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7일 화요일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시도 음악도 ....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외국의 관객과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때, 한 영화평론가는 사석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한류'가 가능했는가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한류의 핵심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었다. '한류와 민주주의'라는, 언뜻 쉽게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두 항목이 실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작가 공지영 씨가 <시사IN>에 쓴 글을 읽어보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창작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게 된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가 너무 후진국이어서 우리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좀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것과 싸우느라 청춘과 재능을 다 소비했어요."라는 말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청춘과 재능을 온전히 창조적인 일에 쏟아붓기에는 너무 할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없는 사회에서 상상력은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촛불을 금지하면 생일 잔치의 촛불조차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작가들의 내면화된 검열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인권은 창조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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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50#

 

인권위 축소하면 문화·예술 ‘뒷걸음’

소설가 공지영씨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형제를 부활하려 하고 인권위를 축소하는 등 우리나라가 다시 ‘후지게’ 돼서, 예술가들이 다시 싸워야 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어요.”

 

시사in [78호] 2009년 03월 09일 (월) 10:42:30 공지영 (소설가)

 

   
ⓒ뉴시스
3월5일 열린 ‘국가인권위 독립성 보장 및 지역사무소 폐쇄 저지를 위한 광주대책위원회’ 발대식 모습.

지난 10년간 나랏돈으로 해외여행 할 기회가 많았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도움으로 내 책이나 글이 해외에 소개·번역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건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작가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굳이 번역원의 도움 없이도 해외 에이전시에서 종종 의뢰가 온다. 그들과 마주 앉으면 어김없이 내게 하는 질문이 있다.

“왜 공지영씨같이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의 글을 우리가 이제야 접하게 되었지요?”

나는 별로 놀라지 않고 대답한다.

 “아하, 그건 그동안 우리나라가 너무 후진국이어서 우리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좀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것과 싸우느라 청춘과 재능을 다 소비했어요. 하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가 됐고, 인류 보편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이제 우리 작품이 당신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다른 문화 선진국에서는 고민하지 않던 고문·이데올로기·분단·독재와 싸웠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횡포·기아·환경·생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세계인이 공감할 한국의 작품을 많이 보실 거예요. 그 증거로 벌써 ‘한류’라는 게 시작됐고요.”

나는 자신있게 웃었고 그들은 그제야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평적이고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한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물론 사형제의 실질적 폐지를 비롯해 인권 상황이 눈부시게 향상된 우리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슬며시 일본과 중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이것이 설사 다시 정권이 수평적으로 교체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모든 것이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해도 역사를 뒤로 돌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인간은 역사에서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열린 사형제 폐지 토론회에서 여당의 한 의원이 “이론적으로는 대통령과 지체장애자의 인권이 평등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은 이후 “엠네스티의 권고는 한국 물정을 모르는 한 단체의 권고일 뿐이다”라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충격은 거의 비현실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당분간 ‘한류’는 제자리에서 맴돌 겁니다”

나는 정말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가 그럴 능력이 없으면 내 동료나 후배가 그런 예술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이 자동차 1000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인 줄 소설책 한 권 읽지 않고 일류 대학에 들어간 위정자들은 알까? 창작자는 권력자에게 빌붙기로 처음부터 작정하지 않은 한, 남의 고통에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좌니 우니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인권위가 나서서 고통받는 가여운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을 돌보아주었을 때,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진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또 다른 해외 에이전시와 마주 앉게 될 때 그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다. “공지영씨의 요즘 작품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찌 대답하게 될까?

“네, 요즘 우리나라가 다시 후지게 돼서 우리는 다시 그것과 싸우고 있어서 그래요. 세계 140개국에서 사실상 폐기된 사형제를 부활한다고 하고, 준(準) 국제기구인 인권위를 축소한다고 하니, 예술가들이 다시 그걸 말해야 하니까요.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시도 음악도 도도하던 ‘한류’는 당분간 제자리에서 맴돌 겁니다.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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