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2일 목요일

사교육, 도서관, 생협

드디어 교육문제와 결합하여 도서관문제를 고려하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바라던 바요, 꼭 필요한 일이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씩씩하기까지 한 김은남 기자와 시사in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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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교육과 싸우는 독립군”

 

미친 사교육 바람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옆집 엄마’와 ‘엄친아’ 공포에 남은 인생을 저당잡히지 않겠다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원문출처: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46#

시사in [78호] 2009년 03월 09일 (월) 10:35:24 김은남 기자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이유 있는 선전

촛불이 켜졌다. 아로마향이 실내를 휘감는다. 회원 한 사람이 단상으로 나가 시 한 편을 낭송하는 것으로 모임이 시작된다. 오늘은 정호승 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다. 시 낭송을 마치자 이름하여 ‘생활 단상’이 이어진다. 회원이 나와 지난 2주간 자기 삶에 어떤 고난과 갈등이 있었는지를 ‘간증’하는 자리다. 장성아씨는 이날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문제를 놓고 남편과 다툰 얘기를 회원들 앞에 털어놓았다.

종교 집회냐고? 아니다. 2월19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사교세) 사무실에서 있었던 부모 모임(일명 ‘등대지기 모임’) 풍경이다. 지난해 9~11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등대지기 학교’를 함께 수강하며 인연을 맺은 학부모 50여 명은 강좌가 끝난 뒤로도 2주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43쪽 딸린 기사 참조). 이들의 모임이 종교적 엄숙·비장미마저 띠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다. ‘사교육 천국 불신 지옥’을 강요하는 우리 시대의 거대 사이비 종교에 맞서기 위해서는, 회원 원향숙씨 말마따나 이들 스스로 ‘독립군’이 될 수밖에 없다.

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참여한 이들의 동기는 다양했다. ‘다른 집은 사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궁금해하던 사람, ‘세상에 나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사교육 안 시키고도 혹시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시킬 비법이 있을까’ 싶어 이곳을 기웃거린 사람도 있었다.

회원 이환순씨는 큰애를 키울 때 경험이 뼈아파 모임을 찾았다. 본래 사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이씨는 사교육을 거의 시키지 않고 아들을 키웠다. 문제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생겼다. 첫 시험에서 아이 성적이 매우 우수하게 나오니 느닷없이 욕심이 발동하더라고 이씨는 말했다. 모자란 부분만 채워주면 아이가 ‘액설런트’하겠다 싶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족한 수학 과목을 위해 80만원짜리 과외도 붙였다.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아이의 반항이었다. “내가 언제 과외시켜달란 적이 있느냐”라며 하던 공부마저 등한시한 채 엇나가는 아이를 보며 이씨는 속이 탔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한 것이 이때. 그러고 몇 년이 지나서야 이씨는 자신이 아들에게 얼마나 몹쓸짓을 했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SKY는 아니지만 이른바 명문대 반열에 끼는 대학에 합격한 뒤로도 아들은 방황을 계속했다. 휴학→재수→실패→재휴학으로 이어지던 암흑기는 아들이 상담 치료를 받고서야 끝이 났다.

이런 경험을 다른 부모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이씨는 말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죄목을 안다. 그것은 ‘아이를 믿고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은 죄’다. ‘우리 아이는 다 좋은데 이 부분이 2% 부족하다’며 아이를 원망하고, ‘돈만 있으면 우리 아이를 팍팍 밀어줄 수 있을 텐데’라며 주변 환경을 탓하는 엄마들에게 그는 묻는다. 혹시 부족한 것은, 엄마의 자아가 아니냐고.

저마다 사교육에 멍든 가슴을 지닌 이들에게 사교세는 치유 공간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로 ‘엄마표 학습’ 붐을 일으켰던 솔빛 엄마 이남수씨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위로받고 격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엄마표 학습’마저 본질이 실종된 채 엄마가 학원강사 학습법을 따라 하는 ‘엄마표 과외’로 변질된 이즈음, 부모들이 자기 중심을 찾고 자기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함께 모여 내공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힘은 그 속에서 나온다.

