 번이다. 한 번은
박정희의 유신체계가 종료하던 시점이고, 또 한 번은 김영삼 정권의 종료와 함께 한나라당이 처음으로 정권을 넘겨주던 시점이었다. 이 두 번의 한국 경제 공황은 모두 일종의 자본 과잉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와서 이유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두 번의 공황 사이에는 18년의 간극이 있다. 대체적으로 한국 경제에는 장기파동설을 빌린다면 15~18년 사이에 도저히 조정되지 않는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번 공황에서는 현재 10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한국 경제에도 대체적으로 15년 정도를 주기로 시스템이 해결할 수 없는 장파동이 생겨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2~3년은 여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좀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전혀 이론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려운 얘기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랫동안 "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라"고 주장해온 한국의 우파들이 경제 운용하던 시절, 두 번의 엄청나게 큰 공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앞선 두 번의 공황은 부동산 투기와 건설경기 지표들이 관련되어 있었다. 논리적 전후관계는 입증하기 어렵지만, 대개 부동산 경기가 클라이막스에 달하던 시점에서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았었다.
 
  2. 외국 금융자본에게 한국은 정말 '쉬운 놀이터'다
  
▲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주가 그래프를 모니터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모습.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국민경제에 대한 적절한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내 입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리 특히 환율에 대한 정부 개입은 반대한다. 부동산 경기부양에 대한 유혹으로 노무현 정부 초중반에 취했던 저금리 정책이 결국 정권은 날려먹고, 경제의 생산적 전환에 실패했다. 조중동의 '좌파 저주'가 정권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금리를 억지로 내리려고 했던 노무현의 '2만 불 정책'이 지난 정권을 결국 무너지게 했던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은? 정권 시작하자마자, 강만수-최경중 라인에게 많은 사람들이 "제발 환율정책 쓰지 말라"고 주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그들이 정말 시장주의자였다면, 환시장에 개입하는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워낙 환시장의 규모가 커져서 일국 정부가 어떻게 뭘 해볼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환시장에 어지간해서는 개입하지 않고, 꼭 어쩔 수 없이 개입할 때에는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국이나 대만 정부와 협의해서 같이 개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환시장에서 어차피 한국 정부 규모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게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과 시장을 둘러싼 주체들이 적응하면서, 역으로 환시장이 결국에는 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환시장에 개입했고, 수십조 원을 날려먹었다. 이 사건이 9월 위기설의 실체다. 외국 환딜러를 비롯한 한국 경제를, 그저 수많은 작전터 중의 하나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가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야박하다고? 내가 외국의 환딜러라고 하더라도, 이런 바보 같은 정부가 있는 동안, 단단히 한몫 잡자고 작전을 걸 것 같다. 저들은 지금 이해할 수 없는 공공부문 매각과 부동산 경기 진작 외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이고, 실력도 없으면서 환시장에 돈을 털어붓는 바보들이라고, 외국의 금융자본이라면 한국 정부를 그렇게 보지 않겠나?
 
  3. 진짜 위기는 9월부터 시작일 것 같다
 
  정부에서는 9월 위기설은 근거 없다고 했다. 물론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한다. 실물경제와 연관없는 위기는 진짜 위기는 아니다. 아직 한국의 실물경제는 대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시계를 약간 뒤로 돌려보면,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도 위기국면이 있었는데, 버블 세븐으로 상징되는 부동산 경제가 국민경제를 위기로 몰고 간 적이 있었다. 이에 놀란 노무현 정부에서 시급히 종부세를 비롯한 종합대책을 내놓은 적이 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위기의 에너지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뒤로 물려놓은 것이었다.
 
  일본이 겪었던 90년대의 '부동산형 위기'는 10년짜리 위기였는데, 많은 실물경제 분석가들은 일본 경제를 원형으로 한 한국 경제가 그와 같거나 혹은 유사한 위기를 결국 겪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버블 공황'은 지난 5년 동안 한국 경제에 상존했던 위기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을 것 같지만, 일본이 겪었던 90년대의 위기가 한국에서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 해보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으로 돈을 풀 것이고, 건설산업의 연착륙이 아니라 건설중심 경제를 돌리기 위해서 돈을 풀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리고 대기업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특혜를 주면서, 중소기업과 지역기업들에게 더욱 가혹한 조건을 만들 것이라고 사람들이 예상한다.
 
  역설적으로, 위기설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명박 정부는 더욱 더 실물부문에서 위기의 에너지를 키우게 될 것이다. 9월 위기설에 대해 "미신 같은 얘기"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금융부문에서의 단독 위기는 무섭지 않지만, 실물부문에서의 진짜 위기와 결합되는 위기, 즉 실물 위기의 에너지를 잔뜩 머금은 위기 국면은 정말로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10년짜리 장기 공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경제에는 일본의 90년대와 같은 건실한 기술력과 튼튼했던 지역기업들, 그리고 특정 상품들의 절대경쟁력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일본의 곳간'이라고 불렸던 대장성을 폐지할 정도의 개혁 능력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공포스럽다.
 
  4. 위기 대응이 바로 실력이다
  
▲ 위기 극복을 위해 강만수 재정부 장관 교체는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이미 정치권 뿐 아니라 경제학자들도 사이에서도 수차례 제기됐다. ⓒ뉴시스

  경제가 이념인지 아닌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실용경제'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현 경제대응은 지독할 정도로 이념적이다. 9월 위기설이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파다하게 퍼져있는 현 시점에서 "좌파 정부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겠다"는 청와대의 지독스런 강공 정책, 그리고 한 달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한나라당의 국회 전략,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97년 내내 YS정부와 여당이 했던 얘기는 "펀더멘탈은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 악몽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얘기하자.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된 경제위기를 맞아 완전히 거덜나고, 한나라당 세력이 다시는 한국에서 집권할 수 없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9월이냐, 2009년이냐 혹은 2010년이냐는 약간의 시기 차이만 있지, 한국 경제가 겉잡을 수 없는 버블공황과 스태그플레이션의 결합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있는 분석가를 아직 보지 못했다. 9월이든, 내년이든, 이명박 정부의 경제가 결국 도산하게 될 것이라는 많은 전망들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응못할 것 같다는 게 9월 위기설의 실체일 것 같다.
 
  위기 대응이 바로 실력이다. 만기도래 채권의 특징 몇 가지를 보여주면서 "위기는 없다"고 항변하는게 위기 극복이 아니라, 실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몇 가지 위험요소들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근거 없어 보이는 위기설을 극복하는 진짜 방법인 것 같다.
 
  위기설을 극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현 위기설의 출발점인 강만수부터 해임하라. 위기설의 절반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경제팀을 위기관리형으로 재편하라. 그리고 현재의 이념 경제 기조를 위기관리 기조로 바꾸기 바란다. 정말로 말로만 외치던 '시장 경제' 혹은 '작은 경제', 그 기조를 외환과 금리에 대해서 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측근 인사를, "경제를 아는 사람"으로 바꾸기 바란다. 그 정도만 해도 9월 위기설은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경제학과 학부 1학년 때 배우는 경제원론 정도로만이라도 재조정하기 바란다. 나는 정치학자가 아니라서, 경제가 망하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망하는 것보다는 국민경제가 건실하고 튼튼해지는 것을 더욱 소망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