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0일 화요일

`신빈곤층` 문제의 어떤 해결방식


*그림: 케테 콜비츠, 빈곤(Not), 석판(Lithograph printed on yellow chine collE), 1893-1894

 

 

  언어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틀입니다. 언어가 비틀어지면 세상이 비틀어져 보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모든 위정자들은 말에 대해 세심하게 관심을 쏟았습니다. 언어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말을 단순하게 바꾸거나 없앤다고 해서 그 말이 나오게 된 현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언어이론'의 발달 과정에서 아주 상식적인 것입니다. 몇 가지 상식적인 언어이론, 예를 들어 소쉬르의 기표/기의 논의나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그림이론 등도 이런 문제의식 위에 있는 것입니다. 언어그림이론은 언어가 실재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반면  언어게임이론은 그 '실재가 부재하다고 여깁니다. 언어는 언중의 게임이라 여기는 것이죠. 물론 이론상으로는 언어게임이론이 성립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습니까? 아무것도 현실적인 것이 없이 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까?

 

2009년 한국의 정치는 마치 언어게임이론을 전개하는 장처럼 보입니다. 아래 신문 기사를 보면서 도대체 이것은 뭔가, 어디까지 이런 식으로 가능할까? 언어게임이론에 따르면 말이란 언중이 참여하는 일종의 게임일 뿐이라 하였습니다만, 사실 말이 그럴 수 있습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신빈곤층이라는 말을 없앤다고 (신)빈곤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일 끝에 인용해 놓은 글에서 보듯,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선대인 부소장은  '신빈곤층'이라는 말 자체도 '말장난'이라고 말합니다. 선대인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할 빈곤층이지만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그나마 받던 복지 지원마저 끊어질 상황에 처한 빈곤층만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빈곤층을 발굴해 지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여론조작용 표현일 뿐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말하는 '신빈곤층'이라는 레토릭은 마치 원래 빈곤층은 충분한 사회복지 혜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빈곤층'이라는 말을 쓰지 말도록 하고 '위기가정'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는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레토릭의 레토릭이라고 해야 할까요?

 

말이 비틀어지면 세상이 비틀어져 보입니다! '더블 스피크'를 아무리 떠들어댄다고 해서 나찌의 학살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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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82763

 

(노컷뉴스 09.03.05 변상욱의 기자수첩) 국민은 '신 빈곤층, MB정부는 '신 위기층'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금지어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26일쯤 관련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청와대 관계자가 밝히기로 "신 빈곤층이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내부 검토에 따라 쓰지 않도록 조치했다. 국민을 계층화 해버리는 의미가 있어 일시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는 내용.

◈ 빈곤층은 '신新' 것인가? 쉰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새롭게 발생하는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경제 살리기를 공약했었다. 결국 신빈곤층이란 서민·중산층이 이번에 들이닥친 경제위기로 인해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생겨났다는 의미로 '신빈곤층'이라고 규정한 것.

노무현 정부가 미처 대응하고 돌보지 못한 새롭게 생겨나는 빈곤층을 새 정부가 예리하게 파악해 적절한 대응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이명박 대통령이 목도리 할머니, 봉고차 할머니 만나고 어려운 가정들 돌아볼 때 마다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나도 신빈곤층은 계속 늘어만 가고 경제성장율이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마당에 계속 늘어날 것이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신빈곤층'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생겨난 빈곤층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 황급히 지워버리고 싶은 게 속내인 걸로 짐작된다.(물론 설명으로는 국민을 계층화하는 부적절한 용어라 계층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라 일시적인 잠깐 고생하다 다시 중산층으로 상승할 계층이라는 이미지로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노무현 정부 책임으로 귀책되는 빈곤층이냐, 이명박 정부 책임으로 봐야 할 빈곤층이냐. 그런 뉘앙스의 차이인데 어차피 신빈곤층이 줄어들거나 신빈곤층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도움 안 되는 머리 굴림.

◈ 국민은 '신빈곤층'으로, MB 정부는 '신 위기층'으로?

아직 확실히 결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일단 대체해 사용하는 것이 '위기가정'인 모양이다. 왜냐하면 보건복지가족부가 '위기가구'라는 말을 계속해 사용해 왔기 때문에 여기서 빌려 온 듯하다.

