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인간성 파괴하는 거대기계의 비극

<기계의 신화1>에서 루이스 멈퍼드(왼쪽)는 ‘거대기계’란 개념을 제시한다. 오른쪽 사진은 그가 고대 이집트의 ‘거대기계’가 만들어낸 것으로 파악한 계단식 피라미드. <한겨레> 자료사진, 아카넷 제공

피라미드·핵폭탄 등을 낳은
거대기계는 전쟁을 먹고 살아
특권자의 지배수단으로 활용

기계의 신화 1
루이스 멈퍼드 지음, 유명기 옮김
아카넷·3만3000원

20세기 미국의 문명비평가이자 ‘르네상스적’인 지식인 루이스 멈퍼드(1895~1990). 최근 몇년 새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요 저작이 차근차근 번역돼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기술과 문명>(책세상)이 나온 데 이어, 그의 문명비평의 결정판 <기계의 신화 1>이 최근 출간됐다. 저작권 등의 문제로 지난해 말 <기계의 신화 2>(경북대출판부)가 먼저 나온 탓에 첫 권을 기다리던 독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듯하다.
유사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1934년 쓴 <기술과 문명>과, 그로부터 30여년 뒤 발표한 <기계의 신화 1>(1967), <기계의 신화 2>(1970)는 다소 상반되는 입장을 보인다. 1750~1900년 ‘구기술 시기’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도 1900년 이후 ‘신기술 시기’에 등장한 전기, 화학기술 등이 인간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을 담은 <기술과 문명>의 낙관론은 <기계의 신화>에서는 ‘권위주의적 기술’의 ‘민주적 기술’에 대한 지배가 계속되고 있고, 이것이 인간 삶을 황폐화하고 있다는 비관론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2차 대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 미국의 핵폭탄 투하, 베트남전쟁이 자리잡고 있다.
<기계의 신화 1>의 전반부는 선사시대 인류가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다룬다. 멈퍼드가 1960년대까지 밝혀진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등의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인류가 동물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도구가 아니라 상징 덕분이다”라는 독창적인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이 주장은 정신과 예술이 기술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거대기계’(megamachine)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3000년께 소위 인류의 문명과 역사가 시작되면서 나타난 ‘거대기계’는 현대 기술문명의 원형을 품고 있다. 그가 보기에, 거대기계의 등장은 자연과 인간, 노동과 놀이, 권력과 생명, 개인과 공동체, 남자와 여자가 조화를 이루었던 신석기 문화의 종말을 의미했다.
이집트 기자 지역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보게 되면 누구나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대체 기원전 3000년, 도구라곤 지레밖에 없고 바퀴나 도르래도 없던 시절, 사람 키보다 큰 돌을 모아 밑변 길이 230m, 높이 147m의 돌산을 쌓았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이 작업은 모두 ‘손으로’ 이뤄졌다.
이 피라미드를 만든 것이 바로 ‘거대기계’다. 그리고 이 기계의 부품은 바로 10만명의 인간이었다. 거대기계는 “살아 있는, 그러나 정밀한 인간부품으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구조이며, 각 인간부품은 이 거대한 집합 조직의 엄청난 작업량과 장대한 설계를 구현하고자 각각 특정 직무, 역할을 할당받았다”. 멈퍼드는 거대기계를 다른 용어로도 부른다. “고도의 집단적 기획 위에서 일을 하도록 이용될 때는 노동기계, 집단적 강제와 파괴행위에 써먹을 때는 군사기계, 정치·경제·군사·관료·왕 등 모든 구성 요소가 포함돼야 하는 경우에는 거대기계라고 부를 것이다.”
무엇이 이 거대기계를 가능케 했을까? 10만 ‘인간부품’들은 왜 이 노역을 참고 견뎠을까? 군대의 채찍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왕은 곧 신이고 태양’이라는 신적 왕권에 대한 숭배였다. 사제나 주술사, 점쟁이, 천문해독자들이 “하늘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왕의 권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신분과 자리를 보존했다. 이런 현상이 5000년 전 인간의 과학지식이 부족하던 시절만의 이야기일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왕들이 내뱉은 말은 역사 내내 울려 퍼지고 있다. 루이 14세 같은 ‘합법적’ 왕의 주장에서도, 또 추종자들에 의해 전능하게 돼버린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같은 자들의 역시나 돼먹지 않은 주장에서도 볼 수 있다.”
거대기계의 가장 비극적 측면은 그것이 ‘전쟁’을 먹고 산다는 점이다.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서로 도시 안에서 싸우는 대신 공동목표, 곧 적대관계에 있는 도시를 공격했다. 문명의 긴장이 높아지고 일상의 억압이 심해질수록 전쟁은 점점 더 안전판으로서 쓸모 있게 되었다.” 거대기계의 표준모델이 현대까지 가장 잘 전해져온 곳도 군대다. 멈퍼드가 이 책을 쓰던 1960년대에도 “이른바 권력환상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미국 군사·산업·과학 엘리트들의 시도로 말미암아, 무고한 베트남 농민들이 터전에서 쫓겨나고, (고엽제, 네이팜탄 등의) 독극물 세례를 받으며, 산 채로 불타고” 있었다.
거대기계가 낳은 또다른 결과는 인간을 “일하는 자와, 그 일하는 자의 생활수준을 궁핍하게 만들어 뜯어낸 잉여로 빈둥거리며 사는 자로 분리한 데 있다.” 이것 또한 현대까지 이어지는 현상이다.
거대기계는 이른바 ‘축의 시대’(기원전 800년~기원전 200년), 즉 보편적 인간성과 도덕성을 추구하는 종교와 철학이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출현했던 시기를 거치며 차츰 힘이 쇠퇴했다. 그러다, 다시 16세기 이후 소위 과학혁명, 산업혁명, 자본주의 등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다고 멈퍼드는 말한다. “새로운 태양신이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 부활의 결과물이 핵폭탄, 우주로켓 같은 것이다.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는 우리 시대의 우주 로켓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정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둘은 모두 터무니없는 비용을 들여 몇몇 특권자의 천국행 길을 확보하고자 고안된 것이다.” 이 시기는 <기계의 신화 2>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멈퍼드가 모든 기계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효율적이고 값싼 전력으로 작동하는 작은 기계를 사용하는 진보된 기술이, 소통과 교통의 이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친밀한 인간적 척도와 얼굴을 맞대고 사는 공동체의 공동협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그의 사상은 표트르 크로폿킨 등의 공동체주의적 무정부주의와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인류와 문명, 인간성과 역사에 대한 통찰을 주는 ‘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책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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