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김근태 3주기 학술대회, 김동춘, 한국사회의 좌표와 나아갈 길,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2234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3주기 기념 학술대회가 오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박정희에서 박근혜까지 한국사회경제시스템의 진단-갑오개혁 120년, 우리사회의 플랜B는 없는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토론회에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박형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원, 홍윤기 동국대 교수 등이 발제를 할 예정이다. 

김근태재단 등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프레시안,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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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69444.html

등록 : 2014.12.16 20:52수정 : 2014.12.1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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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3주기 학술대회

노무현 정부 등장 전후인 2000년대 초 한국은 근본적인 체제 전환 필요성에 직면했는데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퇴행의 길로 갔고, 그 결과 지금 한국은 ‘자살 유발 성장주의’가 지배하고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바꿔야 하는데 정당이 사회 변화의 최종적인 그릇이 될 수 없으므로, 청년 노동자의 조직화, 기업의 사회공헌 강화, 노조와 협동조합의 결합, 시민교육 확대, 대학 외곽의 지식센터 건립 등이 필요하다는 처방이 제시됐다.
1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예정인 ‘김근태 의장 서거 3주기 학술대회’ 기조강연문(한국 사회의 좌표와 나아갈 길)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이렇게 밝혔다. 학술대회의 주제는 ‘박정희에서 박근혜까지 한국 사회경제 시스템의 진단-갑오개혁 120년 우리 사회의 플랜 비(B)는 없는가’이다.
“한국은 ‘주변부 신자유주의’
사회재건·국가개혁 동시수행해야”

“산업성장에 비례해
자살률 높아지고 있어”

“부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중심발전 플랜B 제안”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주변부 동아시아형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단순히 신자유주의 질서 일반을 극복하는 과제보다 우선은 정치와 국가를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변부 신자유주의는 사회 재건과 국가 개혁을 동시에 수행해야 극복할 수 있다”며 “사회 건설, 사회 재구조화, 정치 변혁을 전제하거나 포함한 국가 개조를 목표로 사회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기빈·박형준 박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한국 사회경제 체제의 역사적 경로 변경을 위한 좌표 설정’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자본주의 모델은 재벌 대기업의 자본 축적이 벌어지는 영리활동 영역을 정점으로 산업, 사회, 생태 영역을 순서대로 종속시키는 철저한 위계적 체제였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삼성그룹은 경제성장 지표를 훨씬 뛰어넘는 자본 축적을 이루었고 그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있다. 3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는 21세기에 이런 모델을 유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화되기 힘들고 기능적으로도 높은 성장조차 담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회의 강화를 통한 인간 발전’을 핵심 원리로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로 경로 이동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인간 존엄성의 국가와 사회경제 시스템’이라는 발제문에서 “1960년대 이래 대한민국의 플랜 에이(A)는 정부의 엄호 아래 부의 축적을 목표로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에 매진하는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플랜 에이의 가장 큰 죄악은 이 나라 국민을 부의 축적 수단으로 비인간화하고 물질적 욕망의 노예로 전락시켰으면서도 인간적 가치를 실현할 기회와 물질적 수단을 제공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여러 생활영역에서 인간적 가치의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 발전 전략, 플랜 비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우석대 김근태민주주의연구소의 최상명 소장은 “김근태의 민주주의는 경제적 사회 시스템을 사회 구성원의 민주적인 사회관계로 성립시킬 때 역사적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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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hani.co.kr/dckim/
2014.12 
김근태 재단 
  
  
한국사회의 좌표와 나아갈 길 
- 사회를 다시 세워, 정치와 국가를 바로 잡아야 한다. 
  
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1. 세월호 이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올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는 한국의 국가, 정치, 사회의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준 계기였다. 300여명의 학생과 승객이 유족들이 울부짖고 국민들이 발을 동동구르며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람도 구조되지 못한 채 수장되었다. 침몰 자체는 이명박 정권 이래 계속된 정부의 친기업 정책과 정치권, 관료 집단이 연루된 부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의 실패는 가장 일차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 정권, 그리고 더 심층적으로는 한국의 기업, 노동, 교육, 종교, 시민사회의 치부가 그대로 그러난 것이고, 사건 이후 지금까지도 왜 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어떻게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도 논의된 것도, 해결된 것도 거의 하나도 없는 상태다. 

모든 국민은 세월호 이후 거의 매일 ‘국가 부재’, ‘정치 부재’, ‘법의 부재’, 그리고 ‘사회의 붕괴’를 잔인한 방식으로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한국인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국가나 국제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 들도 사실은 국가부재,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없는 국가’라는 조건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금 8년 째 OECD국가 중 자살 1위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이는 현실이 그러하고, 군 내에서의 구타, 자살, 탈영병의 총기 사고가 바로 일상의 국가부재라면, 전작권 사실상 포기, 대북관계에서의 교착, 대일 대미관계에서의 거시적인 정책과 노선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 억압권력으로서 국가는 존재하나, 소프트 파워 즉 국민들을 통합시켜내고 그들의 아픔과 욕구를 실현시켜주는 실제로서 국가는 없다. 힘없고 돈 없는 국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버려지고 있고, 너무나 흔해빠진 그들의 고통과 죽음들은 비가시화된다. ‘영혼없는 노동’과 빈곤과 차별 속에 매일 매일을 버티는 다수의 한국인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다. 

한국은 지금 거의 모든 면에서 심각한 상태에 있다. 신뢰와 붕괴, 도덕붕괴가 가장 치명적이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달성에서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선망이 대상이 되던 상황에서 이제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 경제성장의 지체, 주변강대국사이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별다른 발언권도 갖지 못한 3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품위있는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데는 수 십년동안의 수 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몇 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자조, 비탄, 절망, 적나라한 이기주의와 거짓말, 속임수가 권력 최상부에서 저 바닥 사람들의 일상까지 매일 매일 나타난다. 일차적 책임은 정치집단에 있고, 그 다음은 사법, 검찰, 거대 언론에 있다. 그러나 그들을 밀어주고, 그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에게 저항하지 않는 국민들, 특히 침묵하는 엘리트에게도 책임이 있다. 

