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8일 목요일

fair tales

출판사 문학동네가 펴낸 흥미로운 책 한 권. 책 제목을 '동화의 정체'라고 붙였다. 원제는 <FAIR TALES and the ART of SUBVERSION>. '동화와 전복의 예술'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은데 역자와 편집자가 고심 끝에 '동화의 정체'라고 이름붙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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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연합뉴스 고미혜 기자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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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순종하거나 혹은 전복하거나

기사입력 2008-09-18 07:40

'동화의 정체'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안데르센과 디즈니. 각각 19세기와 20세기에 활동했던 이들은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로 꼽힌다. 이들이 창조해낸 '꿈과 희망의 동화의 세계'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화 연구의 권위자인 잭 자이프스는 저서 '동화의 정체'(문학동네 펴냄)에서 안데르센과 디즈니의 인기와 성공의 비결을 그들 작품 속에 담긴 문명 순응적 메시지에서 찾고 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이던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자신의 프롤레타리아 집안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타고난 고귀함이라는 개념에 집착하게 됐다. 열등한 오리 집단에서 고난을 겪으며 결국 동경하던 백조 집단의 일원이 된 '미운 오리 새끼'는 안데르센 자신이기도 하다. 도덕적 분노 대신 도덕적 타협을 선택했고, 집단 투쟁과 단결된 목표 대신 개인의 안락과 성공을 선택했던 안데르센의 작품은 사회 순응적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자이프스의 분석이다.
 
디즈니 역시 사회를 질서정연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바가 컸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착취와 학대를 당하고 젊은 시절 연인으로부터 사랑을 거절 당했던 디즈니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반복해서 구현했으며 '청결 페티시(fetish)'가 반영된 그의 작품에는 세상을 순수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담겼다. 이러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가 바로 어른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그의 명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자이프스는 그러나 동화가 단지 문명화의 도구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를 전복하는 기능도 동시에 수행한다고 말한다. 가령 '행복한 왕자' 등의 동화를 지은 오스카 와일드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역전시킨 동화들 속에서 안데르센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뒤집고, 성서의 리듬과 어법을 차용해 오히려 기독교의 엄격한 규약에 반기를 든다.
 
프랭크 봄도 '오즈의 마법사' 속 유토피아를 통해 문명화 과정의 모순을 꼬집는다. 이 책은 이렇듯 동화 문학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훑으며 그동안 비판적 연구 없이 수용됐던 동화의 '정체'를 밝히려 하고 있다.
 
자이프스는 "동화는 한편으로 아이들을 사회화함으로써 그들을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시민으로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명화 과정에 내포된 정치와 윤리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동화의 전개 과정에서 매력적으로 부각되는 점은 바로 이 이중적 역할"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이 한국의 풍요로운 민간전통이 어떻게 한국의 문명화 과정 속에 통합돼왔는지, 동화가 어떻게 한국 사람들의 필요성과 상관없는 인위적인 문명화의 관념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그러한 관념들을 전복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정아 옮김. 440쪽. 1만8천원. mihye@yna.co.kr

출처: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a%b3%a0%eb%af%b8%ed%98%9c&contents_id=AKR200809172115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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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블로그에는 아마도 번역자인 김정아 씨의 블로그로 보이는 블로그가 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이, 이 책의 제목에서 문제가 되는 단어인 'fair tales'와 '동화'에 대한 설명이 남겨져 있다. 흥미롭다, '동화'라는 단어가 벤야민의 <번역자의 과제>를 전거로 삼아 그 뜻을 들추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단어(번역어)라는 것, 그 '동화'의 정체. 참고로 번역자인 김정아 씨는 바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트 프로젝트>의 역자이기도 하다.
 
 
"동화의 정체" 번역자의 번명글  

 

이 책의 번역자는 ‘fairy tale’을 ‘동화’로 옮겼다. 그런데 출간을 앞두고 편집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fairy tale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를 가지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이것이 '동화'로 번역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하지만, '민담'으로 하자는 분도 있고, '요정담'으로 해야 한다는 분, '요정'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차라리 '정령담'으로 해야 한다, 등 의견이 많이 있다,” 그러니 “출간 후 이 책이 많은 어린이 비평가들의 입에 회자되고, 연구 텍스트로 쓰일 때를 대비해서, 이 책에서는 fairy tale 용어를 무엇으로 해석해 놓았는지, 그 이유 등을 짤막하게라도 코멘트로 달아 놓아야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 『옛이야기의 발견』 1장이 참고 자료로 가장 좋을 듯하다”면서 보내주셨다. 받은 책을 훑어보니, “‘fairytale’을 ‘동화’로 번역한 일본인들의 전철을 오늘날의 문학인들이 무신경하게 밟고 있다”는 비판, 그로 인해 “우리는 아직도 ‘fairy tale’을 동화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탄식도 있었다. ‘동화’라고 번역할 때 그래도 신경 써서 한 건데... 일본의 서양어 번역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중얼중얼 해보기도 하고, ‘fairy tale’을 동화로 번역할 때 생기는 문제보다 ‘동화’로 번역하지 않으려고 할 때 생기는 문제가 더 많지 않나... 의아하기도 했다. 어쨌든 ‘fairy tale’을 ‘동화’로 번역한 이유를 대기는 해야겠다 싶었다.


