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백기완 선생/ 염무웅 선생 페이스북에서

【백기완 선생】
// 올해 설날 일이다. 오래전 잡힌 일정으로 독일에 머물고 있었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대학원수업에 이어 괴테대학에서 ‘아시아에서 노동과 결혼의 이주’ 관련 국제회의로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때, 마침 설 명절을 맞아 전화로 문안인사를 대신했다. “아버님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터져 나오는 호통소리. “썩어문드러진 정권을 온힘으로 메쳐야 할 중차대한 시기에 어딜 외국에 나가? 엄중한 때 투쟁현장을 떠나 있는 것도 역사적 반역이야!” //
엊그제 도착한 이번호 『대산문화』(2017년 겨울호)에서 백원담 교수가 아버지 백기완 선생에 대해 쓴 글의 이 첫대목을 읽다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반세기 넘도록 한결 같은 자세로 살아온 백 선생이 놀랍고 존경스러운 가운데 이 대목에서는 존경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 웃음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1970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당시 나는 어느 출판사 한구석을 빌려 간신히 『창작과비평』 명맥을 지키고 있었고, 어쩌다 이호철, 한남철, 조태일, 방영웅 등 가까운 문인들이 나타나야 분위기가 살아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백기완 선생이 숨을 씩씩거리며 쿵쾅쿵쾅 사무실로 올라오더니 (그 출판사 낡은 건물의 목제계단을 올라오면 오른쪽 구석에 창비가 있었다) 소리치는 것이었다
.
“이호철이 이놈 어디 있어? 어이 염무웅, 호철이 어딨냐구!”

알다시피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장편 『금각사(金閣寺)』로 유명한 소설가인데, 이 사람이 1970년 11월 25일 일본 재무장과 자위대 궐기를 선동하는 연설을 하고 할복자살하는 소동을 벌여 적지 않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아마 그때 이호철씨가 어느 신문에 미시마에게 동정적인 칼럼을 썼던 것 같다. 백기완 선생으로서는 분기탱천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 호통치는 어른이 존재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고 안 나가고 하는 건 (그밖에 다른 일들도) 그때그때 각자의 형편에 따라 최선의 결정을 하면 된다고 본다. 그러니까 백원담 교수에게 ‘반역’이라고 외치는 건 아버지만이 행사할 수 있는 예외적 특권이다.

출처 : 염무웅 선생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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