500년 동안 유교로 통치하고, 먹고 살고 공부하고 일상을 유지하던 조선이 무너졌는데, 왕조와 고관대작, 지식인들이 자신이 배우고 암송한 유교의 논리로서는 전혀 용납할 수 있는 왕조의 붕괴, 일제의 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였듯이 자유민주주의 60년 동안 배우고 암송한 지식인들과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원칙과는 배치되는 정치적 무책임, 국민 사찰, 감사, 언론 통제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데도 모른 채 하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국민 국가의 내실이 그 만큼 허약했고, 시민사회의 힘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압축적인 성장은 가능하나 역사에서 비약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서유럽의 몇 나라의 인민들의 수백만명이 수세기 동안 피흘려 얻어낸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우리는 단 몇 십년의 투쟁으로 쉽게 쟁취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갖게 된다. 민주국가가 하루아침에 권위주의, 준파시즘으로 전락할 때는 반드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하부구조의 힘, 즉 사법정의, 시민의식과 직업윤리, 공공성이 취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빈곤한 대중들이 자신들을 더욱 빈곤하고 비참하게 만들 세력들을 자신의 구원자인 줄 착각하고 믿고 따를 때는 반드시 그들을 무지 몽매하게 만드는 교육의 실패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사회가 서 있는 위치, 한국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떤 정치사회 개혁의 대안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2. 한국의 국가와 자본주의 - 냉전/분단 속의 기업국가 
  
1) 한국 자본주의 현재성(contemporality) -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1989년 소련. 동구 사회주의 붕괴로 냉전체제는 끝났고 지구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북아시아 특히 한반도에는 부분적으로만 맞는 이야기다. 동아시아의 현대사에 대해 무지한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을 갖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한국사회도 89년 이후 세계의 다른 나라처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현재성의 규정을 받기 때문에 동시대 세계사적인 변화의 압도적 규정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걸어온 역사적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통시적인 것과 공시적인 곳이 한국의 정치경제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자본주의, 한국사회를 봐야 한다. 

우선 우리가 처해 있는 한국사회의 현재성은 세계화 혹은 지구적 신자유주의 질서다. 지구적 신자유주의는 지금의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거의 예외없이 관철되고 있다. 그것은 국가가 ‘자유’의 이름으로 시장주의를 강제하는 것이며, 사유화(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노동억압 등의 정책으로 나타난다. 국가는 법 집행, 시장 규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축소한 대신, 노동자나 약자들의 저항을 규율하는 ‘치안국가’로서의 성격은 오히려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생산의 서비스화, 탈국가화, 그리고 지구적 소비주의 문화와 맞물려, 사회적 연대를 해체시키고, 불평등과 빈곤을 만연시키고 있다. 즉 생산체제의 성격변화와 탈영토화 현상 때문에, 지구적인 저성장이 만성화되고 있으며, 불평등과 빈곤은 세계화, 주변화되고 있다. 이 질서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불평등과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파편화로 인해 집단적 저항의 가능성은 내적으로 차단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지구적 금융자본의 지배, 경기침체와 고용불안, 저성장, 자본의 이윤실현 기회의 축소는 2008년 금융위기를 폭발시켰으나 미국을 필두로 한 국가개입으로 일단 봉합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유럽발 경제위기가 상존하고 있으며, 만성적인 저성장 체제가 극복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러한 지구적 저성장은 과잉자본화/소비능력 저하 현상과 지구적인 불평등에 의해 초래된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탈산업화, 생산의 서비스화, 즉 소비자본주의와 맞물려 있다. 소비자본주의와 고객중심주의는 노동자의 연대를 해체시키고 있으며, 모든 서비스 노동자를 감정노동자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자본주의 하에서는 분노와 집합적 저항 대신에 우울증과 자살이 가장 흔한 질병이 되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용자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그리고 소비자에 의해 좌절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극단, 신자유주의 극단은 탈자본주의, 탈근대가 아니라 새로운 세습자본주의 준 신분사회다. 그래서 각 나라는 사실상 새로운 과두제사회, 새 귀족사회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도 민주주의는 거의 허울로 전락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오직 덜 자본주의일 경우에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책임성과 사회의 응집성을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에 국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는 냉전이라는 방패박이 없어지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분리, 즉 민주주의라는 규제를 벗어던진 자본주의의 기대를 열었기 때문에 대표되지 못하는 인민들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게 되어 투표참가율 저하되었다. 게다가 각국의 재정위기로 국가의 하부구조가 취약해지고 국가의 보호능력이 후퇴하자 주변세력들은 더욱더 탈정치화되었으며, 정당의 대표성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것은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노동조합의 조직적 힘이 축소되고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구좌파를 몰락시킨 배경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를 왜곡 해석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논리는 시장의 논리를 도덕의 차원까지 격상시켰으며, 가난은 단순히 부끄러운 현실이 아니라 처벌되어야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가장 노골적인 형태의 계급지배의 논리이지만, 시장의 실패자 탈락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탈계급적인 방식, 즉 개인으로 체험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계급없는 계급사회, 혹은 ‘비대칭적인 계급구조화’라 부르기도 했다. 약 2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대의제 기초한 근대 국민국가는 현저하게 그 통합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국가 내 국민은 주권을 가진 소수의 주류 세력과 소수자, 혹은 잉여로 구분되었다. 여기서 비정규직, 소수자, 빈곤층 등은 이제 없어도 좋은 잉여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들 잉여는 국민국가의 책임의 영역밖에 존재하게 되었다. 

자본의 세습화, 잉여 노동자의 신 노예화 현상은 세계화 국면에서의 국민국가의 역할 축소/포기와 맞물려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의 도덕적 위기를 수반한다. 자본주의의 도덕적 위기는 곧 국제정치에서의 테러리즘과 결부되어 있다. 이것은 1948년 미국과 영국이 합작한 이스라엘 건국 작업에서 시작된 중동의 만성적 긴장 상태로 폭발한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해 불처벌impunity 의 원칙을 적용하고, 그 이후 남미나 아시아의 독재자들과 손을 잡아서 자신의 국가이익과 패권을 도모하였듯이 탈냉전 이후 테러와의 전쟁 역시 이러한 불처벌과 패권주의의 역풍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도덕적인 헤게모니의 붕괴는 모든 국민국가, 국민국가 내의 지도부의 도덕적 무질서를 낳고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국가의 국민 사찰, 노골적 거짓, 만연한 부패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대는 곧 지구적 신보수주의, 즉 테러리즘, 극우 인종주의, 반유대주의를 불러왔다. 세계 곳곳에서 신판 저강도 전쟁, 국지 전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노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일본에서의 재일 조선인에 대한 혐오 열풍, 세월호 유족들을 비웃은 일베들의 폭식 행사, 서북청년단의 부활 등 일본과 한국에서의 퇴영적 우익의 등장 역시 신자유주의의 도덕적 타락의 한 징후이며, 그 근저에는 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해서 좌절한 청년들의 분노가 깔려있다. 