‘fairy’는 ‘요정’, 'tale'은 이야기, 그래서 ‘童’은 아이 ‘話’는 이야기다. 그러니 ‘요정이 나오는 이야기’를 ‘아이가 읽는 이야기’로 번역하면 안 된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는 것이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fairy tale’을 ‘동화’로 번역한 것일까. 대체로 두  세 가지 원칙을 따랐던 것 같다. 우선, 말뜻 자체보다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주목했다. 영어권 독자가 ‘fairy tale’이라는 말을 듣고 페로, 그림형제, 안데르센, 그리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까지 떠올린다면, 한국어 독자가 비슷한 내용을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동화’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원칙과 무관하지 않은 두 번째 원칙은 접근성이었다. 영어권에서 'fairy tale'이라는 단어가 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 언어라면, 번역어 역시 그런 수위에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연결되는 마지막 원칙은 2차적 의미도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어 사용자 역시 ‘동화의 나라,’ ‘동화 같은 장면’ 등을 무리 없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번역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한 것은 아니다. 굳이 ‘원칙’이라고 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래도 ‘fairy tale’이 ‘동화’라니 너무 ‘의역’이 아닌가 싶을 때, 벤야민의 「번역자의 과제」를 읽었다. 벤야민은 “모든 번역 논의에서 사용되는 전통적인 개념들이 직역과 의역이다,” 그러나 아무리 직역이라 해도 “개별 단어들을 번역할 때 단어가 원본에서 갖고 있는 의미를 온전히 재생할 수 없다”1)라고 말하고 있었다. 벤야민의 글에서 동의할 수 있는 다른 부분들을 발췌하며 번역자의 변명을 맺는다. “번역의 궁극적 본질이 원본과의 유사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번역이란 불가능하리라... 고정된 의미를 담고 있는 모든 단어는 성숙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그 어떤 본질을 찾겠다고 하는 것은 어원과 의미를 혼동하는 것이다... 좀 더 적절히 말해서, 이러한 시도는, 사유의 무능 탓에, 가장 강력하고 풍요로운 역사의 진행 가운데 하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죽은 번역 이론이다... 번역은 두 개의 죽은 언어 간에 성립하는 불모의 등식이 아니다. 따라서 번역은 원본 언어의 성숙 과정과 번역 언어의 산고를 지켜봐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을 짊어진다... 두 개의 언어의 관련성은 오직 역사에 대한 고려에 있다... 원본 언어에서 내용과 형식은 마치 과육과 껍질처럼 일정한 통일을 이루는 반면에, 번역 언어에서는 형식이 마치 주름 많은 황제의 옷처럼 내용을 감싼다... 번역자의 과제는 원본 언어에서의 의도를 번역 언어 속에서 찾아내는 것, 번역을 통해서 원본의 메아리를 울리는 것이다... 번역자가 겨냥하는 것은 언어 전체다."2)

출처: http://blog.jinbo.net/gangdog/?pid=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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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 tales'를 어떻게 번역하는가 하는 문제도 문제지만, 동시에 'subversion'을 어떻게 번역하는가도 문제일 것이다. 체제전복으로 번역하게 되는 단어다.
 
subversion  :
-a systematic attempt to overthrow or undermine a government or political system by persons working from within
-1382, from O.Fr. subversion, from L.L. subversionem (nom. subversio) "an overthrow, ruin, destruction," from pp. stem of subvertere (see subvert). Subversive (adj.) is first recorded 1644; the noun is from 1887.
 
이런 뜻이 번역서의 제목에서는 숨겨졌다.(아니 부제로 '문명화의 도구인가 전복이 상상인가'라는 질문으로 남았다.) 'subversion'의 뜻은 출판사 편집자의 책 소개 글인 듯싶은 다음과 같은 책 소개 글에 잘 드러난다. 이것은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국민국가로 정착된 사회는 가치와 규범, 윤리를 세움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적 변용 과정을 거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국가의 가치척도에 순응하는 '좋은' 국민으로 삼으려 합니다. 어느 문화에서든지 구전 민담과 동화 문학은 널리 퍼져 있고, 이 분야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사회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각각의 사회가 이른바 '예법' 또는 예절 바른 행동을 조장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구전 민담과 동화 문학을 전용하고 통합할 필요가 생깁니다. 민담과 동화가 문명화의 진행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이 책의 이론적 전제가 한국의 동화 연구에서도 적절성을 가지리라 믿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모닝365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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