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깨진 꿈, 자유롭고 평등한 인터넷 세상


 
 
인터넷은 초기 개척자들이 꿈꾸었던 것과 같은 ‘개방된 자유 공간’이 아니다. 오늘날 디지털 경제 영토는 구글·아마존·애플·페이스북 등 미국 거대 기업들이 독점한 텃밭이 됐고 이런 구조는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인터넷이 미국에 경제적·전략적 이익을 몰아주는 상황에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국가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_편집자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네트워크 효과로 시장 선점 뒤 ‘슈퍼갑’ 부상… 유럽은 속수무책

오늘날 인터넷은 전지전능한 집행자이자 사람 속마음까지 꿰뚫는 감시자가 됐다. 특히 미국의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은 디지털 생태계에서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독재자로 군림한다. 유럽에는 이렇다 할 인터넷 강자가 없다. 미국의 인터넷 독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3의 디지털 혁명’ 과정에서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나올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마르크 슈발리에 Marc Cheval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20여년 전 웹브라우저의 선구자 격에 해당하는 ‘넷스케이프’가 널리 전파되면서 인터넷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당시 신경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장밋빛 신화가 난무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앞으로 인터넷이 발전하면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중간상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중간상의 종말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덩치 큰 슈퍼 중간상들의 출현만 낳고 말았다. 가령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 등 ‘정보중개자’(Infomediary)로 불리는 기업들이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의미에서 진정한 ‘창조적 파괴’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유럽의 방송통신 전문 시장조사 업체인 IDATE(방송통신연구소)가 지적한 것처럼, 창조적 파괴 과정은 기존 업무 방식이나 유통 방식, 주도권 양상, 가치 배분 구조 등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그만큼 국가적 차원을 넘어 유럽, 더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인터넷은 세계경제 지형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다. 그나마 이것도 전초전에 불과할 뿐이다. 프랑스 재무감찰총국(IGF, 각 정부 부처를 감찰·감독하기 위한 재정경제부 산하 기구로, 경제·재무·행정적 문제와 관련해 감독·감찰·자문·평가 임무를 맡고 있다 -편집자)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통신사업자,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 설비업체, 온라인 사이트 등)로 구성된 가장 핵심적인 디지털 분야는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요즘에는 더 많은 분야들이 디지털화 과정을 겪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비율은 프랑스 전체 생산의 약 4분의 3에 이를 정도다.

디지털화 현상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ICT를 도입해 생산력을 향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많은 기업들이 주문·결제·생산 관리 등을 전산화해 효율성 높이기에 나서고 있다. 가치사슬(기업이 원재료·노동력·자본 등의 생산요소를 결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과정이나 체계 -편집자)의 대부분을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함으로써 완전한 디지털화를 꾀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광고·관광·문화 산업 등은 오늘날 차례차례 디지털화 과정을 거치며 업무 방식이나 경제모델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조각난 환상, 중개상 없는 인터넷 직거래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오늘날 온라인 광고가 등장하면서 기존 전통적인 광고매체에 비해 10분의 1의 비용만 들이고도 타깃층을 더 정확하게 공략하거나 광고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에 따라 기존의 전통적인 광고매체(여기에 종이 언론이 속한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나 해당 매체에서 활동하는 많은 광고업체들은 오로지 글로벌 기업 구글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점차 가치가 이동(Value Migration)하는 현상에 직면해 있다. 사실상 구글은 인터넷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스폰서 링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광고매체와 광고회사의 역할을 동시에 겸하고 있다.

최초의 웹브라우저 개발자 마크 앤드리센이 표현한 대로 디지털이 각 분야를 ‘집어삼키는’ 원리는 언제나 대동소이하다. 인터넷의 야만족들은 “가치사슬의 가장 핵심적인 부위에 끼어들어 사용자와 직접적으로 접촉한다. 그리고 자사 서비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동 축적되는 정보를 토대로 시장점유율을 점차 확대해나가며, 종국에는 자신들에게로 이윤이 옮겨오도록 만든다.”