전재희 보건복지장관이 지난달 말 인터뷰 때 이야기한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신빈곤층이란 말의 의미가 좀 모호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신빈곤층이란 법령적인 것도 학문적 개념도 아니다. 행정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소득을 상실해 새로운 위기에 빠진 가정인 셈이다. 복지부는 '위기가구'라는 개념으로 씁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 처리상으로는 소득상실, 폐업, 실직, 주소득자 사망, 이혼, 화재나 교통사고 등으로 생계유지가 갑자기 어려워져 '긴급 복지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위기가구'이다.

청와대는 복지부의 '위기가구'를 그대로 베껴 쓰자니 자존심 상하고 개념의 차이도 있고 해서 '위기가정'으로 일단 바꿔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기가정'이란 용어는 너무 포괄적이다.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경제 위기가정' 이렇게 써야 신빈곤층이라는 본래의 표현에 더 가깝다. 그러나 흔히 줄여서 '위기가정' 이렇게 쓴다.

뭔가 경제를 못살려 어려워진 가정, 정부 책임 이런 느낌을 덜 주고 그 가정이 문제가 있고 어려워서 힘을 못 쓴다는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은근히 국민에게 떠미는 느낌.

학문적, 행정적 용어를 정리하자면 사회의 계층은 최상위 부유층 - 부유층- 중산층 - 서민층 - 신빈곤층 - 차상위 계층 - 기초수급 대상자 로 이어진다. 위기가정이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신빈곤층의 특징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행정 용어로 '비수급 빈곤층'. 두 가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복지부의 통계로 경제위기 가구는 8만5천5백 가구이다.

올 경제성장율이 마이너스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념 정리를 어찌 해나가든 신빈곤층은 늘어만 갈텐데….

국민은 '신빈곤층'으로, 해결 못해 쩔쩔매는 MB 정부는 '신 위기층'으로 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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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09.03.05 칼럼) 더블 스피크

 

'인종청소’라는 용어는 20세기 초중반 독일의 인종 우생학자들에 의해 일반화됐다. 인종 가운데 열등한 표본은 전선의 총알받이로 보내고 우수한 표본은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알프레드 플뢰츠는 1905년 ‘인종청소를 위한 사회’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예나대학 인류학 교수였던 H.F.K 귄터는 1920년 히틀러를 감명시킨 ‘독일국민의 인종청소’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보호해야 할 북유럽 인종은 크고 힘이 세서 전쟁이 일어나면 최전선에 배치돼 오히려 많은 타격을 받게 된다며 전쟁을 반대했다. 가관인 것은 그가 이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청소는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종청소는 더럽고 쓸모없는 인종을 걸러내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 된다. 인종청소를 이렇게 규정하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윤리적 고민은 필요 없어진다. 하지만 인종청소의 본질은 대량학살이다. 이같이 본질을 감추거나 호도하는 언어 조작을 ‘더블 스피크’라고 한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명명한 이 말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해고를 ‘구조조정’, 고용보장 장치의 약화를 ‘노동시장 유연성’, 빚 대신 ‘신용’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더블 스피크는 특히 정치권력이 국민들을 호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 미 국무부는 세계인권현황보고서에서 ‘살해’를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로 표현했다. 1차 걸프전 당시 미국 국방부는 ‘폭격’을 ‘목표물에 대한 서비스’, 표적 가운데 인간은 ‘부드러운 목표물’, 건물은 ‘딱딱한 목표물’이라고 했다. 또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비밀 포로수용소에서 자행된 6가지 고문기술이 ABC방송에 의해 폭로되자 ‘정보획득을 위한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둘러댔고 미국 정부는 ‘공격적 심문’이라고 했다.(‘선샤인 논술사전’, 강준만)

정부와 지자체의 문서나 자료에서 ‘신빈곤층’이란 말이 사라지고 ‘위기 가정’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청와대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다. 현 정부 들어 빈곤층이 늘어났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빈곤층’을 ‘위기 가정’으로 바꾼다고 해서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층 양산이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호도해서는 제대로 짚는 정책도,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없다.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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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31821405&code=940705

 

경향신문(09. 03. 04) 이명박 정부 금기어 ‘신빈곤층’

 

3일 일선 지자체가 내놓은 각종 자료에 눈에 띄는 용어의 변화가 생겼다.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신 등장한 용어는 ‘위기가정’이다. 전북도는 이날 ‘신빈곤층’으로 써 오던 관련 자료 용어를 모두 ‘위기가정’으로 바꿔 사용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신빈곤층’이란 용어는 공식용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주노동당은 2일 민생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봉고차 할머니’ ‘목도리 할머니’ 등 빈곤층 찾기 쇼를 할 때 현장에서 직접 사용까지 했던 용어를 며칠 만에 금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신빈곤층이라는 용어가 현 정권이 만들어낸 빈곤층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제 집권 1년이 지난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노당은 “용어 사용에 얽매이지 말고 그 용어 자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정책에나 전념하라”고 꼬집었다.