2) 한국 국가, 자본주의의 역사성/ 전쟁국가, 분단체제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탈식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구적 냉전에 의해 통일된 국가건설이 좌절되었다. 그래서 반(半)주권상태의 분단국가가 수립되었고, 곧바로 3년의 내전을 겪었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적 지배구조가 이식된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외피 속에서 온존하였다. 3년의 내전/국제전을 거친 다음, 휴진체제가 수립됨으로써 남한과 북한은 적대하는 준전쟁국가로 고착화되었다. 전쟁과 안보, 즉 적에 대한 폭력행사를 준비하는 국가는 내부의 적이나 잠재적 적에 대해서도 언제나 폭력행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전쟁체제는 남한 사회 내의 독특한 지배구조, 권력관계를 만들어냈고, 이 분단/냉전이 해소되지 않은 지금까지 그 지배구조/권력관계의 실질적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필자가 ‘전쟁정치’라고 표현한 한국의 지배/권력의 양상은 백낙청 교수가 주장하는 분단체제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지만, 전쟁정치는 단순히 비적대적인 분단이 아니라 적대적 분단, 그리고 분단/휴전의 내재화된 형태로서 한국 사회 내의 지배구조와 권력관계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필자가 강조하는 전쟁정치는, 

“교전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부 반체제세력의 도전을 이유로 국내 정치가 전쟁 수행의 모델이나 원리에 입각해서 진행될 때, 정치․사회 갈등이 폭력화되거나 지배질서 유지를 위해 적과 우리의 원칙과 담론이 사용되어 적으로 지목된 집단의 존재와 활동의 기반을 완전히 없애려 할 때, 국가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 정당 간의 갈등이 비정규 전쟁과 갈등 양상으로 벌어지게 된다. 이 경우 내전과 치열한 정치 갈등은 거의 구별할 수 없고, 사회 전 영역이나 집단에 전쟁의 논리가 일반화된다. 국가 내부의 노동․빈민세력, 비판적 지식인까지도 내전 중의 절대적 적처럼 취급되고, 이들을 제압하여 무력화하는 일이 국가의 일차적 목표로 거론되는데, 나는 국가의 이러한 정치적 실천을 ‘전쟁정치’라 불렀다. 전쟁청치는 이데올로기 차원, 법적 차원, 공권력의 행사 방식 등 다차원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 권력의 행사는 광범위한 폭력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국정원, 기무사, 공안검찰 등 공안기구가 건재할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에 여전히 개입하는 이유,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국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여전히 제한되는 이유는 바로 이 전쟁정치에서 기인한다. 여당은 보수가 아니며, 야당도 진보 가 아니다. 그러나 여당은 스스로 우익이라고 자처하고 있으며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개인을 좌익으로 몰아부친다. 여기서 정치적 타협과 대화는 매우 어렵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건설 노력이 계속 좌절하고 보수 양당 구조의 구도가 도착되는 큰 이유도 바로 이 냉전/전쟁정치에 주로 기인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야당의 사회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파괴하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주의 전통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하토야마 민주당 실험의 실패도 크게는 이와 관련되어 있다. 초기 국가형성기에 미국이 정보기관과 검찰 등을 통해 동아시아의 모든 지배정당을 공식 비공식 지원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정당정치가 정착한 나라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양당체제는 영국보다는 미국과 더 유사한데, 조직노동을 대표하는 진보/보수의 구도가 아니라 계급정치가 억압차단된 가운데 보수/자유의 구도로 형성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이념적 스펙트럼이 유사한 보수양당의 독점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양당제와 유사한데, 이들 두 국가의 야당은 조직노동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침해할 수 있는 정책, 전쟁이나 패권주의 외교노선을 비판할 수 있는 노선을 펴지 못하는 점에서도 야당은 여당의 프레임 속에 있다. 즉 여당은 이데올로기(반공, 반북, 친자본)에서도 공세적인 위치에 있고, 법과 제도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사회세력 기반에서도 대기업, 우익단체, 기독교 세력의 힘을 입고 있으나 야당은 그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미디어 환경에서도 매우 불리하다.
즉 한국에서 집권 여당은 단순히 보수정당이 아니라 ‘국가 정당’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국정원. 검찰, 법원, 주류언론의 ‘국가 정치’의 거의 보호막 속에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 언론기관은 국가, 애국의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여당과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 한국을 비롯하여 국가주의 전통을 가진 동아시아 여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2당 체제라고 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1.5당의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실제 사회주의 중국, 베트남, 북한은 1당 독재체제이며, 일본, 한국, 대만 등도 미국 식 양당제도 제대로 정착했다고 보기 어렵다. 동아시아의 정당은 국가정당/반대당의 이원구조. 반대당의 집권가능성이 대단히 희박. 설사 집권하더라도, 기반의 취약성으로 좌초 가능성 크다.

즉 진보정당이 제도화될 수 없는 국가의 억압성과 제도적 장벽 때문에 정권 반대의 여론을 흡수하는 수동적 반사적 기능을 하면서 체제의 한 구성인자로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민노당의 원내 10석 차지로 이러한 양당 독점 구조가 약간의 균열될 가능성이 보였으나 민노당의 분당과 좌초로 인해 다시 과거의 형태로 환원되었다. 그리고 제 1야당의 독점적 지휘는 대통령제, 단순 다수제, 소선거구제 등에 의해 변화의 압박을 받지 않고서도 지속되고 있다. 즉 야당은 정책정당에로의 변신해야할 유인도 별로 없고, 혁신을 해야 할 동력도 미약하다. 오직 호남의 지역기반과 정권의 실정에 기대에 반사적 이익만으로서 총선에 득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살이 정당으로 만족하는 상태다. 

그런데 이 전쟁정치는 단순히 지배구조/권력관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도 규정한다. 이를 필자는 ‘냉전자본주의’라고 명명한 적이 있는데, 그 특징은 소유권 절대주의, 반노동, 재벌체제, 가족신뢰 신용 금융체제다. 흔히 냉전 하에서 전쟁 수행 중의 국가, 그리고 적의 위협과 구조적으로 상존하는 국가는 내부의 노동세력의 저항을 포섭하기 위한 일종의 ‘예방혁명’으로서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를 도입한다는 설명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서유럽과 달리 국가 내에 그러한 타협을 강제할 노동세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한 시장자본주의가 도입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즉 전쟁상황이 복지국가를 강제한 것이 아니라 전쟁상황이 오히려 극단적 반복지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한국의 경우 53년 휴전 체제가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군사 외교적으로 한국은 아직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과거의 반공주의가 반복, 종북 이데올로기로 다시 살아났고, 과거의 수사정보기관이 건재하였으며, 국가보안법, 형법 등이 거의 그대로 살아남았다. 식민주의 체제가 냉전, 분단으로 변형 지속되면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성, 정당의 국민적 대표성,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불구적인 상태에 있고, 이러한 정치적 불구성은 경제사회 정책의 시행을 굴절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의 노동/복지체제는 국가폭력과 ‘강요된 제1세계주의’에 의해 더욱 강한 시장만능주의/가족주의/개인책임주의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현재 한국의 국내 경제와 사회는 냉전적 국제정치(분단과 미국의 개입)와 탈냉전 이후의 국제정치(미.중 양강구도), 지구경제(경제개방, 외국자본 진출, 국내기업의 해외 이전.....무역의 중국의존 심화)와 함께 검토해야 제대로 설명될 수 있다. 한국은 분단/군사주권 의존과 경제적 개방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무역의존도를 의식한 친중정책과 미국편향의 정책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남한이 처한 정치지리학적 조건, 신자유주의지구화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다. 


