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5일 금요일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tyio 님(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이 작성한 글이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두 달간 계속된 촛불 집회를 이 책의 저자 클레어 서키가 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촉발된 논란으로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쪽을 주목하고 싶다. 왜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섰는데도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까? 이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문제다." 이 글이 <출판저널> 2008년 9월호에 실렸다고 한다. <출판저널>은 이 호 이후 휴간을 예정하고 있다. 출판지다운 출판지, 서평지다운 서평지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내는 현실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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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 지음, 송연석 옮김, 갤리온, 2008.

 

촛불 집회에 맞춰 나온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를 읽는 걸 보고 한 보수 언론의 기자가 딴죽을 걸었다. "요즘 시간이 남나 봐요? 그런 책을 한 권 써야 할 사람이 한 물 지나간 얘기를 읽고 있으니…."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귀에 거슬렸지만, 지적이야 아주 정확했다. 이 책에 나오는 온갖 분석의 가장 극적인 예가 바로 이곳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간 계속된 촛불 집회를 이 책의 저자 클레어 서키가 봤다면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촉발된 논란으로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쪽을 주목하고 싶다. 왜 이렇게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섰는데도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까? 이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문제다.

 

인터넷을 박찬 집단 지성

 

촛불 집회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 나 역시 이른바 '촛불 소녀'들이 "미친 소는 먹기 싫다"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모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없으리라고 절망하고 있을 때, 그들은 희망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직접 행동'으로 보여줬다.

 

당시 그들을 움직인 게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서키가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다양한 형식의 1인 블로그,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없었다면 그들이 짧은 시간에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놓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거리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 책이 이른바 '집단 지성'의 본보기로 소개하는 <위키피디아>보다 훨씬 더 극적이다. 잘 알다시피 <위키피디아>는 누리꾼이 공동으로 만드는 백과사전이다. 누구나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수많은 단어의 필자가 될 수 있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질도 좋아지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얼마나 유용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럼, 촛불 집회는 어떤가? 정부가 은폐해온 온갖 정보가 소수의 헌신적인 전문가의 노력을 통해 인터넷 공간에 공개되었고, 이 정보는 순식간에 만인의 상식이 되었다. 뒤늦게 정부가 이른바 '괴담'의 확산을 막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촛불 집회는 분명히 <위키피디아>보다 더 긍정적이다. 지식을 공유하는 데는 가상 공간만으로 충분하지만,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 공간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촛불 집회는 집단 지성이 더 이상 인터넷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서 직접 행동에 나선 고무적인 예이다.

 

낙관을 비웃는 참담한 현실

 

그러나 딱 그뿐이었다. 10대들이 먼저 든 촛불은 곧이어 2~30대, 더 나아가 전 세대로 퍼졌다. 6월 10일에는 전국에서 100만 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기적 같은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10대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한 지 넉 달이 가까워오는 지금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이와 관련해 이 책은 의미심장한 정보를 준다. 유럽에서 가장 민주화가 덜 된 국가 중의 하나인 벨로루시에서 2006년에 있었던 일이다.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센코의 3선이 조작 선거로 확정되자,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물론 독재자는 수백 명의 시민을 체포하고, 제1야당의 후보를 감금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플래시 몹(falsh mob)'을 제안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경찰은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을 연행했다. 몇 개월 지난 후, 이번에는 광장에서 '서로 미소를 보이며 걷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역시 경찰은 웃으며 걷는 시민을 연행했다.

 

이 참담한 현실을 거론하면서도 이 책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경찰이 플래시 몹을 사전에 막을 수 없었던 것, 플래시 몹 사진과 같은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계속 유포될 수 있는 것 등이 바로 이런 낙관의 근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바로 이런 낙관을 비웃는 상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대한민국에서 진행 중이다.

 

지금 경찰이 하는 일 즉, 촛불 집회를 무조건 막고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을 무차별 연행하는 일은 벨로루시에서 있었던 일과 똑같다. '인터넷 강국'의 검찰, 경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이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그토록 낙관하던 인터넷 공간까지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승리는 전쟁터에서 결정된다

 

자, 이제 뭔가 명확한 것 같다. 인터넷 공간에서 독재자의 목을 수차례 친들 여전히 벨로루시의 대통령은 독재자 루카센코다. 인터넷 공간에서 대통령을 아무리 심하게 조롱한다고 한들 여전히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 공간에서 끌리고, 쏠리고, 들끓어 보았자 컴퓨터만 끄면 그만이다.

 

더구나 인터넷 공간을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몇몇 기업에 의존하는 한, 그런 인터넷 공간의 제한적인 자유마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당장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다. 책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 공간의 불매 운동의 성과를 소개하는 데 할애한 서키가 알면 개탄을 하겠지만, 우리는 인터넷을 통한 불매 운동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는 잘못되었다. 새로운 사회는 오지 않았다. 대중도 과거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전에 없던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었지만, 결국 그 무기가 쓸모 있는 곳은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이다. 결국 승리는 바로 그 전쟁터에서 결정된다. 안타깝게도 '촛불'은 이번 여름에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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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 2008년 9월호(제394호), 106~107쪽. 1987년 창간한 <출판저널>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기약 없이 휴간한다. 휴간을 알리는 기자의 메일을 읽고 마음이 아파서 잠시 컴퓨터 모니터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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