지자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북도는 공식적으론 “정부의 ‘신빈곤층’ 용어 자제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료 한쪽 면에 ‘청와대 신빈곤층 용어 사용 금지령’이란 제하의 인터넷판 뉴스를 복사해 첨부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지만 정황으로 볼 때 앞으로 모든 공문서에 신빈곤층 대신 위기가정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이명박 대통령도 신빈곤층 복지사각 제도를 없애라는 말을 사용했다”면서 “정부 스스로 이 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대 김모 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문서작업시 이전 정권에서 주로 사용했던 단어들은 모두 금지어라는 점에 놀랐다”면서 “예컨대 ‘소외계층’ ‘혁신’ ‘참여’ 등의 단어를 보고서에 쓰면 혼쭐난다”고 말했다.(박용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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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unsoundsociety.tistory.com/

 

 

이 대통령은 2월 5일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인 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 현장점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제일 중요한 게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복지법 체계는 고치고, 도와줘야 할 신빈곤층을 적극 찾으라”는 주문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 이 대통령은 집에 헌 봉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된 빈곤층 모녀와 직접 전화 상담하는 ‘쇼’까지 연출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듣고 '신빈곤층'을 한 번 찾아나서 보았다.


사례1:
2월 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동.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를 따라 가니 컨테이너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컨테이너 옆에는 녹슨 자전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 들어서니 양모씨(60)가 전기장판 위에서 한 눈에도 낡아빠진 홑이불 두 겹을 덮고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단칸방에 발을 디디자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전해져 왔다. 싱크대 위에는 냄비와 그릇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이가 맞지 앉는 싱크대 아래 수납문에는 음식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역시 이가 맞지 않는 수납장들이 방 한 켠에 놓여 있었으나, 내용물은 거의 없어 보였다. 창문쪽에는 야전용 군복 외투가 걸려 있었다. 양씨의 유일한 겨울 외출복이라고 했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인 전기 장판뿐이었다.

                     <사진: 양씨가 사는 컨테이너 박스 전경> 

                   