2013년 정부에 제출한 ‘디지털 부문 조세제도에 관한 보고서’에서 프랑스 참사원(프랑스 정부의 행정 및 입법 자문기관을 겸하는 최고 행정법원 -편집자) 소속 피에르 콜랭과 IGF 소속 니콜라 콜랭은 이처럼 지적했다.

가령 아마존은 인터넷 사용자의 행동 양태를 면밀하게 분석한 자료를 기반으로 추천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펼치며, 문화상품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반면 골목서점에서 대형 체인서점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오프라인 상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는 신세가 됐다. 가장 최근에는 버진메가스토어(Virgin Megastore)가 희생됐다. 프랑스에 26개 점포를 운영 중이던 이 체인점은 2013년 6월 공식 파산을 선언했다. 그 전에도 미국 내 500개 매장을 두고 2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던 보더스(Border’s) 서점이 2011년 폐업했다.

애플은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가능케 해주는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 ‘아이튠즈’와 ‘아이팟’이 벌이는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에 힘입어 온라인 음악 시장을 석권했다(미국에서만 시장의 3분의 2를 점유했다). 심지어 자사가 원하는 음원이나 음반 가격을 음반회사에 강제할 수 있을 정도로 애플의 위세는 하늘로 치솟았다. 아이폰·아이팟의 성공과 함께 이 미국 기업은 이제 동영상, 언론매체 등 다른 콘텐츠 제작 산업으로까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인터넷은 초기 개척자들이 예견했던 완전경쟁 시장이라는 이상을 구현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대한 독점 구조만 낳고 말았다. 소수의 공룡기업들이 다양한 시장에 걸쳐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간접적 형태의 경쟁만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지난 11월 홍콩에서 ‘커넥팅 위드 더 월드’(세계와 연결하기)라는 주제로 열린 대학생 간담회에서 ‘인터넷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왼쪽).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화를 거는 상황을 시연한 휴대전화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로고를 보여주는 태블릿PC의 화면을 합성한 일러스트레이션. 미국이 우방국 정부의 최고 지도자들의 통화를 도·감청해온 사실이 최근 들통났다(오른쪽). REUTERS
경쟁도 규제도 없는 독점 체제 구축

디지털 세계가 이토록 경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네트워크 효과’라고 불리는 디지털 세계 고유의 법칙 때문이다. 당장은 수익성이 없더라도 일정 수 이상의 이용자가 자사 상품을 이용하게 만든 기업은 해당 시장에서 지배적이거나 거의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요컨대 ‘The winner takes all’, 즉 ‘승자가 판돈을 모두 싹쓸이해가는 것’이다.

구글은 온라인 검색에서,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애플은 온라인 음악 부문에서 거둔 것이 바로 이런 네트워크 효과다. 물론 아마존도 예외는 아니다. 아마존은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1995~2003년 거의 30억달러(약 3조2천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본격적으로 수익을 올리기 전까지 자기자본에서 상당 금액을 빼쓰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인터넷 시장이 대부분 미국 공룡기업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은 비단 실리콘밸리 출신의 이 기업들이 특유의 혁신 정신을 발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금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가령 1998년 이후 미국의 벤처캐피털은 3개월에 1개꼴로 훗날 1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될 디지털 기업을 지원했다.

하지만 디지털 공룡의 독점 행태에 대해 공정거래 관련 기구들은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행태를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각국 정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는 온라인 사업의 경쟁 구조나 사업모델이 기존 시장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정보중개자들은 무료 서비스를 기반으로 지금의 지배적 위치에 올라섰다. 가령 구글의 검색엔진이나 애플의 아이튠즈 프로그램,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모두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이 공룡기업들은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직접 수익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를테면 구글과 페이스북은 자사가 수집한 방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광고 매출을 올린다. 애플은 아이튠즈의 폐쇄적 성격을 이용해 독점적인 콘텐츠 판매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 기업들이 내놓는 상품이나 사업모델은 소프트웨어와 IT 장비가 복잡하게 결합돼 있는데다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규제 기구는 적시에 규제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번번이 진땀만 빼며 뒷북을 치기 일쑤다. 가령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경쟁자 넷스케이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지 12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MS가 자사의 검색 프로그램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탑재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있었다.