3) 한국 자본주의의 통시성(Diachronicity)과 공시성(Synchronicity) 
- 주변부 신자유주의의 동아시아형 

신자유주의는 각 나라의 역사적 경로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며, 역사정치적 조건위에서 그 나라의 양상에 맞게 변형된다. 대체로 역사적 경로로 보자면 보수 반동세력의 쿠데타에 의해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경우, 선거에 의해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경우로 구분해 볼 수 있고, 이러한 차이는 개발독재체제가 자유민주주의, 합리적 시장 체제로 변형되는 경로를 겪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로 변형된 경우와, 어느 정도 개입주의 복지국가의 틀을 갖춘 다음에 그것의 해체 약화를 경험하는 나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즉 국가의 하부구조적 힘, 특히 재정능력의 여부와 법치 등 중립성, 권력행사의 합리성과 공정성 정도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행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유형론적으로 보자면 복지국가의 계급타협이 가져온 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중심부의 신자유주의와 개발독재 국가가 민주화, 노동세력의 조직화 등의 도전을 맞아 구보수세력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도입한 구 개발독재국가의 주변부 신자유주의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중. 북부 유럽국가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민주화, 법의 지배, 초보적인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통합, 노동조합 운동의 제도화가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의 경로를 겪게 되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독일의 메르켈처럼 서유럽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우파 정권이 탄생하고 도 재집권에도 성공했는데, 우파정권이라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탈규제, 국가복지를 해체시키지는 못했다. 후자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73년의 칠레나 80년 광주학살 처럼 쿠데타 등의 방식으로 도입되기도 하고, 테러, 국가폭력, 노동통제 등의 과거의 권위주의의 통치방식과 공존한다. 그런데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기존의 냉전 반공 반사회주의의 연장 형태로 나타나고 가족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자유경쟁 논리, 시장 논리의 확대라기 보기 어려우며, 경제적 독점, 국가개입, 국가폭력과 결합한다. 즉 자본 축적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해 규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게 각종 혜택을 부여하고 노동자의 연대를 해체하기 위해 개입한다. 그 극단적인 형태로는 국가가 범죄 자본과 결탁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의 7대 과두권력, 헝가리나 멕시코의 마피아 국가의 속성이 그렇다, 한국의 재벌체제의 강화도 ‘자유 시장’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즉 국가의 하부구조의 힘이 있을 경우 자본은 국가와 구조적 유착의 양상을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국가가 아예 그런 힘을 갖지 않을 경우 경찰, 관료, 사법부 등 국가기관이 마피아 자본과 직접 유착되는 양상을 보인다. 

즉 신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축소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권력과의 특수 관계의 수립으로 볼 수 있다. 미디어 재벌 머독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한 수평적 확장, 부동산 개발, 그리고 판매분야의 거래기반으로부터 전방위 작장 등 모든 방식으로 사업을 다양화한다. 여기서 특정 국가권력과의 유착이 반드시 존재한다. 주변부 신자유주의 국가가 그러하듯이 한국의 경우는 크게 보아 국가 건설 과정에서 조세 징수를 통재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고 재분배를 할 수 있는 하부구조의 힘이 취약하여, 금융, 의료 교육 복지 등이 오히려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국가 대신 가족이 부담을 하였는데, 90년대 이후 신자유쥬의의 물결 속에서 그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입법부나 행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도 경제활성화의 이름으로 자본축적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주변부 신자유주의, 동아시아형 신자유주의는 억압기구로서의 국가의 힘은 강대했으나 재분배 기구로서의 국가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국가성(stateness), 공공성(publicity)이 부재하거나 매우 취약한 상태에서의 구 지주세력, 대자본, 군부, 국가관료 등이 유착하여 노동조직화를 억압하면서 시장경제를 발전시켜왔다. 관료집단 즉 국가엘리트의 리더쉽과 윤리의식이 저발전되어 있으며, 법이 중립적 규제자로서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 이들 나라의 국가 엘리트는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가 공공의 원칙에 서 있지 않고 거대 사익집단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가, 정치집단, 엘리트들을 지지하거나 신뢰하지 않고 법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필자가 [전쟁과 사회]에서 말한 各自圖生의 논리가 작동하는 피난사회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특히 한국전쟁, 1997년 IMF 위기 등 국가 위기를 맞아서 엘리트들의 국민 유기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난 적이 있다.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는 국가 특히 개입주의국가 개발독재의 경제엘리트에 주도된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경쟁이 작동하지 않는 독점의 영역과 과도하게 경쟁의 논리가 작동하는 영역이 이분화되어 있어서, 특정 부분은 여전히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어서 진정으로 시장적 경쟁이 필요하지만, 그런 논리는 적용이 되지 않고, 다수의 약자들이 생존하는 경제사회영역은 국가나 사회의 보호 장치가 전혀 없이 과도한 경쟁과 시장주의에 작동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즉 관료집단, 제1야당, 재벌, 공기업, SKY 대학은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채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지만, 그 외의 경제 사회 영역에 속한 사람들은 거침없는 약육강식 논리가 체험하게 된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처럼 유럽식 ‘사회국가’의 요소가 애초부터 매우 취약했던 나라와도 유사한 기업국가의 특징이 있다. ‘디트로이트의 마르크스’,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라는 지적처럼 규제되지 않는 시장, 노자관계의 폭력성은 유럽보다 오히려 미국, 중국, 한국에서 더 심각하다. 그래서 부분적으로는 한국기업의 해외진출, 한국 선교사들의 공격적인 선교 등에 의해 아류제국주의(박노자), 선교사제국주의),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 양상도 보이고 있지만, 과거의 제국주의가 구사했던 나름대로의 보편주의 혹은 문명화의 어떤 내용도 갖지 못한 비루한 졸부 근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성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재성을 같이 고려해서 지금의 한국을 보면 아직 탈냉전의 경험을 갖지 않는 한국의 경우 과거의 군사독재, 더 거슬러올라가 반공자유주의와 9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는 강한 연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벌가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준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의 ‘자유’의 개념은 폭력성, 즉 효율지상 성과지상과 인간의 도구화를 의미한다. 전경련이 운영한 자유기업원이 말하는 ‘자유’는 과거 반공연맹, 지금의 자유총연맹의 자유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이승만 정권이 주창했던 자유의 개념은 이명박 정권 기에 부활하였다. . 

