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커뮤니케이션 전망...위기는 공공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 약화시켜
거대한 위기를 거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변화 중 하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과제를 안겨주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접하던 광고와 PR, 다양한 캠페인이 사실상 일시적으로 중단된 ‘설득의 공황’ 상태를 처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득의 공황 상태라는 현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기에 대한 공포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달하는 공공 예방수칙을 일종의 캠페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익숙지 않은 통제에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공공의 원칙에 순응하는 대중의 행태를 경험했다. 위기 상황에서 공공 커뮤니케이션은 정당하고 공익적이지만 장기간에 걸친 의식 개선을 통한 자율적 규제보다 단기간의 행동 개선을 도출하기 위한 강압적 속성을 갖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개인 간 소통에서 의식 전환 및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행동 변화만 놓고 보더라도 향후 해결해 나가야 할 커뮤니케이션 과제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불과 몇 달 전까지 중시해 왔던 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그 핵심적 역할을 PR이 수행해야 한다.
‘착한 소비’ 문화 자생적으로 나타날 수도
잠시 위기의 역사를 통해 광고와 PR이라는 활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7년 IMF 위기에서 강조된 것은 경제 회복과 소비 회복이었다. 당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소비는 편의성을 대변하는 가치 있는 행위로 존중받았다. 그 이전인 80년대와 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광고 산업은 IMF를 기점으로 점차 역할 변화를 모색하게 됐다. 당시 요구됐던 것이 좀 더 전략적이며 간접적인 설득, 바로 PR이었다. 일종의 소비문화와 제품 트렌드를 조성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간접적 설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은 어떤 시장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비상식의 상식화가 가능했던 때다.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 조성과 그 과정에서 공중의 자기 합리화가 가능하도록 조력해 주는 방식으로 PR의 힘이 발휘됐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거침없이 달려오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PR은 공정성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성에 관한 의식이 증대됐고 자신들이 전달하는 정보가 과연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정보인가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능동적 소비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좀 더 민주적 커뮤니케이션, 즉 숙고의 과정이 전제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겨났다. 하지만 SNS 등 디지털 미디어의 급속한 확산과 모바일 매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오히려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전술을 더욱 교묘히 활용할 수 있는 틈새를 제공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10년 이상을 과거보다 더 지독할 정도의 소비사회에 필요한 공포감 조성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특정한 행동을 요구받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다양한 소비가 넘쳐난다는 것은 그만큼 공공 문제가 비례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늘 새로운 공공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이 만들어졌고 기업들도 이러한 패턴에 익숙해지면서 문제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새로운 캠페인 아이디어만 모색했다. 그사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분야가 다변화되면서 기존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의 왜곡 현상이 더욱 가중됐다.
지금 우리 주변엔 천박할 정도로 ‘핫(hot)’하고 외형적 모습만 흉내 낸 ‘힙(hip)’한 가짜 감성(fake emotion)이 넘쳐나고 있다. 소비가 멈추자 필연적으로 모든 것에 제동이 걸렸다. 거침없이 달려오던 사회가 잠시 거리 두기를 한다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그에 따라 정부도 소비 촉진을 위한 다양한 행동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착한 소비다. 기존 고정관념에선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새로운 방식의 공중 주도 소비문화 실천운동이다. 이는 싸게 살 수 있어도 조금 더 돈을 주고 사거나 생산자를 배려해 제품을 선택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자발적인 공공성 회복이 하나의 소비 형태로 나타나듯 사회적 거리 두기와 절제된 소비가 이어진다면 또 다른 문화가 자생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전개된다. 이 때문에 착한 소비라는 자생적 소비문화마저도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대국민 캠페인의 실천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소비를 촉진하고 꺼져가는 경제 불씨를 되살려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결국 사람들은 코로나19 이후 다시 한번 인식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공공성이 결여된 수많은 소비문화, 개인주의가 우선시되는 사회문화가 될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고 깊게 대중의식의 지각변동은 이미 진행된 상태다.
위기는 늘 한 사회가 겪고 있던 공공 문제에 관한 문제의식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약화시킨다. 수많은 사회적 불평등, 자국 우선주의 등에 관한 문제 제기, 호혜와 상호 배려의 원칙보다 자국 중심의 보호주의가 오히려 가장 가치 있는 선택으로 평가받는 데 불과 100일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는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캠페인 액셀러레이터 시대 도래할 듯
예를 들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수많은 배송업체에 주문이 폭증했지만 그로 인한 쓰레기 문제에 관한 문제 제기는 사실상 사라졌다. 더 소소한 예로 카페에서 다회용컵 사용도 일회용컵으로 자연스럽게 환원됐다. 한시적 조치라고는 하지만 꽤 오랜 시간과 신뢰가 회복돼야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웃 간에 서로 인사를 나누자던 지역사회 캠페인도 복원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줄 서서 어렵게 구입한 그 많은 일회용 마스크가 쓰레기로 배출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기존에 공공의식을 갖고 저항했던 수많은 캠페인을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본격적인 캠페인 액셀러레이터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현재 정부 및 공공기관을 제외한 기업들의 마케팅과 PR, 광고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에 시작하자는 그 막연한 시점을 정해 놓고 모두 현재의 전략에 기초해 이 상황이 종료되면 광고, PR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접근보다 어떻게 각 조직들이 복원시켜 나가야 할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지 선별해 새로운 캠페인이 아닌 필요한 캠페인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기존의 관행이나 매체 집행, 콘텐츠 생산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창조적인 프로세스와 디자인 싱킹 방법론을 적극 수용해 캠페인을 기획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수용자 중심 캠페인 기획, 콘텐츠의 가치에 예산을 투입해 과정을 중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실천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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