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토요일

이갑규, 진짜 코 파는 이야기,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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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엉뚱한 상상력에 웃음..."유쾌한 것도 예술이죠"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작가 이갑규
'진짜 코 파는 이야기'를 시작을 이갑규씨는 본격적인 창작 그림책 작가로 나선다. 새해에 그림책을 세 권 정도 선보일 예정인 그는 "첫 책도 중요하지만 다음 책이 작가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한주형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진짜 코 파는 이야기’는 진짜 코 파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끝까지 코 파는 장면뿐인데 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코 파는 판다를 비롯해 고릴라, 기린, 사자, 물소, 악어, 코끼리 등 여러 동물과 여자 아이, 그리고 아이 아빠가 나온다. 코 파기와 코딱지를 소재로 한 그림책은 꽤 많다. 하지만 대부분 코 파는 나쁜 습관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이 책처럼 코 파기의 즐거움과 안타까움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그림책 작가 이갑규(42)씨가 영화처럼 책을 만들었다. 낯 익은 외국 영화사 로고 속 사자가 열심히 코를 파는 표지 그림부터 범상치 않다. 표지를 열자마자 등장하는 것은 배우 오디션. 감독의 주문에 따라 콧구멍을 벌리느라 잔뜩 힘을 준 동물들 얼굴에 O X로 캐스팅을 표시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한다. TV를 보면서 코 파는 여자 아이에 이어 동물 배우들이 열연한다. 자주, 가끔, 몰래, 대놓고, 심심해서 등 갖가지 이유와 모습으로 코를 판다. 아빠는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아이와 함께 TV를 보며 멍 하니 코를 파다가 코끼리 재채기 소리에 놀라 코를 찔렀는지 코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이게 끝이 아니다. 출연진이 총출동하는 뒷면지의 출연자 대기실 풍경을 넘기면 뒤표지에 엔딩 크레딧이 박혀 있다. 출연, 감독(작가), 분장(편집), 제작(출판사) 누구누구에 이어 장소 협찬 ‘고만파 이비인후과’에서 빵 터진다.
기발하고 엉뚱한 이 그림책은 이씨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아 완성한 첫 작품이다. 15년 가까이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려오다가 처음 단독 창작 그림책을 냈다. “첫 영화로 감독상 받은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하자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코 파는 이야기’는 가벼워 보인다. 작가도 “가볍게만 보일 것 같아 수상은 긴가민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점을 높이 샀다. 아이들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진짜 아이들 책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참신한 구성도 감탄을 자아냈다.
“재미있고 유쾌한 것도 얼마든지 예술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 파기라는 단순한 소재를 유치하거나 뻔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림책에 서사가 없으면 재미없다고 하는데, 제 책은 무슨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영화적 연출로 서사 구조를 짰지요. 왜 하필 코 파는 이야기냐구요? 제가 좀 개구진 면이 있어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내용과 상관 없이 코 파는 인물을 그려 넣곤 했어요. 출판사가 빼달라고 했지만.”
‘코 파는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2, 3년 전이다. 초안만 잡아 뒀다가 지난해 출판 계약 후 본격적으로 매달려 완성했다.
“실제 작업은 1년이 안 걸렸는데 배우 캐스팅이 오래 걸렸어요. 각양각색 동물들에게 딱 맞는 연기를 맡기려고 고심했거든요. 더러운 손으로 코 파는 역은 진흙에서 뒹구는 하마가, 기린은 목이 길어 코 파기 힘드니까 가끔 파는 역으로, 사자는 동물의 왕 체면이 있으니 몰래 코 파는 것으로요. 하하하.”
이제 본격 창작 그림책 작가로 나서는 그는 써놓은 원고가 많다고 했다. “다른 책에 들어갈 그림을 의뢰 받아 그리는 생계형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펼칠 수 없었다” 며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세 권을 내년에 낼 예정이라고 했다. 두 권은 출판 계약을 마쳤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 심사평 - 경험 통한 유머로 독자와 소통
본심에 오른 후보작은 12편이다. 그림책이 8편이고 동화와 청소년소설이 각 2편이다. 이 중 ‘나의 친친 할아버지께’와 ‘호랑이, 오누이 쫓아가는듸, 궁딱!’은 잘 짜인 서사와 독창적인 실험이 돋보였으나 무게감이 다소 부족했다.
청소년소설 ‘델 문도’는 이국적 배경 속에서 오늘을 사는 청소년의 문제를 결곡하게 표현했으나 서사의 힘보다 서술에 지나치게 공력을 들인 듯 보였다. ‘뺑덕’은 청소년소설의 전범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내용과 형식 모두 견고했다. 다만 결말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점이 아쉬웠다.
그림책은 힘차게 성장하는 장르임을 다시 확인했다. 편마다 흠 잡을 데 없이 좋은 작품이었으나 전반적으로 새로움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섬’과 ‘고슴도치 엑스’는 주제의식이나 인물의 형상화란 점에서 눈에 띄었다.
최종 논의는 ‘빅 피쉬’와 ‘진짜 코 파는 이야기’에 집중됐다. 예술적 깊이와 어린이 독자와의 소통을 두고 갑론을박한 끝에 형식적 완결을 유감없이 보여준 ‘진짜 코 파는 이야기’로 결정했다. 글과 그림의 효과적 관계, 유머러스한 문체, 경험에 대한 깊은 천착, 앞뒤 표지와 면지의 활용 등에서 고투가 반짝였다. 본심에 올라온 이들 12편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김상욱(춘천교대 교수ㆍ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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