즉 97년 이후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미국, 유럽의 것과도 다르며, 국가의 미완성 혹은 개발독재형 친자본, 보호자로서의 국가부재의 양상, 사적 이익의 여과없는 국가 사유화라는 점에서 구 동구권이나 남미의 신자유주의와 더 유사하다. 마피아 조직이 국가기구에 개입해 있는 러시아나 최근 43명의 대학생 실종 살해사건이 발생한 멕시코처럼 경찰과 법원이 노골적으로 부패하여 범죄조직과 결탁한 경우가 있지만, 한국에서 경.검찰이 지하경제의 범죄조작과 결탁하여 학살과 테러를 묵인 방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관료조직과 법원이 재벌대기업의 편에 서서, 이들의 범법에 대해서는 거의 법의 칼을 들이대지 못한 대신에 노동자 파업을 직접 진압하거나 용역 폭력을 방관, 묵인, 살인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점에서는 이들 나라와 유사한 점이 있다.그래서 97년 IMF 위기 이후 한국에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법치와 최소한의 사회정의의 뒷받침을 받지 않았기 고삐 풀린 자본주의며, 더욱 더 폭력적인 양상을 지닌다. 

과거 한국의 병영국가와 2000년대 이후 한국적 ‘기업국가’는 나름대로 강한 연속성을 갖고 있다. 군부 엘리트가 권력권에서 탈락한 것을 제외하면 지배엘리트는 거의 교체되지 않았다. 단지 과거의 안보논리의 자리를 성장논리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과거의 국가폭력은 일사의 폭력으로 변형 지속되고 있다. 2008년 쌍용차 진압의 풍경은 80년 5.18 당시 학살의 풍경을 부드러운 형태로 재연한 것이다. 그리고 공권력의 감시, 법의 집행이 거의 미치지 않는 기업 현장에서 자발성의 이름을 빈 구조적이거나 상징적인 폭력, 억압, 언어폭력과 성폭력의 일상화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환원시키는 담론과 운동 노선은 한국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도입과 작동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있다. 분단 냉전은 식민지 체제의 다른 형태의 지속. 주변부성과 식민성의 온존하는 양상을 지닌다. 한국은 IMF 위기 이전부터 이미 공공부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부담, 사회투자 부분이 극히 취약한 냉전 자본주의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OECD 국가 중에서 GDP 중 사회복지 지출 최하위. 고등교육에서 국가부담 최하위 등의 사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보더라도 냉전문화와 신자유주의 문화는 공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자라난 젊은이들만 경쟁을 내면화하고 불평등과 실업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복지 수혜자인 노인층도 빈부격차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정도의 복지는 오히려 자신이 기여한 것에 비해서는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이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재벌을 제외하고는 실제 한계상황에 있는 한국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극히 열악한 상황, 그리고 노동 유연화를 오직 ‘해고할 수 있는 자유’로만 이해하는 기업과, 효율성과 능력주의 논리를 내면화한 상태에서 어떠한 집단 저항의 가능성과 대안도 찾지 못하는 개인화된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이 그 질서를 받아들인 결과다. 

3. ‘굴절된 민주화’ 이후의 부드러운 ‘반동 쿠데타“ 
-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좌절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등장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한국은 ‘개발독재형 신자유주의’로 회귀하였으며, 기업국가, 기업사회의 특징이 더 노골화되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서 지배질서는 냉전보수주의, 준파시즘적 체제로 더욱 후퇴하였다. 대체로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반동적 형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약간의 과도기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반북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 가운데 노골적 언론통제, 사찰, 야당 무력화, 친자본, 반노동 정책을 일관되게 실시하였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극히 형식화된 선거정치와 정당정치를 제외한다면 민주주의의 절차는 거의 무시되고 있으며, 고문만 제외하면 구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억압적 행태를 거의 반복하고 있다는 특정을 갖는다. 그리고 국정원, 국방부의 선거개입이라는 헌정문란 행태를 과거 군사정권과 마찬가지로 오직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하나만으로 만회하려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실시한 군문민화 작업, 수사정보기관 국내정치 개입 차단 작업, 남북화해 작업은 거시적으로 보면 탈냉전, 지구적 패권 경합 기, 남북 화해와 동아시아의 정치지형 변동기에 반드시 요청되는 바람직한 노선이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정책이 오직 정치적 반대세력이 추진했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원점으로 돌렸다. 그 중에서도 남북화해와 경제교류 강화는 이 두 정권의 주요 노선인 경제성장 그리고 그들의 주요 지지세력인 남한의 대기업이나 중소자본의 입장에서도 필요한 일이었지만, 오직을 거의 차단시켜벼렀고 북한의 도발을 야기하여 그것을 명분으로 더욱 남북한 간의 대결과 경색을 자초하여 결국 중국과 일본, 미국 등 주변 강대국의 한반도 개입 입지만 넓혀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양 정권은 강경반공보수의 목소리를 제압하고 실리적인 차원에서 남북 경제활성화를 추진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중소기업을 도산의 위기로 몰았을 뿐만 아니라 극우 세력들의 일탈에 대해서도 제어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지원까지 했다. 그것은 결국 집권세력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사대강에 쏟아부은 22조원은 단지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시대착오적인 토건사업, 환경파괴 사업에 낭비한 것이 아니라, 저출산고령화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국가적인 정책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그러한 장기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자해야 할 돈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장기적인 국가경제나 사회적 자생력의 기반을 허물어버린데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국가의 기밀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대화록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격적으로 공개 해 버렸다. 13개 시도에서 개혁적인 교육감이 당선되자, 교육감을 임명제로 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보육예산을 떠넘겨 교육청의 재정을 어렵게 만들려 하고 있으며, 자사고 없애려는 공약을 표방했다가 막상 개혁진영의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자 거꾸로 자사고를 옹호하는 등 비루한 정책을 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선거부정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월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실질적으로 아무런 정책도 펴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후과를 낳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의 부정적인 경험이 잠재적 지지층인 중하층,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학습효과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남북화해 진척, 재벌지배구조 변화/경제민주화와 복지확충, 저출산 고령화 문제 적극 대처, 교육 개혁 등의 과제를 국정의 의제로 제대로 제기한 것도 없고 실천한 것도 없다. 그리고 제1 야당 역시 무능한 박근혜 정부를 견제 비판하지 못해서 이러한 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즉 이들 두 정권이 예상보다 더욱 수구보수의 길로 가게 된 것은 여당의 헤게모니 능력의 부재와 야당의 무능력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한계는 구조적으로는 한국의 분단반공주의 체제와 그 과정에서 고착화된 양당체제와 소선거구제도, 즉 여야 간의 불균형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좁혀 보면 1987년 민주화의 성과와 한계가 고스란히 이 두 정권에 집약되어 있다.

