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말다듬기 위원회

[말글살이] 말다듬기 위원회


부서원끼리 뭉치고 동창들이 엮이며 여러 관계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여 베푸는 송년 모임은 어느 자리나 뜻깊다. 지난주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열린 송년회도 그랬다. 국어문화운동가에서 교수와 대중문화평론가, 번역가는 물론 사전 전문가와 기자, 아나운서에 이르기까지 말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모인 자리였다. 서른 즈음에서 육십대 중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소박한 밥상과 함께한 ‘말다듬기 위원회’ 송년 모임은 말 그대로 ‘말의 성찬’이었다. 올해 다듬은 말이 성찬의 재료이기도 했다.
문자결제사기(스미싱), 사이트금융사기(파밍), 전자금융사기(피싱), 대중투자(크라우드펀딩)는 경제지 편집인이 제 뜻 살펴준 덕분에 나왔다. 야외활동지도자(아웃도어인스트럭터), 문신사(타투이스트), 손톱미용사(네일아티스트) 등은 체육교육학 교수의 도움이 컸고 매력상품(잇 아이템), 대정전(블랙아웃), 위안음식(솔푸드), 옥상정원(그린루프), 착한해커(화이트해커)는 번역가의 감각이 빚어낸 열매이다. 책낭독자(북텔러), 책길잡이(북마스터), 듣는책(오디오북), 책돌려보기(북크로싱) 따위는 소설가 덕에 건져냈고 자작가수(싱어송라이터), 계절할인, 계절마감(시즌오프) 등속은 대중문화평론가의 제안이 한몫한 말이다.
국어학 교수와 국어문화운동가는 물론 신문 기자들의 역할도 컸다. 새싹기업(스타트업), 육아설계사(베이비플래너), 깜짝출연(자)(카메오), 거대자료(빅데이터)와 에너지자급주택(제로에너지하우스), 초단열주택(패시브하우스) 등은 지면에 바로 반영되었다. 사전 전문가는 뼈째회(세고시), 검정먹거리(블랙푸드), 식별무늬(워터마크)에 말맛을 담아냈다. 수행매니저(로드매니저), 촬영기록자(스크립터)는 현장에 빠삭한 아나운서들이 힘을 보태 나온 말이다. 하나 더(원플러스원), 맑은탕(지리), 곁들이찬(쓰키다시), 맛가루(후리카케),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 근로빈곤층(워킹푸어), 뜨는곳(핫플레이스)을 포함해 ‘말다듬기 위원회’에서 올해 다듬은 표현은 36개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164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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