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1일 화요일

‘책의 전당’ 건립을 제안하며

<제안서>
‘책의 전당’ 건립을 제안하며
1.
우리나라는 ‘책’의 문화와 역사에 우뚝한 지위와 발자취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直指), 훈민정음의 창제, 세계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와 같은 기록물 등, 우리의 문화적 역량은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출판 ․ 도서관 ․ 기록 ․ 독서 등 책과 관련된 문화는 점차 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위기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인류 문화와 문명의 획기적인 발전의 근저에는 항상 책이 있습니다. 책의 문화는 시대 발전의 기본 동력이며, 책은 지식정보 시대의 문화-교육-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한 매개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현임 정부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핵심에도 책을 쓰고 읽고 만드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책의 생태계가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상징물이 없습니다. 책의 문화와 관련된, 우리의 문화적 ․ 문명적 역량을 발산할 현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룩해놓은 책 문화의 성취를 세계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드러낼 터전이 간절합니다. 우리에게는 책 문화와 관련된 국가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새로운 문화 창조로 나아갈 기반이 절실합니다.

이에 우리 출판 ․ 도서관 ․ 기록 ․ 독서와 관련된 인사들은 ‘책의 전당’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문화에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을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2.
‘책의 전당’은 책과 관련된 도서관 ․ 박물관 ․ 기록관을 융합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책의 전당’이 첫째 우리 지식사회의 중요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담아내어 시민에게 봉사하는 도서관, 둘째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직지, 실록, 의궤 등, 우리 책의 역사를 국내외 시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 셋째 세계적인 수준의 기록정보를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록관, 넷째 책의 세계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전당, 다섯째 전 세계 지식인과 학자, 문화인, 예술가들이 방문하고 교류하면서 서로 새로운 자극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책 문화의 창조 현장이기를 바랍니다.

‘책의 전당’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의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그 중심성을 통해, 다른 지적, 문화적 작업과 더욱 생동감 있게 결합하며, 전국적으로는 문화 확산의 기지가 되고, 세계적으로는 새로운 ‘한류(韓流)’ 콘텐츠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의 전당’은 우리나라와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핵심을 이어받으면서도 앞으로 창조해야 할 문화의 고갱이를 보여주는 건축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건축물 안에 우리 문화의 자존심, 국민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내용물을 채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정부와 전 국민에게 ‘책의 전당’을 건립하자는 제안을 드리면서, 우리는 그 대상 부지를 현재 종로구 송현동 옛 미 대사관 숙소부지-현재 한진 그룹이 호텔 건립을 추진하고자 하는 부지-를 활용하자고 말씀 드립니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에서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벨트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부지는 해방 이후 미국 대사관 소속 직원 숙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독립국가의 위신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도 이 부지의 활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송현동 부지에 ‘책의 전당’을 건립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세계문명의 새로운 교류망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지의 소유주인 한진 그룹이 호텔 건립을 위해 추진해온 노력과 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 법(관광진흥법, 학교보건법)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호텔 건립의 추진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나아가 이 지역의 역사적 ․ 문화적 특성상 호텔 건립에 대해 일정한 시민적 저항도 있습니다.

정부는 대기업이 이 부지에 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자 합니다. 관련 법을 개정하여 제약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호텔 건립보다는 역사문화벨트에 어울리는 사업으로 물꼬를 틀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가 송현동 부지에 ‘책의 전당’을 건립하는 것이 지니고 있는 의의를 확인하고, 이것이 가능하도록 기본적인 원칙을 천명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국민들께도 이 부지의 역사성과 ‘책의 전당’이 지닌 미래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여주실 것을 요망합니다. 또한 이 부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한진 그룹에게도 대국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적 노블리즈 오블리제를 실천해 주실 것을 희망합니다.

4.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에 ‘책의 전당’을 건립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책의 전당’ 건립은 책의 생태계가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며, 우리의 문화적 ․ 문명적 역량을 발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한껏 고무되고 문화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분기점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과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정부와 국회, 기업과 시민사회, 언론과 학계, 출판 ․ 도서관 ․ 기록 ․ 독서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분들의 깊은 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2월 11일

책나라연대,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한국기록협회, 한국도서관협회, 한국출판인회의

*
김민웅(책나라연대 대표, 성공회대 교수)
김언호(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한길사 대표)
도정일(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장,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
박은주(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대통령소속 문화융성위원회 문화산업 전문위원, 김영사 대표)
윤희윤(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한상완(한국기록협회 회장)

진행:


안찬수(책읽는사회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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