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일 금요일

실업부조를 논의할 때다 / 강신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자본주의는 지중해 연안의 좁은 유럽 지역에서 700년 이상 지배해온 봉건제를 대체한 다음 단숨에 “80일간의 세계일주를 통해 세계 경제 전체를 지배하게 된 뛰어난 경제체제다.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계속 다른 대안들을 밀어내면서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체제의 치명적인 약점은 사람이 만들어낸 제도이면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가 살아남은 까닭은 이 약점을 방어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약점은 바로 고용 문제다. 이 체제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력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지만 이 체제에 대한 최초의 고발자 시스몽디가 말했듯이 노동력은 판매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기때문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 것은 당사자인 노동자들이었다. 19세기 초 노동자들은 일을 해서 먹고살거나 그러지 않으면 싸우다가 죽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시가전을 벌였고 19세기와 20세기의 사회 의제는 혁명이 지배하였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이 약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서둘러 만들어진 것이 고용 안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자본주의의 이 약점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고 우리는 고용 문제를 다시 돌아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우리 사회가 고용 문제를 혹독하게 각성하게 된 계기는 1997년 경제위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박에 떠밀려 노동법이 개정되고 대량해고가 자유화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불가피해진 자본 쪽의 대량해고에 맞서 노동 쪽을 위한 방패막이로 실업부조제도를 도입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고 한다. 정부의 미진한 의지와 노동계의 무관심도 한몫을 더한 때문이었다.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일상처럼 이어지게 되는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실업부조는 해고된 노동자를 1차로 보호하는 고용보험이 끝난 다음 이어지는 두번째 보호장치다. 이 제도는 노동능력을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부조와는 달리 노동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다. 이들이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은 이들로부터 생산수단을 빼앗은 자본주의라는 제도 때문이고 따라서 이들의 생계를 사회가 책임진다는 것이 이 제도의 개념이다. 혁명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난 다음에야 얻게 된 인식이었다.
 
대개 30개월 내외(우리의 경우 8개월)의 실업보험이 끝난 다음 여전히 실업 상태일 경우 실업보험보다 약 10% 줄어든 금액으로 취업이 될 때까지 무기한(평생) 지급되는 고용의 마지막 안전장치다. 재원은 정부가 책임을 진다. 이 제도는 실업을 사회의 구조적 원인으로 간주하는 유럽 자본주의에서는 대부분 도입되어 있는 반면 실업을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미국 자본주의에는 도입되어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해고자가 거지가 되곤 하지만, 유럽에서는 해고가 되어도 거지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고공농성이나 옥쇄파업과 같은 극단적 행동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에 정부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꾸리고 대규모 재정투자를 집행하겠다고 한다. 세계 경제 전반의 위축으로 자본의 도산과 노동의 해고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차제에 정부가 꼭 떠올렸으면 한다. 똑같은 사태를 맞았던 아이엠에프 위기 시절 정부가 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일, 실업부조제도가 우리 사회의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경제를 구성하는 요소는 자본과 노동력 두 가지이고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자본만이 아니라 노동도 해당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또한 고용 문제는 단발의 일회적인 처방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항구적인 제도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간곡히 권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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