오늘날 디지털 혁명의 성격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규제의 공백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필두로 한 모바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혁명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 벤처캐피털 KPCB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세계 웹 트래픽의 15%는 이제 모바일을 통해 이뤄진다. 또한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스마트폰이 데스크톱컴퓨터를 제치고 가장 주된 인터넷 접속 수단으로 부상했다.

사실상 모바일 인터넷 접속은 단말기와 운영체제(OS)가 긴밀히 결합된 생태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현재는 두 업체의 운영체제가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먼저 구글이 개발한 운영체제(안드로이드)다. 구글은 이 운영체제를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애플이 개발한 운영체제(iOS 시리즈)도 있다. 이 운영체제는 오로지 아이폰에만 탑재된다.

현재 두 운영체제는 아주 영리하게 개방성과 폐쇄성을 적절히 혼용해가며 번영을 누리고 있다. 가령 자사 운영체제 플랫폼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스마트폰의 기능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은 대개 외부 독립업체들이다. 이는 구글과 애플이 나름대로 자사 밖에서 이뤄진 혁신을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 기업들은 타 기업의 혁신이 자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가령 지난 4월 애플이 자사 앱스토어에서 앱그래티스(AppGratis)를 퇴출시키기로 한 결정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벤처기업이 개발한 이 애플리케이션은 유료 서비스를 무료로 시범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며 애플의 앱스토어와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결국 모바일 인터넷으로의 전환과 함께 인터넷이 극소수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전유될 위험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인터넷이 아직 디지털화의 영향이 적은 분야로 점차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은 대인 간 통신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사물 간 통신을 통해 사물들을 ‘인공지능화’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가령 인터넷 TV, 인공지능 컴퓨터, 무인 자동차, 건강 수치 측정을 위한 의류 부착 센서(Quantified Self) 등은 한창 개발 중인 사물인터넷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물인터넷의 발달은 앞으로 에너지·자동차·의료·도시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디지털화된 분야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 공룡들은 이 새로운 시장에서도 자기 몫의 파이를 챙기려 안달할 것이다.
  
▲ 인터넷 검색엔진의 양대 강자인 구글과 야후의 로고를 랜케이블로 연결한 모습. 이들은 검색 과정에서 수집한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빅브러더’가 됐다. REUTERS
미국의 독재에 굴복하는 유럽

가령 구글이 ‘구글카’(인터넷 연결 자동차) 개발에 얼마나 목매는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구글의 목표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설비업체, 즉 흔해빠진 저부가가치 상품을 제공하는 납품업체로 전락시키고 자신들이 미래 자동차 주문 시스템의 주역으로 우뚝 서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 디지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챔피언 기업이 없는 유럽으로서는 유럽 경제 전체가 미국의 이익에 종속될 위험이 크다.

물론 혹자는 끝없는 혁신으로 쉴 새 없이 판이 바뀌는 디지털 경제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고 말한다. 가령 알타비스타·넷스케이프·마이스페이스 등 수많은 과거의 강자들이 오늘날 새로운 신예들에게 떠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인터넷 강자들이 대부분 인터넷 거품이 형성되기 이전에 탄생한,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희대의’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이 기업들은 현재 연구·개발, 마케팅, 벤처기업 인수, 클라우드를 비롯한 인프라 구축에 무차별적으로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니 이미 1·2차 디지털 혁명의 기회를 놓친 유럽은 모든 수단(공정거래 관련 규제, 조세제도, 산업정책 등)을 동원해 앞으로 일어날 제3차 디지털 혁명의 주역들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계속 다져놓아야만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유럽은 영영 기회를 잃고 말지도 모른다. 다행히 프랑스 정부는 이런 사안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제 남은 문제는 프랑스의 생각에 얼마나 다른 유럽 국가들이 동조해줄 것이냐는 점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3년 11월호(제329호) L’age des monopoles 번역 허보미 위원

출처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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