양씨는 매월 단 한 푼의 수입도 없다.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에 가깝다. 그나마 몇 달 전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후원 받은 60만원으로 왼쪽 눈을 수술해 볼 수는 있게 됐지만, 다른 쪽 눈은 백내장을 너무 오래 알아 수술해봐야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해 수술을 하지도 못했다. 양씨를 부양해줄 수 있는 가족도 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양씨는 현재 기초생활보호대상자도 차상위계층도, 기초노령연금대상자도 아닌 완벽한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도 한 때는 꽤 떵떵거리고 살던 지역 유지였다. 상당한 부농이었던 그는 한때 고양시체육회장과 새마을지도자, 어용소방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함께 살아오던 처가 도박에 빠지면서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5년 전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양씨의 전 재산을 차압했다. 처와 헤어진 뒤 빚쟁이들을 피해 집을 나와 전국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그가 다시 고양시로 돌아온 것은 2년 전. 당시 백내장으로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해 더 이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막막해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후 그는 일을 할 수 없어 친구들이 간간히 건네주는 용돈이나 약값 외에는 아무런 수입이 없었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과거 빚쟁이들에게 차압 당해 찾을 길이 없는 양씨 명의의 승용차 두 대에 대한 세금 및 과태료 체납액이 500여 만원을 넘지만 도저히 갚을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 체납액을 갚을 수 없어 자신 명의의 승용차 두 대를 말소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백내장뿐만 아니라 당뇨병과 고혈압까지 앓고 있어 병원과 약국 신세를 질 일이 많지만, 같은 이유로 건강보험 공제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구청공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현장 실사를 나오기도 했지만, 정해진 규정 때문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복지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그는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간간이 전달되는 쌀과 라면 등 생필품과 간간이 들리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건설업을 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도 이제 더 이상 생활하기 어렵게 됐다. 원래 컨테이너가 자리잡은 땅은 이종사촌 소유였으나, 이종사촌이 지난 9월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긴 뒤에는 계속 땅주인으로부터 그곳에서 나가달라는 독촉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이대로 잠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양씨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나오면서 이번 겨울은 그에게 아마 가장 추운 겨울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례2: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는 양씨뿐만 아니다. 일산동구 사리현동의 한 빌라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55). 그는 83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인이 된 뒤로는 일을 할 수 없어 근로소득은 전무하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여서 구청에서 30여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서 탈락되면서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2000년 무렵에 친지들의 도움으로 마련한 9평짜리 집의 시세가 오르면서 수급권자 자격에서 탈락된 것. 그나마 인근 교회에서 매월 1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받고 있고 장애인수당 7만원도 받고 있어 그나마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셈이다. 한 장애인지원단체로부터는 가끔씩 교통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김씨는 하반신을 쓸 수가 없어 변을 본 뒤에도 혼자서 처리를 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변이 묻은 채로 그대로 있거나, 변이 묻은 옷을 오랫동안 세탁하지 못해 집안에는 늘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김씨 아파트를 방문한 날에는 인근 교회의 봉사자들이 나와 집안 청소를 한 뒤인데도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큰 마음을 먹고 월 이용료 4만원을 내고 가까운 동사무소를 통해 생활도우미를 부르고 있지만, 부담이 작지 않다. 김씨는 아파트 시세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으니 팔 수도 없다생활도우미 비용만이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례3:
권모 할머니(81)의 경우는 지난해 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된 경우다. 차상위 계층으로 일정 금액까지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았던 권씨는 내년부터 이 같은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진2: 권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전경>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지만, 권할머니는 무너져가는 토담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실직 상태인 아들을 비롯해 자녀들의 생활이 모두 어려워 식비 정도만 도움을 받을 뿐 다른 생활비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기초노령연금으로 매월 8만원, 기초 경증장애수당으로 2만원을 받고, 구청에서 쌀을 지원받는 것 외에 한 복지기관의 주선으로 연결된 후원자로부터 분기별로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그나마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권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이 몸에 7군데나 박혀 거동이 불편해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노인성 만성질환까지 앓고 있어 자주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이번에 차상위 계층에서 탈락되면서 그 동안 받아오던 의료보호 2종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직계 가족과 그 배우자의 수입도 차상위 계층 판정 기준으로 작용하는데, 얼마 전 둘째 사위가 승진하면서 연봉이 오른 때문이다. 사위의 승진으로 권할머니 생활이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규정 때문에 그는 그나마 누리던 혜택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해서 제대로 사회복지 혜택을 입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황모 할머니(66)의 경우를 살펴보자. 황할머니는 기초노령연금을 포함해 한 달에 39만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단칸방 월세 10만원과 전기료와 수도료, 전화요금 등 각종 공과금 8만~10만원을 매월 내고 나면 남는 돈은 매월 20만원 남짓. 하지만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황씨는 병원비와 약값, 교통비, 식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늘 돈은 부족하다. 겨울이지만 연탄도 마음 놓고 못 때고, 이불도 변변치 않아 냉기를 가까스로 면할 정도로만 지낸다. 세탁기는 아예 살 엄두도 못내 엄동설한에도 찬물 빨래를 해야 한다.

 

위에서 본 것처럼 국내 복지제도는 아직 빈약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나 기초노령연금 등 복지제도가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거나 확충된 것이 이 정도 수준이다. 현행 복지제도는 어떻게 보면 지원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엄격한 기준과 융통성 없는 행정 체계 때문에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이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위에서 본 것처럼 많은 복지지원 대상자들이 사회복지기관이나 종교기관, 자선단체, 복지관련단체 등 민간부문의 후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민간 부문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간 부문 복지지원사업을 주도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사정 또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재 고양시 관내에는 시로부터 운영예산을 지원받는 사회복지기관이 5군데 있지만, 실제 관내 복지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5개 사회복지관 가운데 일산종합사회복지관이 담당하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나 독거노인, 장애인 등은 모두 180여 케이스에 이른다. 그나마 올해 9월부터 일산동구 고봉동과 풍산동을 담당하는 거점센터를 따로 열어 40 케이스 정도가 늘어난 것이 이 정도다.

