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님이 지난 7일 1차 기자회견에 이어 25일에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용수님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20년 전의 한 사람이 자꾸 생각났다. 당시 내가 몸담고 있던 인권운동사랑방은 부랑인 수용시설의 끔찍한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그리고 그 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곳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부랑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사무실에서 기거하다 흩어졌던 그들은 거리에서 있다가 불쑥 찾아와 “돈 만원만” 하며 손을 내밀기 일쑤였다. 활동비로 겨우 35만원을 받던 시절, 주머니를 뒤져 돈 만원을 주고는 했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곧바로 돈을 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돈을 받는 즉시 그들은 소주를 사서 앉은 자리에서 병나발을 불었다. 나는 돈을 주기 전에 식당으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부랑인을 내치려는 식당 주인에게 사정사정해 밥을 먹인 후 술만 먹지 말고 밥 좀 사드시라고 말하며 보내고는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찾아오지 않았고, 전화도 없었다. 그래서 수소문하면 행방을 모르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오랜 세월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는데 그들은 감금된 시설에서 풀려난 자유를 거리에서 누리다가 사라져갔다. 그 시설의 책임자는 겨우 징역 4년을 받고 살다가 가석방으로 나왔다.
사건이 보도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피해 부랑인 중 한명이었던 이모씨를 전철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했지만, 그는 오랜 노숙생활로 얼굴이며 옷가지는 지저분했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이씨는 불쑥 말했다. “우리 사건으로 당신과 사랑방은 유명해졌죠. 우리는 뭐가 남았습니까? 우리는 이용만 당한 거지요.”
너무 당황스러웠다. 사건을 접하고, 사전조사와 준비, 그리고 언론에 공개하고 법적인 처벌과 손해배상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 모든 시간과 노력이 깡그리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멍해 있는데 그는 다음 역에서 하차했다.
그 뒤 나의 인권운동을 돌아봤다. 수용시설에 갇힌 사람들의 사연을 알리고,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법과 제도를 고치기 위해 밤샘을 하면서 뛰어다녔던 많은 시간들을 점검했다. 인권단체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억울한 이들이다. 잘나가고 지위가 있고,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인권단체들을 찾아오지 않는다. 인권침해를 자신이 직접 당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인권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의 인권침해를 알리고 조사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조사활동과 기자회견과 집회와 시위와 각종 캠페인과 정치권의 로비까지 도맡아야 하는 활동가들은 만성피로를 달고 산다. 일은 넘치는데 일손은 늘 부족하고 활동비는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져 있거나 그보다 아래다.
그렇지만 우리의 활동은 문제가 있었다. 피해자를 옹호하는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해결사와 같은 위치를 차지했다. 피해 당사자들을 사건 해결의 주체로 세우지 못했다. 활동가는 그들이 역량을 강화하고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도록 안내하고 조력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 피해 당사자보다 앞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성했다. 그런 뒤에도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다가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는 활동가와 단체의 역할을 이전과는 다르게 설정했다. 피해자들이 중심이 되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민사회는 무척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활동이 축소되고, 회원들과 함께하는 회의며 캠페인 등은 취소되거나 축소되거나 무척 낯선 비대면 온라인 활동으로 전환되고 있고, 교육이나 강의도 사라져가고 있으니 재정을 충원하는 것도 버거워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문을 닫는 단체들이 속출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시민단체와 그 활동가들에게 높은 도덕성과 투명한 회계를 요구하지만 지원하지는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시민사회단체는 긴급 지원에서 모두 제외되어 있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피해자와 갈등도 있을 수 있고, 회계 처리를 잘못한 경우도 있다. 나아가 회계부정을 저지른 경우도 있어 책임자가 감옥에 간 적도 여러 번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어야만 그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진전한다. 그렇지 않은 사회는 발전의 길이 막히거나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견제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사회의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코로나19로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의기억연대와 나눔의집 사태는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차별의 현장에서 인권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긴급 상황에서는 피해자들을 돌보는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인권단체와 인권활동가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길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성적인 논의를 가졌으면 좋겠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씨를 무조건 옹호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눔의집은 더더욱 옹호할 수 없다. 그러나 온갖 억측과 가짜뉴스로 그 단체와 활동가들이 추진해온 운동마저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운동들은 정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를 위해 조금은 차분하게 대책을 세웠으면 한다. 아울러 어려움에 처한 인권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260300135&code=990100#csidx60564b9a08b768c9728b20d77fcc1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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