1945년 8.15가 ‘해방’이 아니라 일본의 패망과 후퇴 (사실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이듯이 87년 민주화는 정확히 말하면 민주화라기 보다는 군부독재의 종식을 의미했다. 군부독재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서만 지탱된 것이 아니라 군부세력, 보안사와 안기부 등 공안기관, 검찰과 법원, 경찰기구, 관료조직, 우익 관변 사회단체에 의해 지탱되어 왔고, 경상도 지역민들의 지역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6.29선언은 민주화라기 보다는 이 권력 최상층부의 후퇴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것을 지탱한 구 세력은 다른 형태의 지배를 모색했다. 그것이 대통령 직선제와 87년 헌법으로 집약되었다. 그들은 지역주의를 무기로 하여 선거에 의한 권력의 연장을 시도하였고, 각종의 자유화 조치를 통해 자본의 언론을 권력의 지원이 아닌 시장력에 의해 지배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었다. 
즉 87년 체제라는 것은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 삼권분립, 노조설립 자유화, 법의 지배, 언론자유의 공준 마련한 점에서 민주주의의 길을 열기는 했으나 단 구 공안기구의 존속. 국가보안법 존속. 단순 다수제 대통령제와 소선구제 정치체제 확립, 기업별 노조체제의 정착, 노동자 정치참여 제한 등의 이유로 극히 제한되고 통제된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 87년의 정치적 공간 위에서 87년 세력이 형성되었고, 그들이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사회의 새 주류 세력으로 등장했다. 크게 보면 시민사회 운동, 노동운동, 정치참여(보수야당과 진보정당) 세력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수립한 주체다. 이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분열되었다. 

1차 : 87년 대전, 88년 총선에서의 독자후보와 비판적 지지론 
2차 : 김영삼 정부에서의 국제화. 세계화 시장화 담론 ( 자유화. 시장화와 개혁담론) 
3차 : IMF 위기 전후의 처방들 – 유연화 수용과 노조 정치세력화의 맞바꾸기 
4차 : 민노당의 등장과 열린우리당의 창당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둘러싼 시민/노동, 파병 FTA 문제를 둘러싼 갈등 
  
이 분열은 객관적인 상항 변화에 의해 요청된 불가피한 것이었다. 한국의 산업화가 압축적이었던 것처럼 87년 이후 국제/국내의 변화도 압축적인 것이었다. 가장 일차적인 조건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IMF 전후의 경제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였다. 

역설적으로 이 시점에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했지만, 그 사회적 기반은 이미 잠식 붕괴된 상태였다. 이 기간 동안 과거 민주화운동가, 사회운동 지도자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흡인되었으나, 대체로 개인입당과 수혈의 형태로 들어갔기 때문에 개인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보수화, 체제내화되었고, 그들의 변신은 그들을 통한 변화를 기대하던 세력들에게 실망을 주었으며, 그 결과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 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구반공보수의 헤게모니는 흔들리지 않았고, 반대를 통해 정치적 비판을 담아내는 제1야당의 독점이익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현상유지에 안주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서 시민운동 세력이 정치화되고, 일부 정치권에 진입했다. 그리고 2002년, 2008년 촛불시위와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등장했다. 노사모 현상과 유모차 아줌마 부대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소비사회, 미디어 영상 시대에서의 팬덤 정치, 생활정치의 감각을 갖는 여성 등 급진자유주의의 등장이라 부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노동계급의 정치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주의, 환경주의, 탈물질주의적 급진 자유주의가 동시에 나타났다. 유럽에서의 68이후와 같은 신좌파의 등장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와 유사한 급진자유주의 무형정 대중의 주체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구 민주화 세력과 새로운 급진자유주의 세력의 결합된 것이었다. 

물론 김대중 정부는 남북화해와 평화통일 기반 조성이라는 컨 족적을 남겼고,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주의와 과거청산 등에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의 집권은 바로 IMF 경제위기, 즉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구고조정 시점에 일치하였고, 이들의 정치개혁은 경제적 신자유주의에 의해 빛이 바랬다. 구 민주화 세력의 국가경영의 실험이 강고한 반공보수와 연합한 신자유주의적인 신보수의 공세에 무너졌으나, 노동세력과 급진자유주의 세력과 구민주화세력을 대체할 정도의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등장한 것이다. 제 1야당과 진보정당이 동시에 몰락한 것은 과거 2004년 이 두 정당이 동시에 정치적으로 부상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지지 기반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같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은 과거의 좌파들이 주장하듯이 ‘자유주의’를 타격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1987년 체제’는 사실상 끝났다. 이것은 87년 민주화를 앞장 선 세력이 더 이상 이 사회를 이끌어갈 힘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직 노동운동의 보수화, 체제내화. 시민운동의 제도화, 보수야당의 무력화와 진보정당의 사실상의 존재감 상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된 민주당 내 486 정치가들은 기대와 달리 정당혁신도, 그들만의 독자적 세력화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독자적인 리더쉽이나 지도자 만들어내기도 성공하지 못하고, 개인으로 제도권 정치에 포섭된 감이 있다. 

이들의 한계는 자유주의적 현실관(신자유주의 논리에 대한 투항), 정책적 준비부족과 관료조직 장악 실패, 성급한 현실정치의 논리와 중도주의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문제는 당시의 실패보다 그 이후의 집단적 반성부족이 오히려 지금은 더 심각해 보인다. 즉 정권을 상실했으면서도 집권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잘 못된 것이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복기작업도 없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마련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더 치명적이다. 정책 연구소 하나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미래 세대를 키울 수 있는 정치학교도 없다. 즉 수권의 의지도 체계적인 준비도 없이 대선 후보 잘 만들어 한 방으로 해결하려는 무책임성을 보여준다는 데서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실망하는 것이상으로 기존 정당에 대안이 없고 희망이 없어서 더욱 절망하고 있다. 

