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모든 노동가치의 근원은 가사노동

실비아 페데리치(71·호프스트라대학 명예교수)

‘재생산 노동’ 폄하로 여성 억압
착취한 임금, 국가가 지급해야
가사노동 공유화로 ‘대항권력’

혁명의 영점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2만원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이탈리아 태생의 미국의 여성운동가요 이론가, 정치철학자인 실비아 페데리치(71·사진·호프스트라대학 명예교수)는 ‘재생산 노동’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세계 곳곳에서 움트고 있거나 서성대고 웅성대는 반자본주의 운동, 그 변혁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이론적, 실천적 투쟁은 바로 재생산 노동의 올바른 분석을 통해서만 제대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시작점을 그는 물이 어는 점, 제로 지점을 뜻하는 ‘영점’이란 말로 표현한다.
<혁명의 영점>(Revolution at Point Zero)은 2004년 작 <캘리번과 마녀>(2011, 갈무리)로 한국 독자에게도 이름을 알린 그가 40여년 연구·이론 작업을 집대성하여 2012년에 펴낸 책이다.
<캘리번과 마녀>에서 페데리치는 16~18세기 유럽의 자본주의 형성기, 자본의 시초(원시) 축적기에 300여년간 벌어진 마녀사냥의 역사를 톺으면서, 마녀사냥이 비단 중세 기독교 체제의 광기라기보다는 당시 움트던 새 체제, 곧 자본주의가 성별 분업을 발달시키고 여성을 임금노동에서 배제함으로써 여성을 노동자 생산 기계로 전락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안토니오 네그리 등의 노동자주의(오페라이스모) 운동의 세례를 받은 페데리치는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 여성단체인 ‘가사노동 임금 캠페인’ 설립을 이끌며 1970년대 가사노동 임금 지급 운동을 전개했다. 1990~2000년대엔 미국과 나이지리아의 대학에 번갈아 몸담으며 반세계화운동에 깊이 참여했다.
<혁명의 영점>의 핵심 주제인 재생산 노동이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 곧 가사노동·돌봄노동을 말한다. 상품을 만드는 노동이 생산 노동이라면, 그 노동력은 가사·돌봄 노동을 통해 재생산된다. 육아·가사 도우미, 노인 돌봄 서비스처럼 일부 재생산 노동은 임금노동으로 편입되고 산업으로 재구조화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 가정에서 이뤄지는 가사노동은 부불(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노동으로, 그리하여 “가장 소외된 노동”으로 존재한다. 페데리치는 재생산 노동은 이 노동으로써 생산되는 노동력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으므로 생산 노동과 똑같이 임금을 받아야 하며, 그에 대한 임금 지급 운동이 지금도 여전히 적실하게 요구된다고 말한다.
페데리치는 이 임금이 국가에서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21세기 세계화된 자본 체제에서도 자본이 요구하는 생산 노동은 산업화되지 않은 재생산 노동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고, 그 부불 노동만큼의 이익(이윤)을 국가 혹은 자본이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자본>을 발표한 이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취해온 정치적 입장의 한계를 재생산 노동에 대한 “무지”에서 찾는다. 마르크스는 상품 생산 형태가 아닌 노동은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여성들의 부불 재생산 노동이 갖는 의미를 간과함으로써 자신의 자본주의 분석을 제한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방적노동자의 방적 생산에 기초를 두었던 그의 분석은 재생산 노동의 문제를 가볍게 지나치고 말았다. 마르크스의 이 유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재생산 노동의 가치 절하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저평가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페데리치는 지적한다.
페데리치는 가사노동 임금 지급 투쟁으로 말미암은 재생산 노동의 ‘발견’ 덕분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특수한 형태의 노동(가족노동, 섹슈얼리티, 번식)에 의존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사적 영역을 생산관계의 영역이자 반자본주의 투쟁의 영역으로 재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재생산 노동의 ‘혁명적’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0년대 이후 세계 반자본 운동의 화두로 떠오른 ‘공유재’(공통체·Commonwealth) 개념을 끌어온다. 노동·생산 조직 혹은 공동체 안에 국유재산도 사유재산도 아닌 공통의 공간·자산, 곧 공유재가 존재한다면서, 공유재를 지키기 위한 정치투쟁을 제안한다. 20~21세기 아프리카, 중남미, 미국 등지의 여성과 남성들의 투쟁 과정에서 발현된 공동부엌, 자급농토(공유지) 지키기, 도시텃밭 운동의 성공 사례를 들면서 공동 주택·주방·텃밭 같은 자급수단을 통한 지역·마을 단위의 가사·돌봄노동의 공동화, 집단화가 가능하며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재생산의 물질적 수단을 공유재로 만듦으로써 가정과 공동체 내에 자본에 맞서는 대항권력을 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본디 12장으로 구성됐던 이 책은 한국판에서 감정노동을 다룬 13장이 추가됐는데, 그 장에서 페데리치는 여성 사회학자 알리 혹실드의 견해를 지지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한때 세례를 받았던 네그리의 <제국>, <다중>, <공통체>에 담긴 ‘감정노동’과 ‘비물질노동’, ‘다중’ 개념을 그 근간에서부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 흥미롭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갈무리 제공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175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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