현직 교사인 ㅈ씨는 이 모임을 알게 된 뒤 두 가지 중대 결단을 내렸다. 먼저 아들을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공교육 교사로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는 이 말을 되새기며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유년의 행복이다.” 그것은 갈수록 미쳐 돌아가는 교육 현장을 겪으며 내린 결론이기도 했다. “교무회의에서 교장이 ‘서울대 입학률에 신경 쓰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지는 않았다”라는 그는 최근 중학교로 근무처를 옮겼다. 이미 입시 위주로 꽉 짜인 고교 과정에서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ㅈ씨 사례는 특수한 편. 사교세에는 공교육을 고수하는 회원이 더 많다. 사교육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일반 학교에 보낼 것이냐, 대안학교에 보낼 것이냐 하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이들은 말한다. 그보다 관건은 막연한 미래의 두려움에 주눅 들지 않는 아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아는 아이, 타인과 소통할 줄 아는 아이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라는 얘기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은선씨는 사교세를 만난 뒤 막연하던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두 딸 수현(고3)과 수진(고1)을 사교육 없이 키웠다. 대신 책을 많이 읽히고 자기가 직접 배운 창의력 수업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사교육비를 쓰지 않고 모은 돈은 해외 여행비로 썼다.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 창의력 올림피아드에 두 번 참가했다. 지난 2006년, 중3이 되어 올림피아드에 처음 참가했던 큰딸 수현은 귀국길에 말했다. “음, 이젠 영어 좀 해야겠군.” 그러더니 정말 영어 공부를 혼자 열심히 했다. 대회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영어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 5월, 2년 만에 다시 올림피아드를 찾은 수현은 엄마 통역을 능숙하게 해냈다.

 

고교 진학 이후 수학이 갑자기 어려워져 당황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식이었다. 동아리를 새로 만들어가며 학교생활을 제 방식으로 즐기던 아이는 공부가 막히면 선생님을 찾아갔다. “제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들 학원강사만 떠받드는 판에 학교 교사를 찾아온 제자가 기특해서였을까. 선생님은 아이에게 30분 일찍 등교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대일 보충 수업은 일 년 가까이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잘 커가는 딸들이 있는데도 김씨는 방과후 학교에 아이를 맡기는 학부모들과 씨름하기가 너무 힘겨웠다고 한다. 부모들은 왜 영어·수학을 가르치지 않느냐며 성화였다. 그러나 사교세를 만난 뒤 김씨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서로 체험을 공유하며 사교육 바깥에 새로운 길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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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시사in, 사진 백승기 기자



▒ 작은도서관 하나, 열 학원 부럽잖다


오후 3시께가 되니 도서관 미닫이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수업 끝나자마자 가방을 멘 채 달려온 아이, 피아노 학원 가기 전에 잠깐 들러 읽다 만 학습만화를 보고 가려는 아이, 도서관 한편에서 진행되는 미술치료 수업을 들으러 온 아이 모두 드르륵 문을 열어젖힌다. 여기에 동네 아줌마들을 따라온 갓난쟁이까지 섞여 시끌벅적하다. 사서와 주변 눈치를 보아야 하는 공공 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2006년 4월 개관한 초록나라도서관(서울 도봉구)은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작은도서관 중 하나다. 여성 포털 사이트 ‘마이클럽’에서 진행된 교육 관련 토론을 바탕 삼아 <30대 엄마의 사교육 다이어트>를 펴낸 박경혜씨(봄날 편집자)는, 요즘 젊은 엄마들에게 새롭게 주목받는 교육 대안 중 하나가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도서관. 이런 도서관이 동네 곳곳에 생길 때 사교육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여희숙씨(서울 광진구 ‘도서관친구들’ 대표)는 말한다. 방과 후 아이들이 참여할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숙제 도우미가 있어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미국의 뉴욕 공공 도서관은 그녀에게 ‘꿈의 도서관’이다. 덕분에 맞벌이 가정 자녀는 물론 영어가 딸리는 이민자 가정 자녀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보충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에서 요즘 생겨나는 작은도서관들은 아직 양적·질적으로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이들 도서관 상당수는 아래로부터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초록나라도서관은 본시 동네 수다 모임에서 출발했다. 수다를 떨며 친해진 아줌마들이 ‘동화읽기 모임’을 결성하고, 이 모임이 교육 품앗이로 확대됐다. 영어·미술을 전공했던 아줌마는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 생물을 전공했던 아줌마는 인근 도봉산으로 아이들을 끌고 가 생태 수업을 진행하며, 음식 잘 만드는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 먹이는 식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동네 도서관이었다.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아이들의 공부는 절로 되는 것이라고 이들은 믿었다. 그런데 정작 도서관을 만들고 나니 어른이 더 많이 변하더라고 초록나라도서관 재정지기 이순임씨는 말한다. “도서관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들의 관심사는 오직 자기 자녀였다. 그런데 엄마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그간 잃어버리고 살았던 자신의 꿈, 성장을 고민하게 됐다”라는 것이다.