  
4. ‘사회건설’과 ‘정치, 국가 재구축’을 위한 대안의 모색 
  
노무현 정부 등장 전후인 2000년대 초 한국은 근본적인 체제전환의 필요성에 직면했었다. 그 전환은 이중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개발독재를 지탱해온 성장 - 평생 고용-가족복지-결혼과 출산-교육을 통한 지위 상승-기업퇴직금으로 노후 보장 등으로 집약되는 그 간의 한국의 사회경제 메카니즘이 더 이 이상 지탱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성장 둔화 - 비정규직 불완전 고용 - 가족복지 붕괴 - 교육 불능. 계층화 - 평행 불완전고용 - 결혼 불능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53년 체제’라 부를 수 있는 분단반공 - 이북적대. 체제안보 - 흡수통일 - 보수독점 정치 - 통일 자본주의 국가의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탈냉전과 미국의 전략변화 - 지구적인 패권구도 균열, 중국의 부흥과 일본의 보수화 - 남북화해 평화 통일 요 - 인간안보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의 55년 체제 (동서냉전시대의 체제. 고도성장 체제, 국민의 균등한 분배의 체제)가 2005년 전후에 무너지고 냉전의 종식으로 우익이 세를 얻어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가 추진되며, 경제적 부가 지배계급에만 독점되기 사작했고, 계층상승 혹은 중류화의 지향이 좌절된 사회로 변한 것과 같은 궤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경우 자살유발 자본주의, 자살유발 성장주의가 지배하고, 정권의 통치불능 상황이 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변화의 동력이 생겨나지 않음으로써 사회의 교착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이 사회적 교착상태에서 침체를 겪고 있는 것처럼 한국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이러한 전환의 역코스를 걸으면서 국가나 사회가 붕괴하는 양상을 보인다. 

현재 한국은 큰 틀에서는 주변부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폐해가 극심한 상태에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핵심 국가권력 기관의 헌정 문란, 언론 통제, 극우 파시즘적 사회집단의 발호,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조롱 등에서 나타나는 사회 해체 현상 등이 더욱 심각한 상태에 있다. 그래서 정권의 교체, 경제적 불평등 극복, 국가의 개혁, 사회의 재건 등이 모두 시급히 요청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100년 동안 한국이 거쳐왔던 식민지 근대화, 돌진적인 개발독재 과정에서 국가와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채 성장과 서구 따라가기에 맹목적으로 몰두해 온 근대화 과정에 대한 총체적 자기성찰과 극복의 과제로 집약된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적어도 3,4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는 사회 재건의 작업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 

물론 동아시아형 주변부 신자유주의 한국에게는 단순히 신유주의 질서 일반을 극복하는 과제보다 우선은 국가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정치 그리고 국가 즉 정치를 바꾸지 않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교정하기가 어렵다. 주변부 신자유주의는 사회 재건과 국가개혁의 동시적 수행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봐서 한국은 근본적 변화가 요청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쿠데타나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실제 그것을 일으킬 주체의 부재로 혁명은 불가능하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교체하는 것만이 대안이다. 그러나 선거 자체만으로는 결코 사회를 바꿀 수 없다.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필수적인 통과 과정이지만, 지금 당장 야당이 집권해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힘있고 책임있는 야당의 건설이 당면 과제이기는 하나, 당은 사회변화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당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의 변화를 전체로 하지 않는 어떤 정치변화, 선거 제도 변화, 헌법 상의 정부조직 변화도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아제 사법부가 체제 변화의 걸림돌이 되었고, 그래서 정권을 교체해도 사법부가 수구보수의 대변자가 되어 사사건건 제동을 걸 것이다. 그러나 사회변화는 매우 장기적인 과정이므로 현실 정치의 변화에 무관심한 채 장기적인 기획에만 몰두 할 수 없으니 양자는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동아시아형 주변부 신자유주의 국가’인 한국의 개혁은 크게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극복과 분단/통일/국제관계 차원의 개혁 두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과제는 일본, 미국, 대만의 과제와 유사하고 또 차별적이다. 한국에서는 재벌 지배구조의 변화,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경제/국제관계/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과제이나, 그것은 필자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별도로 논의해야 하고, 단지 정치/사회개혁의 길에 대해서만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국가개조가 아닌 사회건설, 사회재구조화, 정치변혁을 전제 혹은 포함한 국가개조를 목표로 해야 한다. 한국은 조선말에서 식민지적 근대로 들어선 근대 이행기 이후 사회가 본격적으로 만든 적이 없다. 왕조시대는 뒤르켐이 말한 기계적 연대가 존재하던 체제였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전제로 한 사회관계가 존재했다고 볼 수 없다. 당시에는 외적이 침입하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함께 맞서기 보다는 오히려 지배층이나 양반이 더 심각한 적이었기 때문에, 노비나 상민의 입장에서는 적인 일본 편에 가담하는 것이 대안일 수도 있었다.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지배에 조선인 다수가 순응한 것도 여기에 있다. 지배질서와 엘리트, 법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오직 가족에 집착하게 된다. 이 가족은 바로 원자화된 이기적 가족이다. 공익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가족의 복지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고 그것이 집약된 것이 한국의 교육열과 기복신앙 기독교다. 

