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9일 일요일

漢字의 근원을 캐다.'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인터뷰> 한자의 근원을 캐는 염정삼 박사
"破字式 교육 이제 그만".."한자교육 권위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최근 서울대출판부에서는 B5형 양장 792쪽에 이르는 묵직한 학술단행본을 내놓았다. 부피만큼이나 제목 또한 독자에게 위압감을 준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부수자(部首字) 역해(譯解)'가 그것이다. '설문해자'라는 책을 해설한 '설문해자주'라는 책에 수록된 한자 중 부수글자를 옮기고 풀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염정삼(43). 남자 이름인 듯하지만 기혼 여성이다. 학부와 석ㆍ박사 학위를 모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에서 했다. 이번 단행본은 "2003년 박사학위 논문을 손질한 것"이라고 염 박사는 말한다.

   중국학에서 한자의 음과 뜻, 성조 등을 연구하는 학문을 소학(小學)이라 했으며 이런 명칭은 이미 2천년 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학(大學)에 견준 말이지만, 명칭처럼 '작은(하찮은) 학문'으로 치부되곤 해서, 요즘 국내 중국학계에서도 소학, 특히 고문자를 대상으로 한 소학 연구자는 드물기만 하다.

   "문자학을 제대로 하려면 중국 같은 데로 유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족 문제 등으로 실행하기 어려웠습니다. 석사논문은 1930년대 중국 현대문학 논쟁사를 주제로 택했습니다. 문자학 공부는 1990년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진에는 전문적인 문자학 전공자가 없었다. 그가 박사과정을 밟을 때 문자학 강의는 해방 1세대를 대표하는 중국문학 연구자인 차주환(車柱環) 교수가 맡아 훈고학, 교감학 등을 가르쳤다. 지도교수는 허성도 교수가 맡았다.

   왜 문자학을, 그것도 난해한 설문해자를 주제로 잡았을까? 
"어릴 적부터 한자가 그냥 좋았습니다. 제가 (대학 전공으로) 중문과를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석사과정을 끝내고 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자를 공부하려면, 싫건 좋건 설문해자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자학에서 설문해자는 거대한 봉우리입니다. 갑골문이니 금문(金文.청동기에 쓴 글자)이 발견됨으로써 종래 설문해자가 누린 독보적인 지위가 흔들리기는 했지만, 갑골문과 금문 또한 설문해자에서 출발합니다. 외람스런 말이지만 저는 중국학의 본질은 문자학에 있다고 보며, 그 본령은 설문해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문해자는 후한시대 중반기인 서기 100년 무렵 허신(許愼)이란 문자학자이자 경학연구자가 완성한 불후의 한자 사전. 당시 통용된 한자 9천353자를 표제어 항목으로 세우고 그 뜻과 자형을 분석했다. 표제어는 요즘 인쇄체인 해서(楷書)나 그에 가까운 예서(隸書)가 아니라, 허신 당시에도 소멸 일보 직전에 처한 소전체(小篆體)라는 이미지에 가까운 서체를 수록했다.

   주자성리학과 양명학을 뛰어넘어 경전 본래의 의미를 되찾자는 슬로건을 표방한 고증학 열풍이 청대 중기 이후에 몰아치면서 설문해자에 대한 각종 주석서가 쏟아지게 된다. 이 중에서도 단옥재(段玉裁.1735-1815)가 무려 30년 공력을 쏟아부어 완성한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는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단옥재 시대 또 다른 고증학의 거봉 왕념손(王念孫.1744-1832)은 단옥재의 설문해자주에 쓴 서문에서 '아마도 (설문해자가 나온 지) 1천700년 이래 이런 저작은 없을 것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단옥재 설문해자주가 왜 중요하게 거론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인데, 파고들수록 왕념손의 평가가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문해자, 더욱 정확히는 단옥재라는 청대 고증학자가 분석한 설문해자주를 대상으로 박사학위 청구논문 범위를 좁힌 그는 설문해자에 수록된 표제어 9천353자(표제어 외에도 1천여 자를 헤아리는 다른 글자도 있다) 중에서도 부수자를 단옥재가 해설한 대목을 주목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각종 옥편은 214개 부수로 모든 한자를 분류합니다만, 설문해자의 부수자는 540개입니다. 전체 표제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분의 1 정도가 됩니다. 부수자의 발견은 허신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문자학의 혁명입니다. 허신은 1만여 개에 가까운 사물과 개념을 각각 그림으로 표시한 한자들에서 절제된 형상의 최소 단위를 추출하고 그 단위 아래에다가 만여 개 문자가 모이도록 540개 부분집합을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집합이 우리가 말하는 부수자라는 것입니다."

염 박사는 허신이 부수자를 발명하고 그 조합의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이후 중국 문자는 음소의 길로 들어설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허신과 그의 설문해자로 인해 한자는 한글처럼 표음문자가 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표의문자를 근본적으로는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의 박사논문도 그렇고 그에 토대를 둔 이번 단행본 또한 설문해자와 설문해자주의 부수자를 염 박사 시각으로 재평가한 것은 아니다. "이런 작업은 추후로 미루었다"는 그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설문해자 540개 부수자에 대한 허신의 본문을 포함해 그 각각에 대한 단옥재의 분석을 모조리 현대어로 번역하는 일"이라고 간주했다.

   "요즘도 우리 학계에서 그런 인식과 풍토가 남아있지만, 번역이나 역주를 하찮게 여깁니다. 제가 설문해자주 역주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겠다고 지도교수(허성도)께 말씀드렸더니, '역주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쳐 주지 않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제 구상이 받아들여져 학위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허신의 설문해자와 단옥재의 설문해자주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출판부측과 염 박사 모두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염 박사는 "한자학습 붐에 편승해 난립하는 한자(부수) 해설서에 학술적 권위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시중의 각종 한자 학습서는 흥미 때문인지 몰라도 어처구니 없는 파자(破字.글자 쪼개기)로써 한자의 뜻을 설명하곤 하는데, 그런 교재로써 교육받은 어린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서울대출판부 권영자 과장 또한 "신뢰성 있는 한자학습서로써 염 박사 책을 활용하고 홍보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 박사는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써 한문으로 제작된 글 중 가장 난해한 문장으로 평가되는 문선(文選)이란 고대 중국의 시문(詩文) 앤솔로지를 완역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제가 역주할 작품이 좌사(左思)의 삼도부(三都賦)입니다.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렸다는 바로 그 작품인데, 왜 그랬을까 궁금했습니다. 한데 궁금증은 고사하고 너무 어려워 죽겠다"고 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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