여희숙씨 또한 “아이한테 권장 도서나 한 권 더 읽혀볼까 하는 생각으로 도서관을 찾았던 엄마들이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생각이 바뀌는 것을 보면 경이로울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입문서로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을 읽던 이들이 불과 몇 주가 지나면 “내가 너무 무력하게 살았다”라며 생활 속에서 작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자문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순임씨 표현을 빌리면, 이들이 도달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식만 잘되기를 바라면 세상은 망한다”라는 진리이다.

동네 근처 가까운 도서관은 ‘작은도서관연합회(www.nl.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 교육생협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마”

교육문화생활협동조합 G.E.P(Geo Education People, 가칭)를 준비 중인 홍도미씨는 “우리 모두 주제 파악부터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서울대도 안중에 없다. 너도나도 목표가 하버드 대학이란다. 대한민국 학부모가 모두 자기 자식만은 성공한 1%가 될 수 있는 양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를 저당 잡혀가며 무시무시한 규모로 사교육비를 쓴다.

그렇지만 송인수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공동대표에 따르면, 좋은 대학이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제일 싸구려 유산이다. 인생의 고비에 부딪혔을 때 학벌과 대학 간판을 떠올리며 힘을 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송 대표는 “부모가 없을 때 자녀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생의 가장 힘들고 외로운 순간에 그 결정을 잘하도록 하는 힘”이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말한다.

홍도미씨는 이런 힘을 길러줄 교육생협을 제안한다. 현재 15가구가 참여한 G.E.P는 도시와 농촌, 해외를 연결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 홍씨가 살던 동네에서 3년간 운영해온 중학교 품앗이가 그 모태가 되었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교육 품앗이와 청소년을 상대로 한 품앗이는 다르다. 중학교에만 진학해도 부모들이 품앗이로 교과목을 가르치는 일은 어려워진다. 대신 만성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키워주는 일이 중요해진다. 지난해 캄보디아에 자원봉사를 다녀온 뒤 자신의 미래에 대해 느끼던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낸 듯한 큰딸(고3), 지리산으로 도보 순례를 다녀온 뒤 ‘여전히 투덜대지만 부쩍 큰’ 아들(고1)을 보며 홍씨는 교육생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G.E.P는 계좌당 가입비 50만원을 내면 가족 조합원으로 인정된다(개인 조합원은 20만원). 조합원이 되면 지리산 일대, 강원도 화천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농사에 참여하거나 산촌 유학을 경험할 수 있다. 외국 청소년을 초청한다든가 해외여행·자원봉사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단, 모든 비용은 아이들이 직접 벌어 마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렇게 국내외를 제 힘으로 두루 다니다 보면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이 맞는 아이도, 외국에서 사는 것이 맞는 아이도 나올 수 있다. 굳이 대학입시라는 좁은 틀에 갇혀 미래를 설계할 이유가 없다”라고 홍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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