여기서 ‘사회’란 공공성을 의미한다. 공공성은 사회의 다수자 즉 약자와 빈곤층을 포함한 중간층 이하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을 의미한다.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관료기구가 시민적 감시 통제 하에 놓이는 것, 정당이 사회 기반 위에 활동하는 것, 재판이나 기소가 권력자의 자의가 아니라 시민적 참여 속에 진행되는 것, 기업과 노조가 이익 추구를 기본으로 하더라도 더불어 사회적 요구를 의식하고 그 규제 속에서 행동하는 것, 언론이 기업의 이해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요구나 의사를 대변하는 것, 대학이 공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 지방정부나 지역사회가 중앙정부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는 것, 전문가들이 직업집단의 윤리기준 위에서 행동하는 것, 자발적 결사체가 자유롭게 조직되어 공적인 마인드를 갖고서 이익을 표출하는 것, 일반 시민들이 가족 외의 지역사회나 직업사회의 성원으로 행동하고 기여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회는 법과 제도, 상호관계에 대한 신뢰, 그리고 감정 공동체로 존재한다.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부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악행은 적절한 처벌을 통해 억제되고 그와 같은 처벌을 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옭고 칭찬할만한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까지 처벌과 포상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국가였다. 그래서 법에 대한 복종이나 질서유지는 자발성에 기초를 두지 못했다. 사회의 부재는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족, 친족, 동문, 고향사람들의 미시사회는 존재했지만, 국가수준, 국가를 넘어서는 사회의 관념은 없었다. 그래서 불신은 출발부터 한국의 기본 병리였다. 한국에서 소송이 남발되는 것은 바로 이 불신과 사회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사회국가’의 건설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국가가 우리가 추구하는 최종의 정치단위는 아니다. 헤겔이 주장했던 것처럼 근대 국가는 인륜성 실현을 위한 최종의 기구 혹은 형태라 볼 수 없다. 지난 20세기 동안 국가 기관인 군.경, 관료집단이 외세보다 더 많은 자국의 인민들을 살해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20세기의 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평화 시기에도 계급 차별, 인종차별, 성차별, 학력차별, 출신지역 차별에 의한 고통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국가 부재 보다는 국가 존재가 인민들의 생존에는 더 필요하다. 적어도 국가 없는 백성보다는 국가 있는 백성이 더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이기적 조직이며, 애국은 타 민족, 타인종의 희생위에 성립하기 쉽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완성을 위한 과도적 기구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이중 시민권의 확립 등 주권 개념의 재구성도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국가에서는 국가가 공공성 사회적 유대의 실현태가 되어야 하고,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것은 국가가 시장의 통제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재벌문제로 집약된다. 재벌이 한국의 국민 소비자 덕분에 존재하는지, 한국인들이 재벌덕분에 사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누가 과연 빚을 지고 있을까? 물론 시장, 그리고 기업의 활동은 근대 사회형성의 기반이기도 하지만, 규제되지 않을 경우에는 사회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나 폴라니가 말했듯이 시장, 경제활동 영역은 사회(활동)의 일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시장 규제적 사회는 국가를 통해 구체화되지만, 국가를 넘어서는 것, 초국적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들어 한일 과거사 문제는 한.일 국가 엘리트의 야합에 의해 봉인되었으나 여전히 국가 엘리트들은 국민통합을 위해 그것을 활용하고 있다. 이 경우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만이 국가 엘리트의 야합을 폭로하고 진정한 연대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각각의 국가, 혹은 정치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한국의 분단/전쟁 상황, 그리고 정치지리학적인 조건은 사회국가의 성립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평화.통일의 지향과 사회국가의 건설을 반드시 결합되어 있다. 북한과 적대하고, 미국 중국에 휘둘리는 상태에서 남한 단독으로 사회국가를 건설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은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기 때문에 생산 소비 등 경제활동에서 내수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회 내의 분업과 전문화의 정도도 지연될 수밖에 없고, 결국 거대 시장권을 가진 주변 강국에 의존되기 쉽다. 남북 통일이 되거나 남북 화해가 되면, 경제사회 정책 형성에서 군사정치 변수의 제약을 줄일 수 있고, 시장규모의 확대로 사회, 국가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사회국가의 건설을 위해서는 그것을 담당할 주체의 형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그러한 의지를 갖는 정치세력이 만들어지고 정권이 장악해서 입법을 통해 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정권이 들어서도록 하는 것, 정권이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 역시 사회세력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양자는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사회적 주체를 기반으로 해서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 혹은 정당은 사회형성의 종속변수이지 그 자체가 독립변수가 아니다. 87년 이전까지 한국 정치 변동과정에서 제도권 정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고, 87년 이후에도 여전히 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가 정당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향이 있고, 지금은 더욱이 정당과의 관계에서 미디어가 ‘갑’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의 거대 미디어는 수용자보다는 광고주에 더 크게 종속되어 있으니 결과적으로 정치 세력은 광고주인 대기업에 종속되어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21세기에는 정당이 사회변화의 최종적인 그릇이 된다고 볼 수도 없다. 입법과 사법을 정당과 사법부가 독점해야 한다는 것도 20세기의 제도와 관행 사고방식이다. 시민입법, 시민사법의 제도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정당과 사회세력은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사회의 재건, 특히 사회적 주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단기, 장기의 과제 몇 가지만 생각해 보면, 
  
신자유주의의 최대의 피해자들은 청년 노동자들, 실업자들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능력주의와 경쟁주의의 신화의 포로가 되어 개인주의화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홍콩 청년들의 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일자리, 주거권, 결혼과 출산의 권리 확보를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서비스 분야에 불완전하게 고용된 청년들이다. 그래서 청년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사회적 정치적 주체로 세우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흔히 경제조직으로 알려진 조직들을 사회적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성격을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노조의 협동조합과 결합,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대학과 지역시민단체의 시민정치교육 강화 등을 통해 실천될 수 있다. 
  
노동조합은 협동조합 결성에 적극 나서서 빈민, 자영업자,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의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이것을 통해 사회적 주체로 거듭 나야 한다. 특히 지역에 거의 기반을 두지 않는 한국의 기업별 노동조합으로서는 ILO가 권고하는 것처럼 지역사회의 사회 서비스 제공, 일자리 창출, 지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기 위해 협동조합 결성 작업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협동조합은 생활세계를 시장화, 식민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모든 노동조합은 자체 조합원들이 적어도 1 사회단체, 1 협동조합에 필수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켐페인을 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은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소비자와 시민이 등을 돌리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미국에서 현대자동차의 판매부진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기업이 사회적으로 공헌하지 않은 채, 단기적 이윤만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기업은 대체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만 사회적 책임 부분에 지출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공익재단 설립, 시민사회 지원 등의 방법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 기업역시 사원들에게 단지 일회적인 사회봉사를 하도록 유도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1 사회단체 가입해서 회원으로 활동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노조와 주주는 협력해서 기업의 감시와 사회적 공헌 활동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삼성의 SDS 상장으로 얻은 막대한 이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반도체 희생자 문제 해결 조치는 한국에서 기업이 어떻게 책임을 부담하고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청소년을 위한 시민교육, 특히 노동, 평화, 인권 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시민교육 기관을 활성화하고 사회교육을 통한 여성 의식화, 주민의식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학교를 벗어나 지역사회의 탈학교 청소년, 학부모 교육에 부분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학은 평생교육 제도를 더욱 활성화해서 사실상 영국의 개방대학, 현재의 방송대학이 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지역단위의 노사민정 합의기구를 활성하여 지역의 일자리 창출, 복지, 노동현안 해결을 위한 사회적 타협과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공기업의 감시와 운영에서 지역 노사민정 기구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나 사찰의 사회적 공헌도가 더욱 높아져야 한다. 교회나 사찰의 재정은 공개되어야 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하며, 사회공헌에 대해 더 많은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 교회나 사찰이 지역 복지기관, 쉼터의 역할, 시민교육 기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대학이 공공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기능을 거의 상실했기 때문에, 대학의 개혁이 필요하고 공공적 지식인을 양성해서 장차의 정치 엘리트,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하도록 새로운 교육기관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현행 입시 관행의 변혁이 요구된다. 수능시험을 확실히 자격고사화하고, 국립대학을 전국 네트워크로 통합운영하고, 졸업정원제를 도입하여 한국 교육을 마시시키는 대학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중앙집권 국가의 전통을 가진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지식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인의 역할이 없어지면 개혁의 방향이 상실되고 곧 나라도 죽는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은 그런 지식인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청년 지식인들은 고단하다. 장기적으로는 정당이 자체의 정치 엘리트 양성, 사회적 의제와 담론 형성 기능을 해야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현재의 시점에서는 대학 밖의 재단이나 연구소, 포럼 등이 활성화되어 전문화된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이 외에도 공익 제보자, 즉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근거지 마련, 공입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위한 기금, 탈학교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자력화할 수 있는 기금 혹은 근거기반, 노인의 공익적 사회참여와 직업 전문성을 통한 사회공헌 기회 마련을 위한 기관 설립 등의 작업도 사회재건을 위한 과제에 포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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