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8일 목요일

조한혜정, 강성민, 사직단 복원,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 경성도서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9361.html

2014년 12월 16일, 한겨레, 조한혜정 칼럼




사직단 복원 건으로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올해 4월 ‘사직단 복원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역사성과 민족정기 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의해 영역이 축소되고 훼손된 사직단의 복원을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국회는 원형을 복원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고 하고, 문화재청은 사직단을 조선 시대 기준으로 돌려놓는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 한다. 6차 지방선거에서 사직단 복원 공약이 나오고, 수원 화성에서는 사직단을 복원하고 근처에 한옥타운을 조성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민족주의를 내세운 토건사업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다. 흔히 ‘종묘사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종묘’는 이씨 왕조 조상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사직’은 농경 신을 모시는 제단을 말한다. 단적으로 종묘는 이씨 왕조의 영원함을 비는 제단이라면 사직단은 농경사회의 경제적 풍요로움, 곧 굶주리는 백성이 없기를 기원하는 제사였다.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종묘와 향교, 서원은 전주 이씨와 유생들의 후손에 의해 유지되어온 데 비해 350여개나 있었다는 사직단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말 국회의원들이 역사와 전통을 살려내기 위해 이런 결의를 했다면 시대 공부를 좀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 사직단의 사례를 보면, 그동안 토지신이 백성들을 어떻게 보살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1911년 사직단을 인계받은 조선총독부는 제사를 중단하였고 그곳에 정원과 산책로가 있는 사직공원을 개장하였다. 그 공원에 거지와 부랑아들이 몰려들어 구세군이 그곳에서 먹거리를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해방 후에는 고아들을 위한 소년보호소와 서울시립아동병원이 그 터에 세워졌다. 사직단의 본격적인 훼손은 60년대 이후에 일어났는데 사직로 확장과 터널 개통으로 부지가 분할되고 정문을 두 번이나 옮겨야 했다. 60년대에 단군성전과 율곡과 신사임당 동상, 그리고 파라다이스 수영장이 들어섰다. 그 터에는 또한 다양한 배움터가 자리를 잡았는데 1895년 고종의 소학교령에 따라 세워진 매동초등학교가 1933년에 이전해 왔고, 1920년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경성도서관이 1968년에 옮겨왔으며, 1979년 국내 최초의 어린이도서관인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특히 어린이 도서관은 몇번의 부침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시민들, 특히 어머니들의 힘으로 지켜낸 유서 깊은 도서관이다.
이 터에는 이렇게 ‘백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런 근대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왕조적 발상으로 사직단을 복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일이다. 중앙집권적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민족주의 부흥의 제단을 복원하기에 앞서, 사직단의 본래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식량 위기에 처한 국가를 살리는 대책부터 세워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지금은 토지신의 제단에 드리는 제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국민 900만이 보았다는 <인터스텔라>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농사가 불가능해진 지구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 23%로 식량 위기에 매우 취약한 나라에 속한다. 식량주권에는 관심도 없고, 농사짓기에 마음과 몸을 쓴 적이 없는 이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사직단을 복원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 아닌가? 만일 사직단 복원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복원 사업은 3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관과 민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역사 공부를 하면서 왜 복원해야 하며 누가 그곳을 돌보고 지켜낼 것인지를 의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특히 그런 자리는 어린 생명을 키우며 ‘백성’의 안녕을 간절하게 바라는 어머니들이 핵심적으로 참여할 자리일 것이다. 복원이란 과거와 미래를 이을 국민/시민/주민의 뜻을 모아내는 작업이며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복원사업은 땅값만 올리는 국고탕진 사업일 것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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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1218030005&spage=1
2014년 12월 18일, 서울신문,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칼럼

연산군은 치세 중반 이후 왕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치·사냥·연회·음행에 국가의 모든 자원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온갖 추행을 벌인 다음날 승지들에게 어제 실수는 없었는지 물어보았고 승지들은 입을 모아 없었다고 대답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의 시기였다.
 
연산군의 폭정 중에서도 가장 기함하게 한 것은 궁궐 주변 민가의 철거였다. 궁녀들을 벌거벗긴 채 매일 음탕한 놀이와 광란의 가무를 즐기려니 사람들의 눈이 신경 쓰인 것이다. 재위 8~9년 이후 연산군은 창덕궁과 인접한 성균관과 정업원 주변의 민가 100채를 없애버렸다. 범위는 점차 확대돼 선왕 후궁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자수궁과 수성궁 주변 민가를 철거시켰고, 타락산 아래의 민가 100채도 추가 퇴거시켰다. 요컨대 연산군의 목표는 대궐 안이 내려다보이는 곳과 대궐 담장 아래의 민가를 모두 철거한 뒤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쫓겨난 백성들은 돌아갈 곳이 없어 재목을 길옆에 쌓아두고 초막을 지어 살고 있으며 원망과 고통이 매우 크다라고 진언했으나 연산군의 폭정은 민가 철거에서 더 나아가 발언하는 일의 통제로 이어졌다. 
 
김범 선생이 세밀하게 고증한 연산군이란 책에 나오는 이러한 대목을 다시 떠올린 것은 최근 사직단 복원논란을 접했기 때문이다. 일제가 축소시킨 사직단을 원형 그대로 확장시켜 복원한 뒤 주변에 한옥마을을 조성하겠다는 문화재청의 저 휘황찬란한 계획을 보라. 거기엔 지금까지 그곳에서 역사와 문화를 일궈온 사람들의 삶을 이 땅에서 영원히 퇴거시키겠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무시하고 짓밟는 원형 복구는 오히려 역사와 문화를 죽이는 제노사이드이며, 복원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동화시키는 원형 탈모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최초의 어린이 도서관인 사직어린이도서관, 그리고 종로도서관, 매동초등학교가 차례로 사라질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성곽복원사업에 걸린 집들마저 사라지면 마을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사직동 인근은 아마 숨쉬기를 멈출지도 모르겠다. 고색창연하게 사직 제사를 연출하는 모습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될 것이고, 그렇게 반질반질하게 만들어진 자리는 이방인들의 발길로 북적일 것이다. 그 가운데 일부일 중국인 관광객은 사직(社稷)의 본고장에서 온 자부심으로 타국에 건설된 자국 문화의 미니어처를 흡족하게 음미할지도 모르겠다.
 
역사와 문화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주민의 삶은 어떻게 되든 모르겠다는 식으로 외면하고, 그러면서 공청회에서는 확정된 것은 없다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이 사직단 복원공사 계획은 당장 중단되어야 옳다. 지금 인근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거지에 대한 권리를 무시당한 것에 분노하며 일방적인 통보와도 같은 사업계획이 곧 실행될 것이라는 사실에 극심한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조한혜정 교수가 지적했듯 민족주의를 내세운 토건사업이자 주변 땅값만 올리는 국고 탕진 사업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주민과의 대화에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역사를 뭉개고 그 자리에 역사를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사는 쌓이는 것이지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일 돈이 있다면,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에 나타난 오류를 바로잡는 일 등에 쓰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2014-12-1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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