 

180여 케이스를 담당하는 인력은 거점센터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5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복지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추가로 찾아내 지원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9월 일산복지관 거점센터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해당 동사무소 등으로부터 잠재적 지원대상자 명단으로 건네 받은 케이스는 모두 25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거점센터 직원 2명이 40여 케이스를 상담해 지원하고 나니 지원 대상자를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거점센터 직원 김모씨는“200여건의 케이스들은 아예 상담도 진행해보지 못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도 못하고 있다”며 “고양시 전체로 볼 때도 5개 사회복지기관이 커버하고 있지 못한 빈곤층 대상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거점센터 직원이 내년 초부터 한 명 증원될 예정이지만, 이번에는 당초 고양시가 편성했던 거점센터 지원예산 1억 원이 7,000만 원으로 줄었다. 시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3,000만원 삭감된 것이다. 2,000만원 전후 수준인 담당 직원 세 명의 연봉을 제외하면 달랑 1,000만원이 남을 뿐이다. 결국 거점센터 입장에서는 민간의 독지가나 관련 자선단체의 후원을 요청해 필요한 복지지원 대상자와 연결해주는 일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래 <도표>에서 OECD 주요국의 저소득층과 장애인, 노인, 환자 등 취약 및 소외 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을 나타내는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추이를 살펴보자.


 미국과 일본은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이 15%를 넘고 있으며 OECD국가 전체의 평균 사회지출 비중도 20%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에 급증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여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을 한 단계 올렸다고는 하지만 2005년 현재 6.9%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OECD국 평균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에 관한 한 OECD국가로 불리기에 민망한 수준인 것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극심한 장기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사회지출 비중을 전체 예산의 11.2%에서 18.6%로 빠르게 늘려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비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한 복지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장기불황이라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일본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지출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려왔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한국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현 정부는 말과는 달리 올해 보건복지 예산 편성에 극히 소극적이었다. 경기불황에 따른 실업자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급증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래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투자적 개념의 복지 인프라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다. 이처럼 복지 인프라에 관한 개념 자체가 없다 보니 복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예산배정이나 투자도 있을 리가 없다. 복지 인프라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유는 중장기 국가발전 목표를 747과 같은 양정 성장에만 집착할 뿐 삶의 질적 향상과 같은 질적 개념의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위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복지 수요가 몇 배로 늘어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 정부는 실질적으로는 올해 물가 인상분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 예산을 증액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현실에서는 복지 혜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4대강 강바닥을 파헤치고 관련한 부수 사업에 4년간 18조원을 투입하는 등 예산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서민을 위한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정부의 그 같은 건설경기 부양책은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기에 실패했던 정책으로 결국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목적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이라도 하면 위선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그런데 당장 숨 넘어가는 진짜 저소득층과 취약 계층의 지원 예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삭감하면서, 서민을 위한다며 대규모 건설토목 사업을 벌이니 정부가 말하는 서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부동산 거품기에 국민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잔뜩 부추겨 고분양가로 폭리를 취하고 이제는 ‘삽질 경제학’에 심취한 ‘건설족 정부’에 엉겨붙어 심각한 도덕적 해이 양상을 보이는 건설업체들이 서민이란 말인가?

 

위에서 본 것처럼 현장을 둘러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할 빈곤층이지만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그나마 받던 복지 지원마저 끊어질 상황에 처한 빈곤층만 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신빈곤층'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새로운 빈곤층을 발굴해 지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여론조작용 표현일 뿐이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말하는 '신빈곤층'이라는 레토릭은 마치 원래 빈곤층은 충분한 사회복지 혜택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정말 빈곤층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신빈곤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 해야 마땅하다. '신빈곤층' 챙기기 전에 원래 있는 빈곤층들에 대한 복지지원이나 깎지 말고 제대로 챙기라는 말씀이다. 하긴 사회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고, 주변에서 그럴듯한 신조어 하나 갖고 오면 생색내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게 몸에 밴 이명박에게 그런 걸 바라는 게 사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쇼라고 해도 정도가 좀 지나치다. 더구나 건설토목사업에 퍼붓는 돈 때문에 복지예산이 줄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쇼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갑자기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인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라’며 어린애와 통화하는 쇼는 보기가 정말 역겹다. 그런 대중용 이벤트로 열악한 사회복지 현실을 외면하는 자신의 태도를 포장하니 역겹다는 것이다. 아무리 쇼라는 것을 알고봐도 속내가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이면 가증스럽다 못해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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